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가 하고 싶은 일은 최선을 다하되,항상 열린 마음을 유지하세요.(2026년 2월호)
- 洪均 梁

- 1일 전
- 9분 분량

2026년 2월호 『화학세계가 만난 화학자』에서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양은경 박사님을 초대했습니다. 양 박사님은 서울대학교 화학과에서 생유기화학 석사를, 미국 스탠퍼드대학교에서 생물리화학 박사 과정을 마친 뒤, KIST에서 테라그노시스 연구단장, 의공학연구소장, 연구기획조정본부장, 부원장 등을 역임하며 바이오·의공학 융합연구와 연구조직 운영을 선도해 왔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글로벌 공동연구 플랫폼으로 기대되는 코리아–보스턴 브릿지(K-BB) 센터 설립 추진단장으로서, 국내외 연구 협력과 글로벌 사업화를 이끄는 핵심 리더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혁신적인 의공학 연구 성과와 더불어, 기관 리더로서 건강한 연구문화를 조성해 온 양은경 박사님의 발자취와 과학기술의 미래를 향한 비전을 함께 조명합니다.
[모더레이터: 주정민 교수(경희대학교 화학과)]
Q1. 박사님의 그간 연구 내용과 경력을 소개해 주십시오.
학위 과정에서 제 연구의 기본은 생화학이었습니다. 박사 과정에서는 세포를 구성하는 지방의 동역학을 중심으로 생물물리학을 전공했지만, 화학과에서 수행하는 연구의 뿌리는 결국 생화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후 포닥 과정에서는 세포의 또 다른 핵심 구성 요소인 단백질을 다루는 신경생물학 연구로 자연스럽게 확장되었습니다. 미국 비영리 연구소인 SRI International에 잠시 근무하던 시기에는, 당뇨성 신경병증 치료제 후보 물질의 효과를 동물모델에서 평가하는 등 다국적 제약사들과 협력하며 보다 실용적인 연구를 수행했습니다. 그러던 중 DARPA 프로젝트와 연계되면서 바이오센서 개발에 참여하게 되었고, 이 시점부터 최첨단 기술 개발 쪽으로 본격적으로 발을 들이게 되었습니다. 바이오 콘텐츠를 다루면서도 기술적으로는 랩온어칩(lab-on-a-chip) 분야의 매력에 이끌려 당시 함께 일하던 디렉터를 따라 관련 기업으로 옮기 기도 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제 연구는 큰 틀에서 보면 늘 융합의 연속이었습니다. 생화학을 기반으로 하되, 기술은 칩, 나노, 센서 등으로 자연스럽게 확장됐습니다.
2001년 KIST에 와서 처음 수행한 연구 역시 이러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마이크로시스템 프론티어 사업단과 함께 바이오 어세이를 칩 안에 구현해 미니어처화하고 자동화하는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형광, 형광 편광, 바인딩 어세이 등 실험실에서 하던 실험을 그대로 칩 위에 올리는 방식으로, 말하자면 ‘실험실을 칩 안에 넣는다’라는 개념이었습니다.
그 후에 나노바이오 융합 연구도 병행했습니다. 하버드대학교 연구실에서 기술 훈련을 받으며, 나노와이어를 이용해 세포에 각종 물질을 전달하고, 살아있는 세포 안의 효소 활성을 직접 관찰하거나 특정 분자 를 포획하고 세포의 운명을 조절하는 연구도 수행했습니다. 바이오 콘텐츠 측면에서는 관련 연구를 하던 학계 동료와 함께 저산소증(hypoxia) 신호전달 연구와 약물 스크리닝 실험을 지속했습니다.

KIST에서는 다양한 사업단 중심의 연구개발이 진행됐습니다. 처음에는 기관 고유 사업인 ‘바이오 마이크로 프로세서’ 연구개발을 수행했고, 바로 이어서 제 커리어 경로에 큰 영향을 주신 유명희 박사님을 중심으로 프로테오믹스 프론티어 사업단 준비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사업단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바이오칩을 핵심 요소로 적극 반영하여, 프로테옴 기능 분석을 위해 바이오칩을 질량분석과 접목하는 차별화 전략을 택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산업부 프론티어사업과 과기부 사업이 연결되었고, 양쪽 사업단에서 지원받는 인터프론티어 과제로 바이오칩 기반 진단마커 연구도 수행했습니다. 2010년에 유명희 박사님이 정부의 요 직으로 파견 가시면서 남은 기간 동안 프론티어 사업단 단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여러분의 도움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사업을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2012년에는 다부처 대형 국가연구사업인 유전체 사업의 시범사업으로 다중오믹스 연구사업이 새롭게 출범했고, 제가 프론티어 사업단장을 맡았던 경험 때문에 다시 한번 총괄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산학연 병 연구자들이 참여하여 협력하는 연 40억 원 규모의 프로테오지노믹스 연구를 5년간 수행하며 여러 가지 암 시료에서 지놈, 전사체, 프로테옴 데이터를 통합 분석하였고, 조기 발병형 위암의 서브타입을 규명한 성과도 그 과정에서 도출되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기관 내 보직으로 테라그노시스(theragnosis) 연구단장도 맡게 되었습니다. 테라그노시스는 진단과 치료를 동시에 다루는 분야로, 그동안 제가 수행해 온 융합 연구들과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었습니다. 분자 진단팀과 분자 영상팀을 하나로 묶어 약 2년간 연구단을 운영했습니다.
2014년에는 KIST 하부 인력 핵심인 학생연구원 관련 사항을 관장하는 미래인재본부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학연과 UST 국내외 대학원생, 인턴 학생 등 다양한 인재들을 아우르는 역할이었고, 행정 업무의 비중이 컸습니다. 연구는 주로 밤 시간을 활용해 이어 갔고, 보고서와 계획서를 밤새 작성하는 날도 많았습니다. 실험실 운영은 믿고 맡길 수 있는 동료 연구자들이 큰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이후 해외 연구 협력을 꾸준히 추진해 온 경험을 바탕으로 대외협력본부장을 맡게 되었고, 베트남 VKIST 설립을 비롯해 유럽연구소, 한· 인도센터 등 해외 거점 조직 관리와 다양한 국제 협력 사업을 담당했습니다.

이후에도 융합형 적임자라는 이유로 의공학연구소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생체재료나 바이오닉스가 제 전공 분야는 아니었지만, 필요한 부분은 빠르게 학습하고 조직 간의 칸막이를 줄이는 데 집중하며 연구소 를 운영했습니다. 그 결과 최고 등급의 부서 평가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이 계기가 되어 연구기획조정본부장직도 제안받았습니다. 처음에는 책임의 무게로 인해 고사하기도 했으나, 숙고 끝에 결국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해당 직무는 KIST 전 연구 분야를 총괄하고 기관 출연금 사업 전반을 책임지는 자리였던 만큼, 단기간 내에 조직과 사업의 핵심을 정확히 파악하는 데 집중하였습니다. 이후 부원장으로 임명되어 기관 내부 행정과 연구 운영 전반을 담당하며 3년 반 이상 조직을 안정적으로 운영해 왔습니다.
행정 업무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 온 탓에, 돌이켜보면 제 연구를 한마디로 규정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다만 굳이 표현하자면, 문제 해결에 필요한 요소들을 유연하게 결합해 온 융합형 바이오 연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기술과 콘텐츠, 칩과 오믹스 등 분야의 경계를 넘나들며 상황에 맞게 연결해 가는 방식이었고, 그런 선택들이 자연스럽게 지금까지의 연구 여정으로 이어져 왔습니다.

Q2. 코리아-보스턴 브릿지(K-BB) 센터를 소개해 주십시오. 이 센터를 통해 구상하고 계신 글로벌 공동연구의 방향과 비전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십시오.
K-BB(Korea–Boston Bridge) 센터는 한국의 우수한 연구 성과를 세계 시장으로 가장 신속하게 연결 하기 위한 해외 전략 거점으로 기획되었습니다. 보스턴, 특히 켄달스퀘어는 산·학·연·병·자본이 밀집된 지역으로, 글로벌 바이오·딥테크 생태계의 핵심지로 꼽힙니다. 이러한 환경은 한국 출연연의 기술을 글로벌 기준에서 검증하고 확장하기에 최적의 장소입니다. 그래서 ‘브릿지’라는 이름 그대로, 한국 연구자와 보스턴 혁신 생태계를 직접 연결하는 실질적인 통로가 필요했고, 그 역할을 K-BB가 맡게 된 것입니다.
K-BB 센터는 단순히 물리적 거점을 마련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국내 출연연이 보유한 원천기술이 보스턴 현지에서 즉시 실증되고, 나아가 사업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초기 단계부터 포트폴리오 기반의 운영 체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KIST의 치매치료제 연구 성과를 기반으로 창업된 큐어버스의 해외 기술이 전 사례처럼 연구 성과가 실제 시장으로 이어지는 지속가능한 상용화 생태계를 만들어가기 위해, 논문 중심의 성과를 기술이전, 공동연구, 투자, 창업으로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구조를 지향합니다.
또한 K-BB 센터는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이 있는 과제를 선별하고, 보스턴 현지에서 요구되는 규제, 전문 지식, 자본 인프라와의 정합성을 조율하는 역할도 수행합니다. 중요한 것은 개별 성과 그 자체보다, 여러 이해관계자가 연결될수록 가치가 확장되는 ‘연결 기반 성과’입니다. 공동 특허, 컨소시엄 과제, 기술 공동개발 등 다양한 협력 모델을 통해 한국 기술의 글로벌 존재감을 체계적으로 확장하고자 합니다.
마지막으로 K-BB 센터는 ‘폭보다 깊이’라는 원칙 아래, 보스턴 현지의 연구기관, 병원, 벤처캐피털(VC), 전문가 커뮤니티와 장기적인 협력 기반을 구축해 나가고 있습니다. 현지 공동연구를 통한 기술 실증, 투자자 및 기업과의 사업화 파트너링, 그리고 한·미 공공기관 네트워크(KIC, KHIDI, KASBP, KAPAL 등) 와의 연계를 통해 한국 기술이 현지 생태계 안에서 자연스럽게 뿌리내릴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자 합니다. 궁극적으로는 한국 출연연의 원천기술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글로벌 진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K-BB 센터의 장기적인 비전입니다.
Q3. 오랜 기간 연구나 행정을 하시면서 어려운 점은 없으셨습니까?
연구기획조정본부장을 맡게 된 과정은 앞서 말씀드린 대로, 이전 역할에서의 경험을 긍정적으로 평가 받아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된 부분이었습니다. 당시 부원장님의 추천이 있었고, 이후 그분이 원장으로 취임하시면서 제가 부원장직을 맡게 되었습니다.
연구기획조정본부장은 기관 전체 연구부서를 총괄하는 자리인 만큼 대외 활동과 공식·비공식 모임이 많은 자리인데, 저는 처음부터 “낮 일정 위주로는 가능하지만, 밤늦은 술자리는 참석하기 어렵다”라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 다행히도 “술자리는 우리가 맡겠다”라고 배려해 주셔서, 제 방식대로 업무에 집중 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부원장직을 맡을 때도 동일한 조건이었으며, 개인적으로 사적인 야간 모임에 부담이 큰 편이기에 이러한 사전 조율은 제게 꼭 필요한 부분이었습니다.
힘든 일이 많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지만, 저는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비교적 빠르게 평정심을 되찾는 편입니다. 낙관적인 성향이라 어떤 상황이 주어지면 “그렇다면 해야 할 일을 하면 된다”라고 받아들이고,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대응해 왔습니다. 이러한 태도 덕분에 스트레스를 비교적 짧게 느끼며, 상황에 대한 통제감도 강한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어려운 순간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의사소통이 끝까지 맞지 않아 조율이 쉽지 않았던 경우도 있었고, 기대와 달리 실험에 충분히 몰입하지 않는 학생이나 포닥을 마주할 때는 다른 PI들과 마찬가지로 고민이 따르기도 했습니다.
저는 겉으로는 순해 보이지만, 정리가 필요할 때는 명확하게 결론을 내리는 스타일입니다. 문제를 돌려서 오래 끌기보다는, 당사자에게도 도움이 되는 방향이라고 판단되면 빠르게 결정하는 편입니다. 아주 힘든 순간들도 있었지만, 제 성향 덕분에 그것들이 오래 상처로 남지는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어려움은 그때 그때 정리하고 넘어가며 지금까지 왔습니다.
Q4. 60년의 KIST 역사에서 두 번째 여성 부원장으로도 활동하셨습니다. 여성으로서 특별히 더 어려웠던 점은 없으셨습니까?
제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불이익받았다고 느낀 적은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여성이라는 점이 장점으로 작용한 때도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남성과는 접근 방식에 다소 차이가 있고, 일을 추진할 때도 강하게 밀어 붙이기보다는 조율과 설득을 중심으로 풀어가는 편인데, 이러한 방식이 조직 안에서는 긍정적으로 받아들 여진 경우가 많았습니다.
또 저는 기질적으로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 단체 행동이나 조직 중심의 모임을 원래부터 선호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일정은 제 성향상 어렵습니다”라고 솔직하게 말씀드려도, 주변에서 비교적 자연스럽게 이해해 주는 분위기가 형성되었습니다.
물론 단체 워크숍이나 산행 같은 행사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실제로 혼이 난 적도 있습니다. 한 번은 후배와 함께 휴가를 내고 개인적인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그 시기에 본부 워크숍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나중에 선배 박사님께 크게 혼난 일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일을 크게 마음에 담아 두지는 않았습니다. “앞으로는 조금 더 조심해야겠구나” 정도로 받아들이고 넘어갔습니다.
제가 보직을 맡으면서 많이 줄인 것 중 하나가 바로 단체 활동이었습니다. 의공학연구소장으로 처음 부임했을 때는 매년 단체로 미국 BMES 학회에 참석해 협력 행사, 발표, 채용 관련 활동을 하고, 에어비앤비로 함께 숙박하는 관례가 있었습니다. 첫해에는 기존 관례에 따라 참여했지만, 이후 젊은 연구원들을 한 분 씩 만나 의견을 들어보니 “의미는 있지만,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라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연구자로서 그 시간에 더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을 존중해 해당 관례를 과감히 정리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운이 따랐던 부분도 있습니다. 제가 부원장을 맡고 있던 시기에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단체 모임이나 해외 출장이 크게 줄었습니다. 제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선택적으로 가는 출장은 유지하되,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했던 일정들은 상당 부분 줄일 수 있었고, 그만큼 업무 효율도 높아졌습니다. 대외협력 본부장 시절에는 1년에 50건 가까운 해외 방문단을 맞이하기도 했고, 하루에 두 팀을 응대해야 하는 날도 있었는데, 그런 부담이 자연스럽게 완화되었습니다.
여성 리더십의 장점에 대해 묻는다면, 저는 여성의 리더십은 기본적으로 ‘소프트 파워’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강하게 밀어붙이기보다는 부드럽게 설득하고, 조직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으면서 함께 나아가는 방식의 리더십입니다. 저 역시 외형적으로 강해 보이는 스타일은 아니다 보니, 오히려 그런 점이 조직 내에서 완충 역할을 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혼자만 편한 리더십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까지 함께 편안해질 수 있는 리더십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해 각 개인이 행복해야 조직도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 제 관점이 이러한 리더십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성 리더십은 제게 분명 의미 있고 도움이 되었던 요소였습니다.
Q5. 여성 과학자의 조직 내 리더십 역할 확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직 여성 리더가 충분하지 않은 조직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후배들에게 기회가 오면 망설이지 말고 한번 해보라고 늘 이야기합니다. 물론 연구 부담이 늘어나는 건 사실이지만, 조건을 잘 조율하면 충분히 병행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일을 필요 이상으로 복잡하게 만들지 않고, 최대한 단순화하는 편입니다. 인간관계나 조직 운영에서도 복잡한 요소를 정리하는 데 비교적 익숙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보직을 맡을 때도 “이건 하지 않겠습니다”라는 기준을 분명히 정합니다. 예를 들어 야간 행사나 과도한 단체 활동 등은 처음부터 조건으로 명확히 선을 긋고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경계만 잘 설정해 두면, 실제 업무 수행에는 큰 어려움이 없습니다. 후배들도 그런 방식으로 접근해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보직을 맡으면서 보람을 느낀 순간도 정말 많았습니다. 저는 자신을 개인주의자라고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 진심으로 기쁩니다. 감정이입을 잘하는 편이라, 누군가가 제 조언을 계기로 변화를 만들어 가는 모습을 볼 때 큰 행복을 느낍니다. 아마 저는 평균적인 한국 사람들보다 일상에서 느끼는 행복감이 더 큰 편인 것 같습니다. 작은 일에도 잘 만족하고요.
제가 좋아하는 롤모델은 워런 버핏이나 앤드루 카네기 같은 인물들입니다. 개인의 자율성을 중시하면서 권한을 위임하고, 사람의 잠재력을 믿고 맡기며, 그 사람이 잘할 수 있도록 돕는 리더십을 보여준 분들이 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그런 리더십을 지향하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그래서 후배 중에서 잠재력이 충분하고, 여기에 약간의 이타적인 성향까지 보이는 분이라면 저는 적극적으로 밀어주는 편입니다. 그런 사람이 성장하면 자연스럽게 선순환이 만들어지고, 여성 연구자의 진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커리어에 대한 상담 요청이 있으면 가능하면 응하려고 하고, 제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는 도움이 되기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습니다.
Q6. KIST에서 오랫동안 연구를 이어오셨습니다. 연구 기관으로서 KIST가 지닌 특별한 점과 강점을 소개 해 주십시오.
2001년에 KIST에 합류한 이후 어느덧 꽤 오랜 시간을 이곳에서 보내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KIST의 가장 큰 장점은 단연 ‘자유도’와 ‘원활한 공동연구’입니다. 반복적인 강의 중심의 역할은 제 성향과 맞지 않아, 전통적인 교수직은 저에게 적합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반면 KIST는 연구자가 스스로 연구 주제를 설계하고, 서로 다른 아이디어를 유연하게 연결해 나갈 수 있는 자율성이 크다는 점에서 큰 매력을 지닌 기관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원장님의 성향에 따라 조직문화가 다소 경직되고 “모여서 이것만 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될 때도 있습니다. 다만 솔직히 말하면, 자기 아이디어를 잘 엮기만 하면 여러 과제를 자연스럽게 연결해 수행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바이오칩 연구를 기반으로 저산소증 연구를 결합하고, 여기에 프로테오믹스 또는 다중오믹스 기술까지 연계해 확장하는 방식의 연구 설계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기업과 비교하면 차이는 더욱 분명합니다. 한국 기업은 구조적으로 업무 강도가 높고 초과 근무가 잦은 반면, KIST는 상대적으로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가성비 좋은’ 환경이라고 생각합니다. 연구 외적인 부담이 비교적 적어, 마음먹기에 따라 연구에 깊이 몰입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습니다. 연구를 잘하고 싶은 사람들이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이라는 점에서 큰 장점입니다.
또 하나의 강점은, 아이디어가 개인적 호기심에 그치지 않고 미래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면, 그 아이디어 하나로도 사람을 모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결국 연구에서는 개인의 시도가 출발점이 됩니다. 교수 사회와 비교해 보면, KIST는 연구자 간 협업이 훨씬 활발한 편입니다.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을 때 “같이 해보자”라고 제안할 수 있는 동료를 찾기가 상대적으로 쉽다는 점은 정말 큰 장점입니다.
물론 단점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KIST의 큰 약점 중 하나는 정책 변화에 비교적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창조경제 시기에는 중소기업 지원이 갑작스럽게 강조되면서, 상당수의 연구 인력이 기업 지원 조직으로 이동한 사례도 있었습니다. 기업과의 협력이 중요하다는 점에는 공감하지만, 정책 기조 변화에 따라 연구 인력을 급격히 재배치하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는 새로운 조직을 만들고 정부에서 특정 주제를 제시하면, 연구자들을 한곳에 모아 그 방향으로 연구를 진행하는 방식도 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러한 접근이 연구소의 본질과는 다소 어긋난다고 느낍니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대부분 개인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지, 여러 사람이 동시에 모여서 만들어지기는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연구소에는 일정 수준의 ‘자유도’가 필요합니다. 그래야만 새로운 시대를 여는 연구 주제가 자연스럽게 등장할 수 있습니다. 정책 방향이 바뀔 때마다 연구 방향까지 크게 흔들리게 되면, 연구자들은 점점 지치게 됩니다. 겉으로는 정책 요구에 대응하되, 그 이면에서는 연구자가 자신의 문제의식을 이어갈 수 있는 완충 공간이 존재해야 합니다. 그런 공간이 사라질수록 연구 현장은 더 어려워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Q7. 급변하는 AI 시대에 대해 후배 연구자에게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AI는 이제 선택이 아니라 반드시 배워야 할 기본 역량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AI를 활용하면서 업무 효율이 눈에 띄게 높아졌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평가나 분석, 문서 작성과 같은 작업에서는 기본적인 정리를 AI가 빠르고 정확하게 해주기 때문에, 저는 그 결과를 바탕으로 여러 모델을 비교하고 제 관점에서 다시 판단하는 데 집중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시간 절약 효과가 큽니다.
최근 한 이사회에서도 인상적인 경험을 했습니다. 감사 관련 규정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어떤 법령을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나왔습니다. 저는 별다른 논의 없이 AI 도구를 바로 열어 상위 법령이 무엇인지 질문했고, 몇 초 만에 정확한 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 이런 시대에 굳이 회의에서 오랜 시간 논쟁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AI를 하나의 ‘플랫폼’으로 보고 있습니다. 앞으로 모든 분야에서 기본 도구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과거 ‘나노학과’가 급격히 늘었다가 사라진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노기술은 그 자체가 하나의 독립 학문이기보다는, 모든 분야에 스며드는 공통 기술이었기 때문입니다. AI 역시 마찬 가지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정 전용 학과로 분리되기보다는, 모든 학과와 전공의 기반 도구가 될 가능성 이 큽니다.
이런 관점에서 저는 학부 과정에 별도의 AI 학과를 만드는 방식에는 큰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AI 자체를 개발하는 고급 연구는 대학원에서 충분히 다룰 수 있습니다. 학부에서는 기존 전공을 탄탄히 다지고, AI 는 교양필수이자 도구로 익히며, 이후 각자가 가진 전문 분야에 AI를 접목하는 방식이 가장 현실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AI는 모든 분야의 밑바탕에 깔리는 기술이 될 것이며, 이는 매우 자연스러운 흐름입니다. 결국 가장 중요한 역량은 ‘문제를 정확하게 정의하는 능력’이 될 것입니다. AI는 어디까지나 도구이고, 프롬프트 역시 AI의 도움을 받아 설계할 수 있는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 속에서 미국을 중심으로 엔지니어 채용을 줄이고, 문제 정의와 해석에 강점이 있는 인문·사회계 출신 인재를 적극적으로 채용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고 봅니다.
Q8. 젊은 연구자에게 추가로 조언을 해주신다면 어떤 가치나 태도를 가장 중요하게 말씀하시고 싶으신 가요?
한국 화학 연구 생태계가 조금 보수적이라는 점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수학도 보수적이지만 AI라는 연결 고리가 생기면 금방 도약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화학은 “우리는 화학이다”라는 전통적 정체성이 강해 새로운 기술에 문을 여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 같습니다. 물론 새로운 시도를 하는 분들도 적지 않지만, 전체적으로는 보수성이 짙습니다. 저는 이 분야가 좀 더 열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초는 중요하지만, 기초에만 머물러서는 변화가 빠른 시대를 따라가기 어렵습니다.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저는 젊을 때 아주 열심히 살지 않았습니다. 수업도 잘 안 들어가고 시험만 보던 학생이었고, 그게 좋은 방식이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요즘 젊은 연구자를 보면 반대로 너무 열심히만 살아서 걱정입니다. “저렇게 사는 게 정말 좋은가?”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유로운 시간이 필요합니다. 나와 상관없는 사람과 만나고,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를 경험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앞으로 세상은 점점 더 얽히는 구조가 될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저는 젊은 연구자에게 늘 이렇게 말합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는 최선을 다하되, 열린 마음은 잃지 말아야 한다고요. 다양성은 매우 중요합니다. 해보지 않은 것에 도전하고, 다른 사람들과 협업하며, 익숙하지 않은 분야에도 한 걸음 다가가 보는 경험이 결국 새로운 길을 만들어 줍니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노는 시간’ 역시 필요합니다. 게임도 하고, 취미 생활도 하고, 여행도 하면서 숨을 고를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이런 여유가 오히려 더 긴 호흡의 연구를 가능하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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