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체분자들이 생명체 내에서 어떤 구조를 가지고 변화하는가는 생명이 작동하는 원리를 분자 수준에서 이해하기 위해 꼭 필요한 정보이다. 지난 한 세기 동안 X선 결정학, 핵자기 공명 분광학, 전자현미경과 같은 여러 가지 기술들이 개발되어 생체분자 구조 분석에 활용되었고, 특히 X선 결정학은 2019년 현재까지 약 14만 개의 생체분자 구조를 규명하는 등 큰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 분석은 대부분 균질(homogeneous)하며 하나의 형태로 고정(static)되어 있는 생체분자들에 제한 되어왔다. 하지만 자연계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생명 현상들은 다양한 종류의 생체분자들이 동시에 집단적으로 상호작용을 주고받거나, 구조적으로 불균질(heterogeneous)한 상태를 거치는 등, 시간과 공간을 무대로 매우 역동적(dynamic)인 변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동적 생체분자 구조 분석 연구실(연구책임자 카이스트 화학과 정용원 교수)에서는 시간 분해능(time resolution), 새로운 혼합/냉각법 등이 적용된 시간분해 초저온 전자현미경(cryo-EM) 분석법 개발을 통해 기존의 방식으로는 구조 규명이 거의 불가능했던, 불균질하며 역동적인, 그리고 다수의 생체분자가 관여된 과정들에 대한 새로운 구조 연구 방법론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림 1. 동적 생체분자 프로세스 시간분해 구조 분석
시간분해 구조 분석 방법론의 개발을 위해 본 연구실에서는 1) 미세유체역학 소자가 적용된 시간분해 cryo-EM 기법을 확립하고, 2) 생체분자 동역학 예측 및 분석을 위한 이론 모델링을 접목하여, 3) 전사과정에서 일어나는 RNA 중합 효소 복합체의 시간에 따른 구조 변화를 관찰 및 분석하고, 4) 케이지 단백질을 모델로 초분자 단백질 구조체의 시간에 따른 조립과정의 구조적 정보를 얻고자 한다. 이와 같은 다학제적인 집단연구의 수행을 위해 본 연구실에는 단백질 초분자 조립분야에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연구책임자(정용원)와 함께, 미세유체역학(카이스트 물리과 이원희 교수), 생물리화학(부산대 화학과 최정모 교수), 구조생화학(카이스트 화학과 강진영 교수) 분야에 높은 전문성을 가지는 연구진들이 참여하고 있다.
그림 2. 동적 생체고분자 구조 분석 연구실
Project 1. 시간분해 초저온 현미경 시스템 개발
동적 생체고분자 프로세스의 실험적 관측을 위하여 최근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시간분해 초저온 전자현미경 기법을 개발하고 있다. 생체고분자의 시간에 따른 구조 변화는 여러 가지 연구기법으로 접근이 가능하지만, 최근 특정 반응 시간을 가지는 생체고분자 샘플을 초저온 현미경 샘플로 준비하여 초저온 현미경을 이용한 구조연구의 장점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들이 개발되고 있다. 본 연구실에서는 기존의 미세유체 시스템을 더욱 개선한 미세유체 스프레이 시스템을 개발하고 더 빠른 시간분해능을 얻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시간분해 초저온 전자현미경 기법은 빠른 유체 혼합을 통해 생체고분자의 반응을 개시시키고 이를 미세액적(microdroplet)으로 분사하고 빠르게 얼림으로써 원하는 반응시간대의 분자구조를 초저온 전자현미경으로 분석하는 기법이다. 미세유체디바이스를 이용하면 1ms 이하의 빠른 시간에 유체를 균일하게 혼합하는 것이 가능하여, 생체고분자와 반응개시 유도물질을 빠르게 혼합한 뒤에 특정 시간 후에 샘플을 스프레이노즐을 통해 그리드에 분사하여 얼리게 되면 특정 반응 시간대에 따른 생체분자 구조를 분석할 수 있게 된다. 시간분해 초저온 전자현미경 샘플을 준비하는 기법은 비교적 최근에 최초로 발표되어 여러 가지 부분에서 개선의 여지가 있다. 본 연구실에서는 패릴린(parylene)기반의 박막미세유체 디바이스를 이용하여 미세유체 혼합기와 스프레이 노즐을 구성하였다. 스프레이 노즐에서 고압의 가스로 샘플을 분사하는 과정에서 얇은 박막으로 만들어진 미세유체노즐 구조로 인해 더 균일한 스프레이가 형성되도록 하고, 샘플의 반응 시간 편차를 줄이는 효과가 기대된다. 또한 나노와이어 그리드를 이용하여 얼음샘플의 두깨를 더 얇게 형성하고, 샘플이 준비되는 시간을 더욱 짧게 하여 시간분해능을 더 높일 수 있는 방법도 연구하고 있다. [그림3]
그림 3. 미세유체 디바이스를 이용한 시간분해 초저온 전자현미경 기법 개발
Project 2. 시간분해 초저온 전자현미경 시스템을 이용한 RNA합성효소의 전사 종결 연구
RNA 합성효소(RNA polymerase)는 생명의 중심교리(Central Dogma)인 DNA→RNA→단백질로 이루어지는 유전자의 발현 과정에서 DNA의 유전정보를 RNA로 전사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매우 중요한 효소이다. DNA를 템플릿으로 하여 RNA를 합성하는 전사 과정은 크게 전사의 개시, RNA 연장, 전사의 종결 3단계로 이루어지는데, 개시에서 연장 단계로 진행될 때, 또 연장 단계가 종결 단계로 변환될 때 해당 유전자 발현의 조절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단계의 전환은 RNA 합성효소와 DNA, RNA 사이의 상호작용의 급격한 변화를 동반하며 이때 일어나는 구조 변화를 관찰하는 데에는 기존의 구조 규명 방법론으로는 한계가 있다. 이에 본 연구실에서는 새로이 개발될 시간 분해 초저온 전자현미경 시스템을 이용하여 RNA합성효소가 RNA를 합성하는 과정, 특히 합성이 종결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RNA 합성효소와 핵산의 구조 변화를 관측하고자 한다.
그림 4. 대장균 RNA 합성효소의 구조와 전사 과정의 3단계 모식도
본 연구실에서는 이를 위해 RNA합성효소 연장 복합체를 형성한 후, 기질을 첨가하여 전사 반응을 일으키고 전사 종결이 일어날 때까지의 대략적인 시간을 다양한 초저온 전자현미경 시료 제작 조건에서 방사능 표지 전사어쎄이를 이용하여 확인하고 있다. 또한, 개발 단계에 따라 다른 소재와 특징을 가지는 미세유체역학소자들이 단백질의 농도와 버퍼 조건에 따라 어떻게 혼합되고 분사되는지 확인할 수 있도록 단백질 시료들을 개발하고 있다. 또한, 이론적 분석법을 적용하여 RNA 합성효소의 구조 변화와 효소 활성의 상관관계에 관해서도 탐구하고 있다.
Project 3. 초분자 단백질 조립과정의 시간분해 구조 분석
많은 생체분자 프로세스는 하나의 단백질이 아닌 다수의 단백질들이 정밀하며 동적인 자기조립을 통해 형성하는 초분자 단백질 조립체(supramolecular protein assembly)를 통해 이루어진다. 대표적인 초분자 구조체로 바이러스 capsid나 페리틴과 같은 케이지(cage) 단백질들이 있으며, 이들은 수십에서 수백 개에 이르는 단백질 building block 들의 조립을 통해 만들어진다. 다양한 거대 단백질 조립체의 구조가 전자현미경을 중심으로 밝혀지고 있으나, 이들의 조립과정에서의 구조적인 정보는 매우 제한적이다.
본 연구실에서는 초분자 단백질 구조체로 인간 페리틴(ferritin) 케이지 단백질을 우선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페리틴은 24개의 building block 단백질이 약 12nm 지름을 가지는 케이지를 이루며, 산성 및 염기성 pH 용액에서 분해가 이루어지고 중성 용액에서 다시 조립이 이루어진다. 이때 pH 변화에 의한 페리틴 조립은 수십 m 초에서 수초 사이에 조립이 이루어짐이 예상되고 있다. 조립과정에서 정밀한 cryo-EM 구조 분석을 위하여 더욱더 다양한 분해/조립 전략을 수립하고, 단백질 폴딩을 분해하는 Urea, 온도, 단백질 농도 등을 변화하면서 페리틴의 분해 및 조립과정의 변화를 관찰하고 있다. 또한 향후 다양한 종류의 페리틴 변형체들을 제작하여 이들의 분해/조립과정에의 영향을 분석할 예정이다.
그림 5. 초분자 단백질 조립과정의 시간분해 구조 분석
본질적으로 무질서한 단백질, 혹은 비정형 단백질(intrinsically disordered protein, IDP)은 구조적으로 불균질한 단백질의 대표적인 예이다. 최근 여러 IDP 간의 약한 다중적 결합을 통해 생체분자의 상 분리(phase separation) 현상이 일어나며, 이를 통해 형성된 높은 농도의 생체분자 응축체(condensate)가 세포 작용에 중요한 역할을 함이 밝혀지고 있다. 하지만 IDP의 경우 특정 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일반적인 구조생물학 기법을 적용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고, 특히 응축체 형성과정에서 IDP 간의 결합 및 IDP 분포가 어떤 방법으로 순차적으로 변화하는지에 대해 알려진 부분은 미미하다. 본 연구실에서는 시간분해 전자현미경 분석법을 이용하여 케이지 단백질 조립과정 분석과 함께, IDP 상분리 과정에서 각 IDP 분자들의 분포 변화 및 상호작용 변화에 대한 정보를 분석하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Project 4. 동적 생체분자 과정의 이론적 분석법 개발
이론 및 시뮬레이션은 실험 데이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정보의 빈자리를 채워줄 수 있다. 특히 본 연구단에서는 동적인 생체분자 과정을 연구하기에, 실험에서 얻은 구조 데이터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전이 상태를 시뮬레이션하거나 구조의 변화를 추동하는 열역학적 양 등을 이론적으로 계산해 분자 과정에 대한 보다 완벽한 이해를 추구하고 있다.
그간 생체분자 시뮬레이션 연구는 고정된 단일 성분 시스템을 주요 대상으로 해왔다. 대표적인 예로 단일한 구조를 가지는 단백질의 접힘 시뮬레이션을 들 수 있으며, 목표 구조가 분명하기에 시뮬레이션이 해당 구조와 얼마나 유사한 구조를 예측하는지를 통해 시뮬레이션의 정확성을 정량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전통적인 시뮬레이션 기법으로는 동적인 시스템을 정확하게 다루기 어렵다. 본 기초연구실에서는 동적인 생체분자 시스템을 정량적으로 기술하고 그 거동을 예측할 수 있는 이론적 기법을 개발하고, 실험 결과와 비교하여 그 정확도를 개선하고 있다.
전사 복합체의 동역학은 다양한 구조들이 순서대로 변환되면서 체계적으로 진행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본 연구단에서는 실험적으로 결정된 구조들을 에너지 전경(energy landscape)의 극소점으로 보고, 전사 복합체의 동역학을 규정하는 반응 좌표를 끌어내는 전략을 사용하였다. 이 반응 좌표상에서 원자 수준 분자동역학(molecular dynamics, MD) 시뮬레이션을 수행하면 각 구조의 열역학적 안정성을 계산하는 한편, 전이 상태를 결정하여 속도 상수들도 추출할 수 있다. 이러한 값들은 실험값과 직접 비교할 수 있으므로 비교를 통해 시뮬레이션의 정확도를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케이지 단백질은 전사 복합체에 비해 더 규모가 크기 때문에 원자 수준 시뮬레이션을 수행하기 어렵다. 또한 케이지 단백질의 조립은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과정이 아니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전사 복합체의 경우와는 다른 전략이 필요하고, 본 연구단에서는 거칠게 보기(coarse-graining) 기법을 활용하고자 한다. 거칠게 보기 기법이란, 분자를 구성하는 원자들을 하나하나 모델링하는 대신 원자들의 모임을 하나의 입자로 처리하는 기법이다. 결과적으로 시뮬레이션에 필요한 자원을 절약할 수 있고, 더 많은 수의 분자들을 다룰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먼저 케이지 단백질의 조립과정에 사용되는 단위체를 대상으로 원자 수준 시뮬레이션을 수행하여 그 구조적인 특징을 이해하고, 이 특징을 그대로 담아낼 수 있는 보다 단순한 모형을 수립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단위체-단위체 상호작용을 정확하게 묘사하는 것이므로, 원자 수준 시뮬레이션에서 얻어진 데이터를 기반으로 기계 학습(machine learning) 기법을 사용하여 단위체의 상호작용 매개변수들을 체계적으로 결정할 것이다. 이렇게 거칠게 보기 기법으로 새로운 모형을 얻어내면 이 모형을 가지고 시뮬레이션을 수행할 수 있고, 이를 통해 개별적인 단위체들이 어떤 조립과정을 거쳐 초분자 구조를 이루는지 밝혀낼 수 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실험적으로 검증 가능한 예측들을 제시하여 교차 검증을 수행할 것이다.
그림 6. 동적 생체분자 과정을 이론적으로 연구하기 위한 전략
정용원 연구책임자
카이스트 화학과 교수
동적 생체고분자 구조 분석 연구실은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생체분자들의 순차적 구조 정보를 분석할 수 있게 하는 새로운 구조 연구 방법론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연구단을 이끌고 있는 정용원 교수는 카이스트 화학과에서 학부 졸업 및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MIT에서 플라티늄 항암제 손상 DNA(Platinum-cancer drug damaged DNA)관련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그 후,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서 선임연구원으로 근무하다가 2012년 카이스트 화학과 교수로 연구 활동을 시작하였다. 정용원 교수 연구실에서는 단백질 화학 특히 단백질 초분자 조립 및 상분리 관련 연구를 수행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생체분자 물질을 개발하고 있다. 현재는 한국연구재단 기초연구실과제인 “동적 생체고분자 구조 분석 연구실” 과제 연구책임자로 연구사업을 수행 중이다. 현재 연구단에는 연구책임자 정용원 교수를 포함하여 공동연구자로 카이스트 화학과 강진영 교수, 카이스트 물리과 이원희 교수, 부산대 화학과 최정모 교수 및 박사 후 연구원 1명, 박사과정 14명, 석사과정 3명 등 총 22명이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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