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호 <화학세계가 만난 화학자>에서는 2024년 한국전기화학회 회장님이신 동국대학교 에너지신소재공학과의 이재준 교수님이십니다. 전기화학 기반의 차세대 태양전지를 연구하셔서 저전력, 저출력이 가능한 센서 시스템 및 웨어러블 IOT소자 뿐 아니라 스마트 시티에서 필요한 완전 무선 에너지공급시스템에도 적용하시는 목표를 가지고 계십니다. 화학을 전공하신 후 공학분야에서 활발하게 연구를 하시는 교수님을 화학세계에서 모셔보았습니다. [모더레이터: 이준석 교수(한양대학교 화학과)]
1. 교수님께서는 학부 때 화학과에 입학하신 후에 석사과정은 물리화학을 전공하시고 박사는 전기화학을
전공하셨는데요. 전공을 선택하신 이유와 바꾸신 동기가 있을까요?
저는 대학 시절 화학과에서 공부를 하는 동안 유기화학이나 생화학 계열보다는 물리화학과 무기화학 계열의 공부에 흥미를 좀 더 가졌던 것 같습니다. 학부 연구생으로서 지도교수 선정 및 대학원 진학을 고려할 때 자연스럽게 다양한 분야의 물리화학 계열의 연구와 전공에 관심을 가지던 중 실험적 연구보다는 이론화학 분야의 연구 내용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첫 전공을 정할 무렵, 실험을 통하여 배우기 어려운 화학반응과 동역학에 대한 기초 이론 등을 접할 수 있는 최적의 시기라는 생각에 이론화학연구실(서울대학교 화학과 이상엽 교수님)에서 석사과정을 보내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개인적인 관심의 확장으로 전기화학을 처음 접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전기화학은 거의 분석화학의 일부로서 매우 제한된 학문영역으로 분류되던 시기였지만, 전자의 이동으로 유발되는 다양한 산화환원 기반의 반응 분류와 전기에너지와의 연계성 등에 흥미를 느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후 Case Western Reserve University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하면서 전기화학을 전공 분야로 선택하게 되었으며 Barry Miller 교수님의 지도하에 연구를 배우는 과정에서 Ernest B. Yeager, Akira Fujishima, Allen J. Bard 등을 포함한 전기화학 분야의 실존하던 석학들의 연구 내용들을 직간접으로 접하며 전기화학의 다양한 확장성과 적용성에 매료되었고, 자연스럽게 스스로 전기화학을 주요 전공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것 같습니다.
2. 만약 다시 대학원생으로 시간을 되돌리게 되어 전공을 선택하실 기회가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만약 다시 대학원생이 되어도, 아마도 저의 선택지는 결과적으로 큰 차이는 없었을 것 같습니다. 다만, 석사과정을 거치면서 연구를 처음 배우며 다양한 분야에 대한 관심과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개인적 고민들 등에 따라 학문적 배움과 연구에 대한 확신과 집중이 많이 부족하여 이 시기에 많은 것을 배우고 성취감을 가지는 기회를 만들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었기에, 어쩌면 그 시기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좀 더 단순하게 살며 조금 더 집중하여 연구를 하려고 노력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저는 연구의 실물 적용성과 실용성을 보고 싶어 하는 성향이 좀 큰 편이었기에, 다시 생각해봐도 비슷한 시기를 보낸다면 연구자로서의 종착지는 전기화학과의 연관성이 여전히 매우 클 것으로 생각합니다.
3. 그리고 현재는 융합에너지신소재공학과인 공대에서 연구와 교육을 하고 계십니다. 교수님께서 경험하
신 이학과 공학의 차이점이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대학 생활부터 2004년 처음 교수로 임용되어 독립된 연구자의 생활을 하는 동안 학과명은 달라도 30년 동안 이학계열의 삶을 살다가 지난 2016년 3월에 현재 근무지인 동국대학교 공과대학 융합에너지신소재공학과(현재는 에너지신소재공학과)에 부임하였습니다. 공과대학에서의 생활은 처음에는 많이 어색했고 특히 교육의 방향성에 대한 차이로 기존의 방식이나 내용들을 상당히 수정하는 등의 적응 과정이 필요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에너지와 소재에 특화된 학과의 특성이 다양한 학문영역들의 융합과 공유를 전제하고 있기에 당시 융합에너지신소재공학과의 정체성과 적절히 잘 매칭되는 전공 배경을 가졌기에 큰 어려움과 변화 없이 교육과 연구를 수행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기본적으로 화학이라는 학문은 다양한 분야에서 기반학문으로 받아들여지는 장점이 있는 분야이기도 하고 시대적으로 학문 분야 간의 경계가 약해지면서 오히려 이학이나 공학의 구분 없이 필요성이 높은 것이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4. 대한화학회 뿐 아니라 한국전기화학회 한국태양광발전학회 등 다양한 학회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새로 부임한 교수들에게는 강의준비, 연구과제, 학과봉사와 같은 일들도 많아서 적극적인 학회활동을 고민하기도 합니다. 학회활동을 통한 네트워킹 노하우나 장점들을 알려주실 수 있나요?
교수로서 특히 연구자로서 학회 활동은 가장 기본적인 교류와 네트워킹 활동이자 경험을 공유하며 배우는 매우 중요한 방법이기에 자신의 연구 분야나 방향과의 매칭이 가장 잘되는 적절한 전문성을 가지는 학회에서 활동을 하는 것은 자신의 학문적 성장과 발전에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많은 학회가 동일하거나 유사한 분야들을 다루고 있으니 선택의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겠지만, 유사성이 큰 많은 학회에 모두 참여하는 것은
지나치게 소모적이며 비생산적일 수 있습니다. 또한 학회는 참여자들의 노력과 발전을 먹고 자라는 정원과 같은 곳이라서 단순히 반복적인 많은 참여보다는 적극적인 학문적 영양분과 조직력을 제공하는 노력이 수반될 때 상보적인 발전을 이루어 가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의 노력에 의하여 만들어지고 성장된 학회의 체계가 지속적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참여자의 더 많은 기여와 노력이 필요한 것이며 이러한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때 서로가 순환적으로 성장하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기왕에 참여하는 학회들을 자신의 발표를 위한 무대 정도로 생각하지 말고 자신이 제공할 수 있는 적극적인 역할 및 기여를 아끼지 않으면서 자신의 발전과 학회의 발전이 함께 이루어지는 것을 경험해 보는 것 자체가 학문 활동의 즐거움 중의 하나인 것 같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학회 내 특정 분야의 역할을 책임지는 임원이 되기도 하며 내가 누렸던 학회의 체계를 유지시키거나 더 발전시키는 역할을 맡아 봉사의 시간을 가지기도 하는 동안 많은 분들과 적극적인 교류가 가능했고, 주변의 여러 분들께서 그러한 노력과 역할의 비중을 고려하여 학회의 회장으로 추천을 해 주셨던 것 같습니다. 저는 국내에서는 제 연구 분야와 가장 매칭이 잘 되는 분야로서 한국태양광발전학회와 한국전기화학학회, 그리고 학문적 뿌리로서 활동과 교류의 터전 역할을 해주었던 대한화학회에 참여하는 것에 집중하였고 그러다 보니 다른 학회들에는 충실하게 참여할 여력을 가지기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활동하고 기여하며 발전을 지켜보았던 한국태양광발전학회와 한국전기화학회에서 회장으로 활동하는 기회를 가지게 된 것은 그야말로 크나큰 영광이기도 합니다.
5. 이제 연구 분야에 대한 질문으로 넘어가겠습니다. 교수님께서 하시는 연구에 대해서 화학세계 구독자들에게 간략히 소개 부탁드립니다.
박사학위를 시작하고 연구를 배워가면서 너무도 많은 것을 모른다는 생각 속에서, 내가 미래에 어떤 연구를 하겠다는 주제나 방향성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정신없이 많은 것들을 체득해 나가며 새로운
것들을 배우고자 했었고, 또 한편으로는 기본적인 최소한의 성과라도 만들어야 한다는 조바심에 어떻게 연구를 마무리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느라 매우 단편적인 목표만을 바라보며 긴박하게만 살았던 것 같습니다.
박사과정 학생으로서 첫 연구는 Molten Salt(지금은 ionic liquid 로 더 잘 알려짐) 에서의 전기화학, 특히 금속의 증착에 대한 내용들이었고, 이후 박사 후 연구원 생활을 하면서 반도체 전기화학 또는 광전기화학의 개념을 처음으로 접하면서 동시에 염료감응 기반의 차세대 태양전지의 원리와 연구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염료감응형 태양전지(DSSC)는 구조와 주요 작동 원리에 전기화학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매우 독특한 광에너지 변환 시스템으로서 전기화학자로서 성능 개선에 기여할 수 있는 신규성과 차별성을 제시할 수 있는 매우 흥미로운 연구 주제였습니다. 특히 상대전극 및 전해질과 관련된 연구들은 전기화학적 촉매 반응과 연계되어 또 다른 관심 분야인 전기화학 기반의 바이오센서 연구와 병행할 수 있었고 두 가지 주제는 이후 제 연구의 핵심 연구 분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매우 독특하고 다양한 장점을 가진 염료감응형 태양전지는 안타깝게도 실질적인 상용화에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여전히 다양한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으며 저도 DSSC 구조 및 원리를 적용한 다양한 새로운 형태의 유용하고 기대되는 연구 분야를 창출해 가고 있습니다. DSSC로부터 진화한 가장 성공적인 연구 주제 중의 하나로서 이미 매우 잘 알려진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PSC)에 대한 연구로 친환경 청정에너지에 대한 연구를 계속해 나가는 동시에 DSSC의 장점을 살리는 새로운 영역으로서 저조도 실내광 기반의 에너지 하베스팅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미활용 조명에너지를 직접 재생 또는 재활용하는 혁신적인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건물 에너지 사용의 효율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함과 동시에 다양한 IoT 소자들의 에너지원으로 활용하여 스마트 건축물 또는 스마트시티 실현의 핵심 기술이 될 수 있는 인공광전지(Artificial Light Cell, ALC)의 개념을 최초로 구현하고 상용화하는 연구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추가적으로 DSSC의 구조를 차용한 염료감응형 광전기화학전지 시스템(Dye-Sensitized Photoelectrochemical Cell, DSPEC)을 이용하여 목질계 바이오매스 및 폐플라스틱 등의 분해를 통한 폐자원 재활용 및 고부가가치화를 위한 연구도 매우 활발하게 진행 중입니다. 관련 연구를 융합하여 에너지자립형 전기화학 바이오센서(Self-powered electrochemical biosensor)의 개발이 진행 중이며 전극 구성을 적절히 변형하여 (광)전기화학적 물분해 및 이산화탄소 환원에 적용하는 융합연구도 중요한 관심 주제들입니다.
6. 전공자가 아닌 경우에 태양전지를 머릿속에 떠올리면, 주택이나 사막 등 넓은 지역에 반짝반짝 빛나는
실리콘 태양전지가 생각납니다. 교수님께서 지향하시는 완전 무선 에너지공급시스템에 대해서 조금 더
설명해주실 수 있으신 가요?
태양전지라면 당연히 누구나 실리콘 태양전지를 바로 생각할 것이며 당연히 태양광이 많은 곳에서의 광에너지 변환을 통한 에너지 생산이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에너지원을 대체할 수 있을 정도의 “발전” 수준의 에너지를 생산하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실지로 그러한 수준의 발전이 가능하며 또한 사막이나 극지대 등의 극한 환경 속에서도 성능저하 없이 10년 이상의 장기적인 안정성을 구현하는 것은 소자로서의 경제정을 확보하는 가장 중요한 필수 요소지만 실리콘 태양전지 외 대부분의 차세대 태양전지는 그러한 요건을 구현하지 못하여 상용화에 이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일부 차세대 태양전지들은 야외 환경에서 구동하는 태양전지로 활용하는 관점에서 탈피하여 다양한 광원을 에너지원으로 직접 활용하는 전혀 다른 형태의 적용성과 상업성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최근 5년 간 “기후변화대응사업”을 수행하는 동안 그러한 가능성과 활용성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면서, 저조도 실내광 환경에서의 광에너지 하베스팅과는 명확히 차별화되는, mW 수준의 충분한 에너지 재생이 가능한 인공광전지(ALC)의 개념을 도출하였고 이를 다양한 저전력 IoT 소자와 직접 결합할 경우, 미활용 광에너지가 별도의 충전과정 없이 IoT 소자의 에너지원으로 활용될 수 있음을 제안하게 되었습니다. 현대사회에서 인간의
생활이 실내 중심으로 이루어지며 인공광으로서 조명의 비중이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팽창되는 것, 그리고 저전력 기반의 IoT 소자가 급격히 늘어가는 것을 고려할 때 미활용 조명에 너지를 활용하여 기존의 유선 충전방식을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 것 입니다.
7. 현재 태양전지 분야에서 가장 이슈가 되는 주제는 무엇인가요?
태양전지 분야에서 현재 가장 큰 이슈는 실리콘 기반의 태양전지의 경우, 사업성과 시장성의 문제로서 화학의 영역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이슈입니다. 모든 산업 분야들이 유사하게 겪는 일이기는 하지만, 중국 경제의 성장과 산업화가 고도화되면서 태양광 산업은 특히 가장 타격을 받고 있습니다. 한국은 태양광 산업에서 기술력 및 생산성과 시장점유율에서 세계 최고의 수준에 있었으나, 이제는 시장 점유율 면에서 중국을 따라가기 어려운 상황이며 기술격차도 매우 미미해지는 상황으로 미래 전망이 어두운 상황입니다. 최근 우리 정부의 비상식적인 신재생에너지 정책이 이러한 어려움을 가속화하는 요인이 된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나라는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로 대표되는 차세대 태양전지 기술과 산업을 선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태양전지들이 상용화를 위한 장기적인 안정성 확보의 문제 외에도 태양전지의 핵심 소재들의 환경에 대한 안전성의 확보 또한 매우 중요합니다. 지난 10여년 간 많은 발전과 개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두 가지의 문제에 대한 완전한 해법이 제시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원천단계에서의 새로운 소재의 개발과 발굴이 여전히 매우 중요하며 이는 화학자들의 기여와 역할이 지속적으로 중요함을 의미합니다.
현재 세계적으로 태양전지 산업의 가장 큰 화두는 기존의 실리콘 기반의 태양전지를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로 대표되는 우수한 성능의 차세대 태양전지와의 결합을 통한 안정적이고 고성능의 텐뎀형 소자를 개발하는 것입니다. 수년 내에 상용화를 이끌어 내는 것을 목표로 대기업급의 연구투자와 함께 세계적인 경쟁이 진행 중이지만, 실지로 궁극적인 상업화와 시장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원천적인 안정성 확보의 문제 등으로 인하여 일부 이견이 있기도 합니다. 이러한 관점 외, 실내광 기반의 에너지 하베스팅 소자로서의 활용성 연구가 조용하게 확대되고 있기도 하지만 산업적인 큰 수요를 창출하기는 어렵고, 전반적으로 정부의 에너지 분야의 연구개발 지원 정책과의 부조화 문제로, 태양광전지 분야의 연구개발은 상당히 후퇴하고 침체된 상황이며 국가 경쟁력이 급격히 저하되고 있습니다.
8. 교수님께서 연구하시는 연구 결과 중 가장 뿌듯하다고 느끼셨던 연구가 있으신 가요? 예를 들면 논문
출판 과정이 힘들었거나 어려웠던 실험을 해결하셨던 에피소드가 궁금합니다.
제가 박사 후 연구과정 때 처음 시작된 염료감응형 태양전지(Dye-Sensitized Solar Cell, DSSC) 연구의 수행 과정과 이후 한국에서 독립적으로 수행했던 전해질 연구과정에서 전기화학의 기본 원리를 도입하여 새로운 전해질 개발의 방향을 도출했던 것이 연구자로서 가장 큰 자부심을 느꼈던 경험인 것 같습니다.
첫째는, Caltech 에서의 첫 연구로서, Nathan N. Lewis 교수께서 DSSC의 구동과 성능을 동시에 설명하고 분석할 수 있는 전산모사(Simulation)가 가능한 이론적 모델을 완성해보자고 제안하여 시작한 연구입니다. 석사과정 때 이론 연구를 수행했던 경험과 전기화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력을 염두에 두고 제안한 것으로 판단하였고 또 그리 오래 걸릴 연구가 아니라고 가볍게 생각하여 바로 수락하고 진행하였지만, 이후 2년간 진전을 만들기 위하여 다소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며 완전히 몰입할 수밖에 없었던 과정이었습니다. 당시 DSSC 연구가 활성화되기 시작하면서 많은 관심을 가지기는 했지만 직접적인 실험적 경험이 부족한 채 이론적 설명을 위한 모델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서 다양한 실험 및 이론과 관련된 논문들을 섭렵하고 동료들의 실험 데이터들을 분석하면서 공부하는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고, 이에 더하여 일천한 경험임에도 계산을 위한 프로그램을 작성하는 것은 또 다른 큰 장벽이기도 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전자전달의 속도 계산을 반영하기 위하여 Marcus 이론을 고민하던 중 당시 같은 건물에서 연구를 계속하시던 Luddy Marcus 교수님(1992년 노벨화학상 수상)을 찾아가서 이론의 적용을 주제로 대화했던 것은 연구자로서 잊을 수 없는 기억이기도 합니다. 이후 2년 만에 완성한 결과물이 방대하여 backto-back으로 두 편의 논문을 동시에 투고한 후 받아 본 상세하고도 구체적인 질문들의 수준과 논문의 양에 버금가는 질문의 양에 놀라며 몇 달 동안을 보냈던 기억은 무엇인가를 이루어 보았다는 성취감과 함께 지금도 논문의 준비와 투고 시 항상 생각나는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또 다른 기억은 학자로서 연구의 시작과 해석, 그리고 결론을 도출해 나가는 과정이 매우 즐겁고 뿌듯했던 경험입니다. DSSC의 중요한 성능 지표 중의 하나가 개방전압(Voc)인데, 전해질 내의 요오드기반 redox couple의 전위에 의하여 결정되는 매우 단순한 원리에서 착안하여 할로겐 계열의 고전위를 가지는 다른 물질을 사용하는 방안을 고려했지만 이미 시도된 적이 있음과 실질적으로 전위차가 너무 큰 경우는 성능 개선에 활용할 수 없음을 확인하였습니다. 하지만, 몇 가지 실험 데이터 상의 매우 미세한 차이가 궁금하여 데이터를 분석하던 중 Interhalogen 형태의 redox couple 이 일부 형성되며 혼합 전위가 유발되고, 해당 물질의 열역학적 안정성과 화학적 평형 관계에 따른 농도 조절을 통하여 전체적으로 개방전압의 상승을 유도할 수 있음을 발견하였고 이를 설명하기 위한 Electrochemical Binary redox couple의 개념을 최초로 제시하였습니다. 태양전지 관점에서 획기적인 에너지 변환효율을 달성한 것이 아니어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아쉬움 속에서도 DSSC 연구에서 전기화학적 원리를 직접적으로 활용하고 적용성을 증명했다는 연구자로서 자기만족이 매우 큰 경험이었고, 이후 해당 분야의 최고의 석학들인 Michael Gratzel, Anders Hagfeldt 교수님들과 관련 내용들을 교신하는 계기를 만들 수 있었고, 최근에 인공광전지 개발연구에 필수적인 고투과성 전해질의 개발에도 매우 중요한 기여를 하는 등 여전히 애착을 가지는 연구 결과이기도 합니다.
9. 교수님은 연구/교육 외에 평상 시 취미활동도 궁금합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운동을 매우 좋아하여 다양한 구기 운동에 직접 참여하는 편이었고 그러한 과정에서 기초체력이 상당히 길러졌던 것 같습니다. 특히 유학 생활 동안에는 테니스를 꾸준히 매우 즐겼었고 포스트닥 시절에는 Caltech의 연구자들과 매주 주기적인 운동 모임을 하던 중 지역적으로 서로 멀지 않은 Caltech, UCLA, USC 연구자들과의 교류전을 했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합니다. 교수 임용 후에도 초기에는 동료 교수님들과 종종 기회를 가졌었는데, 지속적으로 이어가지 못하게 되어 많이 아쉽습니다. 개인적 사유로 오랜 동안 운동을 못 하다가, 최근에는 몇 년째 꾸준히 수영을 배우며 건강관리 차원에서 습관화하는 중입니다.
10. 화학 전공 학생들에게 조언의 말씀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앞서 말씀드린 대로 저는 화학과에서 공부를 시작하여 30년간 화학자로 살았고 그동안의 연구의 여정에서 공과대학의 교수로 살게 되었습니다. 이학으로서 화학과 공학에서 바라보는 화학은 분명히 차이가 있습니다만, 공부를 시작하는 입장에서 고민하고 고려해야 할 것은 전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학업이나 연구의 시작이 화학이었던 것이 한계나 제약으로 느껴진 적은 없었고, 오히려 다양한 새로운 분야에 대한 접근성이 가장 뛰어난 학문 분야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학부생으로서 화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스스로를 특별한 학문영역으로서 화학을 선택한 사람으로 정의하기보다는 단지 모든 것으로 향할 수 있는 기초학문을 배운다는 자세로 다양한 내용을 수용하고 섭렵하는 경험을 하기를 권하고자 합니다. 이미 지금은 학문의 경계가 모호해지기도 하고 심지어는 대학 입시에 전공과 무관하게 선발하는 비중이 늘어간다고 합니다. 고등학교에서도 문·이과의 구분이 없어지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시대일 수록 기초 학문으로서의 화학의 비중과 가치가 높아질 것 같습니다.
11. 화학연구를 열심히 해 나가고 있는 신진/중견 화학 연구자에게 조언의 말씀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직업으로서 연구자의 삶은 다른 분야에 비하여 특히 다양성과 독립성 그리고 분야별 관점과 개인적 연구 철학이 크게 다름을 근간으로 하니, 다른 연구자들께 조언을 한다는 것이 매우 주제넘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상당히 조심스럽습니다.
교수로서 살아온 시간에 비례하여 다른 연구자들을 평가를 하는 입장이 될 때가 많아집니다. 피평가자와는 다른 관점에 서게 되는 상황에서 때론 무리하게 현실과 다른 평가와 판단을 하곤 합니다. 국내의 교육 및 연구 환경과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음에도, 지나친 단기 실적 중심의 연구와 목적을 위하여 위하여 많은 것들을 외면하고 희생하거나 과장하는 모습들을 보게 될 때 그 입장을 충분히 이해를 하면서도 또한 비슷한 길을 걸어왔음에도 아쉬울 때가 많습니다. 학자나 연구자들의 가장 중요한 덕목중의 하나는 현실에서 부각되는 중요성이 크지 않더라도 특정 분야의 전문성을 유지하고 본인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을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달성된 연구 성과 및 방향과 목표에 대한 비전을 밝히는 경우가 많은데 지나친 과장으로 연구의 현실과 목표 또는 비전 사이의 괴리를 키우는 것은 연구자 자신이나 연구자 집단, 나아가서는 우리 사회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고 결과적으로 서로 어려워지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명확히 설정된 연구 목표나 결과들을 과장하여 포장하지 않고 꾸준히 한 걸음씩 더 진전시키다 보면, 자기만의 연구 영역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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