선(線)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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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는 어떤 존재일까요? 19세기 말의 화학자들은 원 자를 그저 원자량, 원자가 등 몇 가지 성질을 가지고 있는 단순한 입자로 생각했습니다. 화합물의 변화무쌍한 세계 를 설명하기에는 그 정도면 충분했죠. 하지만 20세기로 넘어오면서 원자의 기존 개념은 크게 뒤집히게 됩니다. 이 과정에는 이웃 학문인 물리학의 역할이 컸습니다. 19세기 말의 물리학자들에 의해 X선과 방사능이 발견되면서 원 자의 내부 구조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고, 그에 따라 화 학계 역시 큰 개념적 혁명을 겪어야 했죠. 오늘은 이 모든 일의 효시가 된 1890년대의 사건들을 다뤄보도록 하겠습 니다.1
눈에 보이지 않는 빛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19세기 초부 터 알려져 있었습니다. 프리즘으로 백색 빛을 분해하였을 때 붉은색 너머, 혹은 보라색 너머의 영역에도 눈에 보이 지 않지만 어떤 작용을 할 수 있는 빛이 존재한다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죠. 붉은색 너머의 빛은 열을 전달하기에 “열선(heat rays)”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었고, 보라색 너 머의 빛은 화학 변화를 일으키기에 “화학선(chemical rays)”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었습니다. 이는 19세기 후반 이 되어서 적외선(infrared ray)과 자외선(ultraviolet ray)이라는 용어로 대체되었죠.2 여기에 더해 음극선 (cathode ray)이 등장합니다. 1838년 패러데이(Michael Faraday, 1791-1867)는 공기를 일부 뺀 유리관 안에 금 속 전극 두 개를 넣고 둘 사이에 높은 전압을 가하면 음극 판에서 양극판으로 번쩍이는 빛이 흘러간다는 사실을 발 견했습니다. 이후 이 현상에 대한 연구가 계속되면서 공 기를 더 제거하면 빛이 점점 약해지지만 여전히 눈에 보이 지 않는 “선”이 흘러간다는 것이 확인되었고, 19세기 후 반의 물리학자들은 이를 “음극선”이라고 불렀습니다. 음 극선 자체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다른 분자에 부딪혀 눈에 보이는 빛을 내는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었죠. 음극선은 빛과 같이 직진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었지만, 자석을 가 까이 하면 그 경로가 휘어졌습니다.
19세기 말의 과학자들은 형광(fluorescence)과 인광 (phosphorescence)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알고 있었습 니다. 어떤 광물들은 빛을 흡수한 후 그 빛과 다른 색을 띠 는 빛을 방출했습니다. 만약 외부 빛이 사라졌을 때 빛 방 출이 즉각 사라지면 형광, 외부 빛이 사라졌음에도 여전 히 빛을 방출하고 있으면 인광이라고 불렀습니다. 인광이 라는 명칭은 “빛을 가져오다”라는 의미의 그리스어 포스 포로스(phosphoros)에서 왔고, 빛을 내는 많은 물질에 일찍부터 사용되어 왔습니다. 원소 인(phosphorus)도 그중 하나이고요. 이런 물질들이 내는 빛은 자연스럽게 인 광이라는 명칭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3 반면 형광이라는 명칭은 1852년 물리학자 스토크스(George Gabriel Stokes, 1819-1903)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스토크스 는 어떤 물질들의 경우 흡수한 빛의 파장보다 방출하는 빛 의 파장이 길어진다는 것을 발견했고, 그런 거동을 보이 는 대표적인 물질인 형석(fluorspar)의 이름을 따서 형광 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흥미롭게도 형광 현상 자체는 이미 1842년 베크렐(Edmond Becquerel, 1820-1891) 에 의해 보고된 바가 있었습니다. 스토크스와 베크렐은 형 광과 인광 분야의 전문가들로서 이들 현상에 대해 다른 이 해를 가지고 있었고, 19세기 중반에 형광과 인광의 본질 에 대해 치열한 논쟁을 벌였습니다.4
이제 시간을 1895년으로 돌려 보겠습니다. 1895년 11월 8일, 50세의 물리학 교수였던 뢴트겐(Wilhelm Con-rad Röntgen, 1845-1923)은 암실에서 검은 마분지로 둘러싸인 음극선관을 가지고 실험을 하고 있었습니다.5 분 명 음극선관은 두꺼운 종이로 덮여 있었지만, 음극선관에 전기를 흘려보내자 몇 미터 떨어진 형광 스크린에서 빛이 발생했습니다. 또다른 “보이지 않는 선”이 발견된 것입니 다. 뢴트겐은 이후 몇 주 동안 비밀리에 홀로 이 “보이지 않는 선”을 두고 여러 가지 실험을 수행했습니다. 이 “선” 은 빛처럼 직진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었지만, 일반적인 빛 과는 달리 굴절, 반사, 회절 등의 거동은 관찰할 수 없었습 니다. 그렇다고 음극선처럼 자석에 반응하는 것도 아니었 습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이 “선”을 두고 뢴트겐은 “X선” 이라고 불렀습니다. 놀랍게도 X선은 여러 물체를 투과하 는 성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한편, 이 X선은 형광을 일 으킬 수도 있었고, 사진 건판을 감광시켜 현상 후 검은 상 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그는 이를 이용하여 금속 통에 들 어있는 나침반, 문에 박힌 못, 자신의 손뼈 등의 사진을 찍 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새로운 발견이라는 확신을 가진6 뢴트겐은 12월 말 논문을 투고하였고, 1896년 1월 초에는 세계 각지의 동료들에게 이 소식을 알렸습니다. 이 때 뢴트겐이 동봉한 사진이 부인의 손을 X선으로 찍은 그 유명한 사진입니다. 1월 5일, 빈의 신문사에서 발빠르게 이 소식을 실었고, 다 음 날 런던과 뉴욕에서도 대서특필되었죠. 사람들은 물체 내부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이 새로운 기술에 열광했습니 다. 뢴트겐은 하루아침에 세계적인 유명인사가 된 것입니 다. 1월 13일에는 황제 빌헬름 2세의 부름을 받아 황제 앞 에서 직접 시연을 하고 프로이센 왕관 훈장을 수여받았습 니다. X선은 “뢴트겐선”이라고 불렸고, 1896년 한 해 동 안만 1000편 이상의 기사와 책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뢴트겐의 발견은 실험실에서 쉽게 재현해 볼 수 있었습 니다. 과학자들은 흥분했습니다. 뢴트겐 본인은 X선에 관 해 세 편의 논문을 쓰는 것에 그쳤지만, 많은 이들이 그를 대신해 앞다투어 새로운 실험 결과를 보고했습니다. 그 중 에는 발명가 에디슨(Thomas Edison, 1847-1931)도 있 었습니다. 그는 백열전구를 개조해 간단한 X선 생성 장치를 만들고, 자신의 손을 찍어볼 수 있는 장치라며 홍보했 죠. 의사들은 의학적 가치를 바로 알아보았습니다. 발표 이후 한 달이 안 되어 의사들은 X선을 활용해 몸 안에 박 힌 총알이나 부러진 뼈의 위치와 형태를 파악할 수 있었습 니다. 화학자들 역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화학자들은 X 선을 여러 물질에 조사하여 어떤 영향이 있는지 확인했습 니다. 영국의 화학 저널 <케미컬 뉴스(Chemical News)> 는 1896년 한 해 동안 총 28편의 X선 관련 기사를 출판 하였습니다.7
적외선, 자외선, 음극선에 이어 X선까지 발견되자 새로 운 “선”이 더 존재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여기저기서 피어 올랐습니다. X선이 발표되고 한 달도 안 되어 아마추어 물 리학자 르봉(Gustave Le Bon, 1841-1931)이 “흑광 (black light)”이라는 새로운 “선”을 발견했다고 발표했습 니다. 르봉의 보고에 따르면 흑광은 일반적인 석유 램프 에서 발생하는데 금속 상자 안의 사진 건판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졌으며, 빛처럼 직진하되 자석의 영향은 받 지 않았습니다. 흑광 역시 즉시 검증에 들어갔습니다. 몇 몇 과학자들은 흑광을 재현하는데 성공했다고 보고했지 만, 여전히 수상한 구석이 많이 있었죠. 결국 두 달여의 검 증 이후 1896년 3월 말쯤 되자 흑광은 석유 램프에서 방 출된 열과 빛, 증기, 사진 건판의 민감성 등이 뒤섞여 만들 어낸 가짜 현상으로 정리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X선에 관심을 가진 사람 중에는 앞서 소개한 베크렐의 아들인 앙리 베크렐(Antoine Henri Becquerel, 1852-1908)이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연구를 이어 형광 과 인광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었던 그는 뢴트겐의 발견 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뢴트겐의 결과는 음극선관에 발려 있는 인광 물질에 음극선을 쬐어주어 X선이 방출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에,8 베크렐은 다른 형광 및 인광 물질에서 비슷한 현상을 관찰할 수 있을지 궁금 했습니다. 그는 재빨리 연구를 시작해 1896년 2월, 파리과학원에 황산 우라닐 포타슘(K2UO2(SO4)2·2H2O)에서 새로운 “선”을 검출했다고 보고하였습니다.9 황산 우라닐 포타슘은 햇빛 아래에서 인광 현상을 보이는 물질로, 근 처에 있는 사진 건판을 감광시킬 수 있었습니다. 이 “선” 역시 X선처럼, 두꺼운 종이로 건판을 싸두어도 그것을 뚫 고 건판에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베크렐은 황산 우라닐 포타슘의 인광 현상과 이 “선”이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했지만, 며칠간 흐린 날씨가 계속되 면서 햇빛을 이용한 인광 실험을 할 수 없었죠. 그는 하릴 없이 황산 우라닐 포타슘 시료와 사진 건판을 서랍 속에 넣어두었는데, 며칠 후 서랍을 확인한 그는 사진 건판이 감광된 것을 발견했습니다. 햇빛이 없이도 이런 현상이 나 타났다는 것에 놀란 그는 이 결과를 파리 과학원에 보고합 니다. 1896년 3월 초의 일입니다.
어쩌면 황산 우라닐 포타슘의 인광이 일반적인 인광 물 질에 비해 훨씬 오래 가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베크렐은 이러한 가설을 세우고 오랜 시간 동안 빛을 막고 황산 우 라닐 포타슘의 “선”이 사라지는지 확인하려 했습니다. 하 지만 몇 달을 기다려도 여전히 황산 우라닐 포타슘은 “선” 을 내뿜고 있었죠. 비슷한 시기 영국의 과학자 톰슨(Sil-vanus P. Thompson, 1851-1916)도 우라늄을 포함한 염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선”이 방출되며, 빛이나 전기 가 없이도 오랜 시간 동안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 였습니다. 그 역시 이걸 인광으로 보고 “초인광(hyper-phosphorescence)”이라는 명칭을 붙여주었습니다. 다 만 톰슨은 베크렐이 비슷한 결과를 보고했다는 사실을 알 고 연구를 중단했죠.
베크렐은 집요하게 본인의 가설을 검증하고자 했습니 다. 그는 인광이 사라지게 하려고 염을 녹이고 다시 재결 정하기도 했고, 화학 반응을 통해 다른 화합물로 바꾸기 도 했습니다. 심지어 순수한 우라늄 금속을 시험해 보기 도 했죠. 우라늄 금속은 우라늄 화합물에 비해 더 강한“선”을 내뿜었습니다. 이러한 여러 노력 끝에 얻은 결론은 우라늄 원소가 이 “선”의 원천이라는 것이었지만, 베크렐 은 본인의 인광 가설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우라 늄 원소 자체가 인광을 보이는 것이며, 기존에 알려져 있 던 인광 물질들과는 다른, 새로운 인광 물질이라고 생각 했습니다.
한편, 베크렐은 “우라늄선”의 성질 또한 살펴보았습니 다. 우라늄선은 여러 물체를 투과할 수 있었고, 공기를 하 전시키는 성질이 있었습니다. 이는 X선과 유사한 성질이 었죠. 반면 그는 우라늄선에서 반사, 굴절, 편광 등을 관 찰했고, 이 때문에 베크렐은 우라늄선이 X선보다는 빛에 가깝다고 보았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우라늄선이 X선의 일종이라고 생각하는 과학자들도 있었습니다. 애초에 X 선의 정체조차 확실하지 않았으니까요.
우라늄의 독특한 성질은 이내 젊은 물리학도들의 관심 을 끌었습니다. 그 중에는 폴란드에서 프랑스로 유학 온 마리 스크워도프스카(Marie Skłodowska, 1867-1934) 가 있었습니다.10 그는 1893년과 1894년 파리 대학교에 서 물리학과 수학 졸업시험을 각각 1등과 2등으로 통과 하고, 1895년 피에르 퀴리(Pierre Curie, 1859-1906) 와 결혼하여 마리 퀴리가 되었습니다. 퀴리는 1897년 베 크렐의 동의를 얻어 우라늄선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퀴리 는 우라늄선의 크기가 우라늄의 양에 비례한다는 사실을 이용해, 자연 광석에서 발생하는 우라늄선이 그 안에 포 함된 우라늄의 양으로부터 계산한 예상값보다 강하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즉, 우라늄선을 내뿜는 다른 원소가 존재한다는 뜻이었죠. 퀴리는 우라늄 광석인 피치블렌드 에서 우라늄을 비롯하여 이미 알려진 원소들을 하나씩 화 학적으로 제거하여 새로운 원소들을 찾아냈습니다. 바로 폴로늄과 라듐이었습니다. 폴로늄 시료는 우라늄보다 400배, 라듐 시료는 900배 강한 활성을 보였습니다.11
1898년의 일입니다. 사실 퀴리의 이 발표 이전까지 우라늄선은 큰 관심을 받지 못했습니다. X선과는 달리 별다른 응용 분야를 찾기 어려웠고, “흑광”처럼 유사한 사례도 있 었으니까요. 그저 일부 물리학자들만 관심을 가지고 살펴 보는 주제였는데, 퀴리가 우라늄 외에도 우라늄선을 내뿜 는 원소들이 있다는 것을 밝혀내자 흥미를 갖는 과학자들 이 늘어났습니다.12
한편, 영국에서는 뉴질랜드 출신의 젊은 물리학자 러 더퍼드(Ernest Rutherford, 1871-1937)가 우라늄선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뉴질랜드에서 수학 및 물리학(1893년 석사), 화학 및 지질학(1894년 학사)을 공부한 러더퍼드 는 1895년 영국으로 건너와 캐번디시 연구소에서 연구 를 시작했습니다. 당시 연구소장은 톰슨(Joseph John Thomson, 1856-1940)이었는데, 1896년 뢴트겐과 베 크렐의 연구가 알려지자 러더퍼드에게 X선과 우라늄선을 연구해 보라고 권유했습니다. 1898년, 맥길 대학교에서 러더퍼드에게 교수직을 제안했고, 러더퍼드는 캐나다로 건너가 연구를 지속했습니다. 러더퍼드는 우라늄선이 베 크렐의 보고와는 달리 굴절이나 편광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1899년, 러더퍼드의 보고를 접한 베 크렐은 자신의 실험을 다시 검토했습니다. 베크렐은 해석 에 문제가 있었음을 인정했고, 우라늄선이 빛의 일종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였습니다. 같은 해에 퀴리는 우라늄 선을 인광으로 해석하는 것에 강한 비판을 가했고, 베크 렐은 결국 본인의 인광 가설마저 철회했습니다.13
오늘날의 우리는 이 시기의 방사능 연구가 결국 핵화학 및 핵물리학의 시작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또 한 이 연구들이 원자의 내부 구조를 밝히는 시작점이 되 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1890년대 후반의 과 학자들은 미래를 알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뢴트겐과 베 크렐의 이름을 같이 기억하지만, 1896년의 상황은 달랐 습니다. X선은 발표되자마자 과학계뿐 아니라 일반인들 에게까지 큰 반향을 일으킨 반면, 방사선은 그렇지 않았죠. 퀴리의 업적이 없었다면 베크렐은 그저 조용히 살다 갔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독자들도 느끼셨겠지만 이번 글에서는 화학자들이 별로 등장하지 않습니다. X선과 우 라늄선 연구가 처음에는 주로 물리학의 문제로 받아들여 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퀴리를 통해 이 연구는 새로운 원소를 찾는 주류 화학계의 문제와 연결됩니다. 다음 글 에서는 이 이야기를 다뤄 보겠습니다.
이번 호의 내용은 다음 글들에서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Mary Jo Nye, Before Big Science: The Pursuit of Modern Chemistry and Physics, 1800-1940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1999), Chapter 6; Marjorie C. Malley, Radioactivity: A History of a Mysterious Science (New York, NY: Oxford University Press, 2011); Alexi Assmus, “The Early History of X Rays,” Beam Line 25(2), 10-24 (1995).
Philip E. Hockberger, “A History of Ultraviolet Photobiology for Humans, Animals and Microorganisms,” Photochemistry and Photobiology 76(6): 561-579 (2002).
이러한 역사를 생각해 보면, “인광”과 “인”이 동일한 그리스어 뿌리를 가지고 있는 것은 맞지만 “인광”이라는 용어가 원소 “인”에서 온 것은 아니기 때문에 한자 번역어가 매우 정확한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Bernard Valeur and Mário N. Berberan-Santos, “A Brief History of Fluorescence and Phosphorescence before the Emergence of Quantum Theory,”
Journal of Chemical Education 88(6): 731-738 (2011).
뢴트겐은 원래 음극선관의 전문가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1895년 10월부터 막 음극선관을 가지고 연구를 시작한 차였습니다.
뢴트겐 이전에도 X선을 발견할 뻔했던 과학자들은 여럿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장치에 수반된 당연한 현상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죠. 어쩌면 뢴트겐은 이 장비를 처 음 썼기 때문에 특이점을 알아차릴 수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X선 발견의 선구자들에 대해서는 Uwe Busch, “Claims of priority – The scientific path to the discovery of X-rays,” Z. Med. Phys. 33: 230-242 (2023) 참조.
Melinda Baldwin, “‘Keeping in the race’: physics, publication speed and national publishing strategies in Nature, 1895-1939,” British Journal for the History of Science 47(2): 257-279 (2014).
당시 프랑스 물리학을 대표하는 푸앵카레(Jules Henri Poincaré, 1854-1912)가 파리 과학원에서 뢴트겐의 연구 결과를 두고 토론하면서 이런 아이디어를 제시했다고 합니다.
베크렐이 황산 우라닐 포타슘을 선택한 것은 단순한 행운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아버지 때로부터 내려오는 형광 및 인광 지식 덕분에 황산 우라닐 포타슘의 독특한 분광학적 성질을 알고 있었고, 몇 가지 인광 물질을 시험했을 때 기대했던 성질을 보이지 않자 바로 황산 우라닐 포타슘으로 실험하기 시작했습니다. Roberto de Andrade Martins, “Becquerel and the Choice of Uranium Compounds,” Archive for History of Exact Sciences 51(1): 67-81 (1997).
폴란드식 이름은 마리아(Maria)였으나, 프랑스로 유학 오면서 프랑스식 이름인 마리(Marie)를 사용하기 시작합니다
따라서 더 이상 “우라늄선”이라 부르는 것은 옳지 않지만, 용어의 통일성을 위해 본 글 내에서는 “우라늄선”으로 계속 쓰겠습니다.
Lawrence Badash, “Radium, radioactivity, and the popularity of scientific discovery,” Proceedings of the American Philosophical Society 122: 145-154 (1978).
Roberto de Andrade Martins, “Becquerel’s experimental mistakes,” Historical Essays on Radioactivity (Extrema: Quamcumque Editum, 2021), 107-166.

최정모 Jeong-Mo Choi
• 한국과학기술원 화학과, 학사(2003. 3 - 2011.8)
• Harvard University 과학사학과, 석사(2011. 9– 2015. 5, 지도교수: Naomi Oreskes)
• Harvard University 화학 및 화학생물학과, 박사 (2011.9 –2016.5, 지도교수: Eugene I.Shakhnovich)
• Washington University in St. Louis, 박사후 연구원 (2016.8– 2019. 4, 지도교수: Rohit V. Pappu)
• 한국과학기술원 자연과학연구소, 연구조교수(2019. 6– 2020. 8)
• 부산대학교 화학과, 조교수(2020.9- 2024.8), 부교수(2024.9-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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