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 교수님 추모사] (화학세계 2026년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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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유기합성화학의 개척자, 이은 교수님을 추모하며

우리나라 화학사에 큰 족적을 남기신 이은 교수님께서 우리 곁을 떠나신 지도 어느덧 1년이 되어간다[사진 1]. 시간이 흐르면서 슬픔은 조금씩 가라앉았지만, 교수님의 빈자리는 오히려 더욱 크게 느껴진다. 우리나라 유기합성화학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셨던 연구자였고, 수많은 제자를 길러 우리 화학계의 학문적 토대를 마련하신 교육자였으며, 대한화학회와 국제 학술교류를 통해 우리나라 화학계의 위상을 높인 학계의 지도자였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학자를 평가하는 기준은 다양하다. 발표한 논문의 수나 피인용 횟수, 새로운 발견이나 학문적 성취도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진정으로 큰 학자는 자신이 이룬 연구 성과를 넘어 새로운 학문 전통을 만들고, 후학을 길러 다음 세대를 준비시키며, 학문 리나라 유기합성화학의 역사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교수님은 국내에 유기합성 연구의 기반이 거의 마련되지 않았던 시절부터 세계적 수준의 연구를 개척하였고, 새로운 연구 문화를 정착시켰으며, 수십 년에 걸쳐 길러낸 제자들을 통해 우리나라 유기합성화학의 지평을 크게 넓히셨다. 오늘날 우리나라 유기합성화학은 국제 학계에서도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으며, 세계 유수의 대학과 연구기관에서 활약하는 많은 한국인 연구자들이 있다. 이러한 성과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이은 교수님을 비롯한 선구자들이 국내 연구 기반이 매우 열악했던 시절부터 세계와 경쟁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묵묵히 연구와 교육에 헌신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교수님의 삶은 곧 우리나라 유기합성화학이 성장해 온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록 필자는 교수님을 직접 사사한 적이 없고, 연구 분야가 달라 교류의 기회도 제한적이었지만, 학자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교수님께서 보내주신 따뜻한 격려와 아낌없는 성원은 큰 힘이 되었다. 교수님에 대한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간직하며, 부족하나마 객관적인 시각에서 교수님의 학문적 업적과 우리 화학계에 남기신 유산을 되돌아보고자 한다.
1946년 서울에서 태어난 이은 교수님은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965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화학과에 입학, 화학에 입문하였다. 단과대학 수석 입학, 수석 졸업의 영예와 함께 교수님은 기초과학이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 되어야 한다는 믿음으로, 보다 넓은 학문의 세계에서 연구를 이어가기 위해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1974년 미국 Yale University 화학과에서 저명한 유기화학자인 Alastair Ian Scott 교수의 지도를 받아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당시 Scott 교수 연구실은 생합성과 유기합성, 그리고 반응 메커니즘을 유기적으로 결합한 연구를 수행하는 세계 최고의 연구실 가운데 하나였으며, 교수님은 박사과정에서 천연물인 stipitatonic acid의 생합성과 비타민 B12의 생합성을 연구하였다. 박사학위 취득 후에는 Columbia University의 Koji Nakanishi 교수 연구실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근무하면서 곤충 호르몬인 α-ecdysone의 전합성(total synthesis) 연구를 수행하였다. 이어 Carl Djerassi가 설립한 Zoecon 연구소에서 곤충 성장 조절 호르몬의 합성과 생합성 연구에 참여하였다. 생합성 연구와 전합성 연구, 그리고 산업체 연구를 모두 경험한 이러한 이력은 매우 드문 것이었다. 특히 생합성의 관점에서 출발하여 전합성으로 연구 영역을 확장한 경험은 이후 교수님 연구의 가장 큰 특징 가운데 하나가 된다. 새로운 유기반응을 개발하고 이를 다시 복잡한 천연물의 전합성에 적용하는 연구 방식은 이러한 폭넓은 연구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1977년 서울대학교 화학과로 부임한 교수님을 기다리고 있던 현실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당시 우리나라의 연구 환경은 오늘날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열악하였으며, 복잡한 천연물의 전합성을 수행하기에는 연구비와 장비, 연구 인력 모두 절대적으로 부족하였다. 그러나 교수님은 연구 환경을 탓하기보다 우리나라에서도 세계 수준의 연구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증명하고자 하였다. 목표는 처음부터 분명하였다. 국내에서도 세계와 경쟁할 수 있는 유기합성 연구실을 만드는 것이었다. 교수님께서는 평소 “학문은 국경을 넘어야 한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연구의 가치는 어느 나라에서 수행되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고 얼마나 본질적인 답을 제시하였는가에 의해 결정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젊은 연구자들에게는 언제나 세계를 무대로 연구하라고 격려하셨으며, 많은 제자들을 해외 유수 연구실로 보내 국제적인 연구 경험을 쌓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셨다. 훗날 여러 제자들이 성장하여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게 된 것도 이러한 교육 철학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귀국 초기에는 비교적 구조가 단순한 천연물의 전합성을 중심으로 연구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는 단순히 작은 분자를 합성하는 데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새로운 입체선택적 반응을 개발하고 이를 실제 천연물 합성에 적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과정이었다. 그 결실 가운데 하나가 입체선택적 oxy-Cope rearrangement를 이용한 dihydromayurone의 전합성이었다. 이 연구는 후일 미국화학회지(Journal of the American Chemical Society)에 게재되었으며(1990년), 이후 독창적인 유기반응 개발 연구의 출발점이 되었다. 이어 입체선택적 Favorskii rearrangement를 이용한 다양한 천연물 전합성을 발표하면서 국제 유기합성학계에서도 점차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교수님의 연구가 본격적으로 새로운 단계로 도약한 것은 1985년 영국 University of Oxford의 Jack Edward Baldwin 교수 연구실에 머물면서 라디칼(radical) 반응을 접한 이후였다. 당시 유기합성 분야에서 라디칼 반응은 이제 막 가능성이 주목받기 시작하던 연구 분야였으며, 이를 복잡한 천연물 전합성에 체계적으로 적용한 사례는 많지 않았다. 교수님은 귀국 후 이러한 새로운 개념을 국내 연구실에 도입하였고, 이를 독창적으로 발전시켜 세계적인 연구 성과를 만들어 냈다. 초기에는 propiolate를 분자 내 라디칼 수용체로 이용한 일련의 연구를 수행하였으며, 이어 β-alkoxyacrylate를 이용하면 cis-2,5-이치환 oxolane과 cis-2,6-이치환 oxocene 골격을 거의 완벽한 입체선택성으로 구축할 수 있음을 발견하였다. 이러한 새로운 합성 전략은 곧바로 해양 천연물인 dactomelyne의 전합성에 적용되었으며, 이어 kumausyne, kumausallene 등의 전합성으로 이어졌다. 또한 β-aminoacrylate를 이용한 라디칼 반응을 개발하여 (−)-indolizidine 223AB를 비롯한 다양한 알칼로이드 천연물의 합성에도 성공하였다. 이 시기의 연구는 단순히 새로운 천연물을 합성한 것이 아니라, 이후 세계 여러 연구실에서 활용되는 새로운 합성 전략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더욱 큰 의미를 가진다.
1999년 연구실이 국가지정연구실(National Research Laboratory)로 지정되면서 교수님의 연구는 또 한 번의 전기를 맞게 되었다. 연구 인프라가 크게 향상되면서 보다 복잡하고 도전적인 천연물 전합성 연구가 가능해졌고, 이 시기는 이은 교수 연구실이 세계적 연구실로 확고히 자리 잡은 시기로 평가된다. 항생제 pamamycin-607, 항진균제 ambruticin, 항암 활성을 갖는 lasonolide A, 금속이온 리간드 SCH 351448, feigrisolide C, IKD-8344, Amphidinolide E, K, X, Rolliniastatin 1, Jimenezin, Epigyrosanolide E 등 구조가 극도로 복잡한 천연물들의 전합성을 연이어 성공시켰다. 이 가운데 lasonolide A와 feigrisolide C의 경우에는 기존에 보고된 천연물 구조 자체가 잘못되었음을 밝혀내고 올바른 구조를 제시하기도 하였다. 이는 전합성이 단순히 화합물을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천연물의 실제 구조를 검증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임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교수님의 연구를 단순히 “많은 천연물을 합성하였다”는 사실만으로 평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교수님 연구의 진정한 가치는 새로운 유기반응을 개발하고 이를 실제 천연물 합성에 적용하는 선순환적 연구 프로그램을 구축한 데 있다. 하나의 새로운 반응은 하나의 논문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복잡한 천연물 전합성에 응용되면서 그 가치를 입증하였다. 다시 전합성 과정에서 발견된 새로운 문제는 또 다른 반응 개발로 이어졌고, 이러한 연구의 축적은 교수님 연구실만의 독창적인 연구 전통을 형성하였다. 오늘날 유기합성화학에서 ‘방법론(methodology)’과 ‘전합성(total synthesis)’을 상호 보완적으로 발전시키는 연구가 하나의 중요한 흐름으로 자리 잡게 된 것도 이러한 연구 철학과 무관하지 않다. Stanford University의 Paul Wender 교수는 이은 교수님의 65세를 기념하여 발간된 Chemistry – An Asian Journal 특집호[사진 2]의 헌정 글에서, “합성화학은 과학일 뿐 아니라 예술의 측면도 지니며, 이은 교수의 여러 전합성 연구는 높은 수준의 과학(high science)이자 높은 수준의 예술(high art)을 보여준다.”라고 평가하였다. 또한 교수님이 음이온, 카벤, 라디칼, 유기금속 시약, 카보양이온 등 거의 모든 반응성 중간체를 자유롭게 활용하면서 새로운 합성 전략을 끊임없이 제시하였다고 회고하였다. 이러한 평가는 단순한 찬사가 아니라, 세계 유기합성학계를 대표하는 연구자가 동료 과학자에게 내린 학문적 평가라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돌이켜보면 교수님의 연구는 언제나 유행을 좇기보다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교수님께서 자주 말씀하시던 “연구는 단순한 실험이 아니라 진실을 향한 여정”이라는 말은 이러한 연구 철학을 가장 잘 보여준다. 복잡한 천연물을 합성하는 일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새로운 반응을 발견하고 분자의 구조와 반응성을 더 깊이 이해하는 것이 진정한 연구의 목표라는 믿음이었다. 이러한 학문관은 교수님의 연구 전반에 일관되게 흐르고 있었으며, 수많은 제자들에게도 자연스럽게 전해졌다.
연구자로서의 이은 교수님이 새로운 유기반응과 천연물 전합성 연구를 통해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면, 교육자로서의 교수님은 우리나라 유기합성화학의 미래를 설계한 스승이었다. 뛰어난 연구 성과는 한 세대에서 끝날 수 있지만, 훌륭한 제자는 다음 세대의 학문을 이어간다. 그런 의미에서 교수님의 가장 큰 업적 가운데 하나는 수십 년에 걸쳐 우리나라 유기합성화학의 인적 기반을 구축한 데 있다고 생각한다. 교수님은 서울대학교 재직 기간 동안 140명의 석사와 22명의 박사를 배출하였으며, 정년퇴임에 이르기까지 제자들의 연구와 성장을 이끌며 우리나라 유기합성화학의 인적 기반을 다지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사진 3]. 숫자만으로도 적지 않은 규모이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이들 가운데 많은 연구자들이 국내외 대학과 정부출연연구기관, 산업계에서 우리나라 유기합성화학을 이끌어 가는 중심 연구자로 성장하였다는 점이다. 오늘날 국내 여러 대학의 유기합성 연구실을 살펴보면 직간접적으로 이은 교수님의 연구실에서 수학한 연구자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는 교수님께서 단순히 우수한 연구를 수행한 데 그치지 않고, 하나의 학문적 전통을 구축하였음을 보여준다.

교수님은 항상 세계를 무대로 연구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국내 연구 환경의 한계를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던 교수님은 학생들이 더 넓은 연구 환경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를 경험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해외 유학을 권하셨고, 국제 공동연구의 기회를 마련하기 위해 힘쓰셨다. 그 결실은 제자들의 성장으로 이어졌다. 2001년에는 교수님의 연구실 출신 이대성 박사가 University of Wisconsin–Madison, 이철범 박사가 Princeton University, 권오현 박사가 UCLA의 교수로 잇달아 임용되었다. 당시 미국 유기화학 분야에서 신규 교수 임용은 세계 최고의 연구자들이 경쟁하는 매우 어려운 과정이었으며, 세 명의 한국인 연구자가 거의 동시에 미국 명문대학 교수로 임용된 것은 당시 국내 기초과학계에서도 큰 화제였다. 언론에서는 이를 “국내 기초과학계에 대단히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평가하였다. 그러나 교수님께서는 이러한 성과를 결코 자신의 공으로 이야기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학생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더 큰 연구를 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컸다. 후학들이 자신보다 더 뛰어난 연구자가 되어야 한다는 믿음은 교수님의 교육 철학을 이루는 중요한 축이었다. 오늘날 세계 여러 대학과 연구기관에서 활약하고 있는 제자들은 교수님이 남긴 가장 소중한 학문적 유산이라 할 수 있다.
연구실에서의 교수님은 매우 엄격하셨다. 연구 결과를 논의할 때에는 작은 논리적 허점도 쉽게 지나치지 않으셨고, 실험 결과의 재현성과 해석의 타당성을 끝까지 확인하셨다. 새로운 반응을 제안할 때에는 반드시 충분한 근거를 갖추도록 하셨으며, 학생들에게는 언제나 “왜 그런가?”라는 질문을 반복하셨다. 이러한 엄격함은 연구의 수준을 높이는 원동력이 되었고, 제자들에게는 평생 연구자로 살아가는 기본 자세를 익히게 하였다. 교수님께서는 연구 외적인 활동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극히 삼가셨다. 언론 인터뷰도 거의 하지 않으셨으며, 학자는 연구와 교육이라는 본분에 충실해야 한다는 신념을 평생 지키셨다. 연구에 대한 이러한 태도는 교수님이 자주 말씀하시던 또 하나의 가르침으로 이어졌다. 교수님은 “연구는 단순한 실험이 아니라 진실을 향한 여정”이라고 강조하셨다. 연구는 논문 한 편을 발표하기 위한 과정이 아니라 자연의 원리를 이해하기 위한 끊임없는 탐구이며, 연구자는 무엇보다 진실 앞에 정직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이러한 말씀은 단순한 훈계가 아니라 평생을 연구실에서 몸소 실천하신 삶의 원칙이었다. 교수님이 남긴 가장 큰 가르침은 특정한 실험기법이나 합성 전략이 아니라, 학문을 대하는 이러한 태도였는지도 모른다.

교육자로서의 이은 교수님은 학생들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세계와 경쟁하는 연구자가 갖추어야 할 학문적 엄격함과 국제적 시야, 그리고 연구자의 윤리와 책임감을 함께 가르치셨다. 이러한 교육 철학은 제자들을 통해 지금도 우리나라 유기합성화학의 연구 현장에서 이어지고 있으며, 앞으로도 오랫동안 살아 있는 유산으로 남을 것이다. 이은 교수님의 공헌은 연구실 안에만 머물지 않았다. 뛰어난 연구자이자 교육자였던 교수님은 우리나라 유기합성화학이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우수한 연구자 개인뿐 아니라 건강한 학문 공동체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계셨다. 이러한 인식은 평생에 걸친 학회 활동과 국제 학술교류, 그리고 후학을 위한 학문적 기반 구축으로 이어졌다. 교수님은 대한화학회 유기화학분과회의 창립 과정에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분과회의 발전을 위해 오랫동안 헌신하였다[사진 4]. 특히 유기화학분과회 하계워크숍을 정례화하여 젊은 연구자와 대학원생들이 자유롭게 연구를 토론하고 교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한 것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중요한 전통이 되었다. 지금은 자연스러운 학술행사로 자리 잡았지만, 당시에는 국내 연구자들이 서로의 연구를 심도 있게 논의하고 새로운 공동연구를 모색할 수 있는 기회가 매우 제한적이었다. 교수님은 이러한 학문적 소통이야말로 연구 수준을 높이는 가장 중요한 기반이라고 생각하셨다. 이러한 철학은 오늘날까지도 유기화학분과회의 문화 속에 살아 있다.
대한화학회에서도 교수님은 오랫동안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1996년 간사장을 거쳐 2006년 제40대 대한화학회 회장을 역임하면서 학회의 국제화와 학술활동의 활성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대한화학회 창립 60주년 기념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하여 학회의 역사와 미래를 함께 조망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학회를 단순히 행사를 운영하는 조직이 아니라 우리나라 화학 발전의 중심 플랫폼으로 발전시키고자 했던 교수님의 비전은 여러 사업을 통해 구체화되었다.

국제 학술교류에 대한 교수님의 관심은 특별하였다. 교수님은 일찍부터 우리나라 화학이 세계 수준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국제 학계와의 긴밀한 교류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신념 아래 한국-일본 유기화학 심포지엄(Korea–Japan Symposium on Organic Chemistry)과 한국-미국 유기화학 심포지엄(Korea–US Symposium on Organic Chemistry)의 창설과 발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사진 5]. 당시만 하더라도 해외의 저명한 연구자들을 국내로 초청하고 우리 연구자들을 국제 무대와 연결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러나 교수님은 지속적인 학술교류를 통해 우리 연구자들이 세계적인 연구 흐름을 직접 접하고, 국제 공동연구를 확대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였다. 교수님의 이러한 노력은 2008년 우리나라에서 개최된 International Conference on Organic Synthesis (ICOS)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ICOS는 국제순수응용화학연합(IUPAC)이 후원하는 유기합성 분야의 최고 권위 국제학술대회 가운데 하나로, 세계 유기합성화학을 대표하는 연구자들이 모이는 학술행사이다. 이 국제학술대회를 우리나라에 유치하고 성공적으로 개최한 것은 단순한 행사 운영의 성공을 넘어, 우리나라 유기합성화학이 국제사회에서 하나의 중요한 Chemistry) 등 국제 학술단체에서 활발히 활동하였으며, 세계적인 연구자들과 긴밀한 공동연구와 학술교류를 이어갔다. Stanford University의 Paul Wender 교수는 오랜 동료이자 친구로서 이은 교수님을 “탁월한 과학자이자 교육자, 리더, 멘토”라고 회고하면서, 한국 화학계뿐만 아니라 세계 유기합성학계에서도 존경받는 연구자였음을 강조하였다. 특히 그는 이은 교수님이 언제나 새로운 문제에 도전하는 창의성과 국제적 안목을 갖춘 과학자였다고 평가하였다. 연구 축으로 인정받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으며, 교수님은 개최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교수님의 국제적 위상은 학술활동뿐 아니라 세계 유기합성학계와의 폭넓은 교류에서도 확인된다. 미국화학회(American Chemical Society)와 영국왕립화학회(Royal Society of 등 국제 학술단체에서 활발히 활동하였으며, 세계적인 연구자들과 긴밀한 공동연구와 학술교류를 이어갔다. Stanford University의 Paul Wender 교수는 오랜 동료이자 친구로서 이은 교수님을 “탁월한 과학자이자 교육자, 리더, 멘토”라고 회고하면서, 한국 화학계뿐만 아니라 세계 유기합성학계에서도 존경받는 연구자였음을 강조하였다. 특히 그는 이은 교수님이 언제나 새로운 문제에 도전하는 창의성과 국제적 안목을 갖춘 과학자였다고 평가하였다.
이러한 이은 교수님의 학문적인 업적은 다양한 수상과 영예로 이어졌는데, 대표적으로 대한화학회 학술상(1995년)과 한국과학상(1998년)을 수상하셨고, 2010년에는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으로 선출되셨으며, 옥조근정훈장(2011년)을 수훈하셨다. 특히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으로 선출된 것은 단순한 개인적 영예가 아니라, 반세기에 걸쳐 이루어 온 학문적 성취와 우리나라 화학 발전에 대한 공헌이 국가적으로 인정받았음을 의미한다. 학술원 회원이 된 이후에도 교수님은 연구와 학문 공동체를 위한 활동을 멈추지 않았으며, 후학들과의 교류와 학술원의 여러 활동에 꾸준히 참여하였다. 교수님에게 학술원은 학문적 성취의 종착점이 아니라, 우리나라 학문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는 또 하나의 사명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한 사람의 학자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보다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은, 그와 함께 하나의 시대가 막을 내렸다는 점이다. 이은 교수님은 우리나라 유기합성화학이 태동기를 지나 성장기로 접어드는 전 과정을 직접 이끌었던 세대의 대표적인 연구자였다. 해외에서 최신 유기합성학을 배우고 돌아와 국내에 연구 기반을 구축하였으며, 다시 세계와 경쟁하는 연구실을 만들어 후학들에게 넘겨주기까지의 여정은 곧 우리나라 유기합성화학의 발전 과정과 그대로 겹쳐진다. 교수님 세대의 연구자들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연구를 시작하였다. 연구비도, 장비도, 연구인력도 충분하지 않았고 해외 연구자들과 교류하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들은 세계 수준의 연구를 목표로 삼았고, 하나하나 연구 기반을 만들어 갔다. 오늘날 젊은 연구자들이 누리고 있는 연구 환경은 이러한 선배 연구자들의 오랜 노력 위에 세워진 것이다. 우리는 종종 현재의 연구 수준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만, 그 토대를 마련한 사람들을 기억하는 일 또한 학문 공동체의 중요한 책무라고 생각한다.
이은 교수님의 삶은 우리에게 또 하나의 사실을 일깨워 준다. 학문의 발전은 뛰어난 논문 몇 편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축적되는 연구 문화와 학문 공동체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새로운 연구 주제를 개척하고, 후학을 길러내고, 학회를 발전시키고, 국제적인 교류를 넓혀 가는 모든 과정이 결국 하나의 학문을 성장시키는 힘이 된다. 교수님의 삶은 바로 그러한 과정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였다. 오늘날 우리나라 유기합성화학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연구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국제학술지에서 한국 연구자들의 이름을 자주 접하게 되고, 국내 대학과 연구기관의 연구실들이 세계 연구자들과 자연스럽게 협력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여러 세대 연구자들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지만, 그 중심에는 연구와 교육, 그리고 학문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 평생 헌신한 이은 교수님과 같은 선구자들이 있었다. 이제 교수님은 우리 곁을 떠나셨지만, 교수님께서 일구어 놓으신 연구실과 제자들, 그리고 학문 공동체는 여전히 살아 움직이고 있다. 학문은 한 사람의 생애보다 길고, 한 세대보다 오래 지속된다. 이은 교수님의 이름은 앞으로도 우리나라 유기합성화학의 역사 속에서 그 시대를 연 대표적인 학자의 한 사람으로 오래 기억될 것이다. 우리나라 유기합성화학의 발전을 위해 평생을 바치신 교수님의 헌신과 열정을 깊이 기리며, 삼가 명복을 빈다.
포항공과대학교 화학과 명예교수 김기문
* 이 원고에 실린 사진을 제공해 준 강원대학교 이필호 교수, 자료 정리와 원고 검토에 도움 준 포항공과대학교 황일하, 이영호 교수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아울러, 이은 교수님의 생애와 연구 업적을 정리한 서강대학교 이덕형 교수의『 화학세계』 「 한국을 빛낸 화학자」는 이 원고를 작성하는 데 유익한 참고가 되었다.
※ 본 글은 대한민국학술원 『학술원통신』 2026년 8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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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 교수님 1주기에 부쳐: 그의 삶과 학문을 기리며
이은 교수님께서 우리 곁을 떠나신 지 어느덧 한 해가 되어갑니다. 시간은 흘렀지만 선생님의 목소리와 표정, 강의실과 연구실에서 보여주셨던 모습은 여전히 우리의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지난해 8월 선생님을 여읜 뒤, 우리는 선생님께서 우리 학문과 삶에서 얼마나 큰 자리를 차지하고 계셨는지를 더욱 절절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은 교수님께서는 1946년 8월 20일 서울에서 태어나셨습니다. 1965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화학과에 입학하여 1969년 졸업하신 뒤, 미국 예일대학교로 유학하여 Ian Scott 교수의 지도하에 1974년 박사학위를 받으셨습니다. 이후 컬럼비아대학교의 Koji Nakanishi 교수 연구실에서 박사후연구를 수행하시고, 이어 농화학 기업 Zoecon 연구소로 옮겨 곤충성장조절제를 이용한 해충 방제 연구에 참여하셨습니다. 곤충의 유충호르몬 생합성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면서 산업 연구와 기초과학이 만나는 현장을 경험하셨습니다. 생물학적 문제에서 출발해 천연물 분자의 구조와 기능을 통해 해답을 찾는 이러한 미국에서의 연구 경험은 생합성과 생유기화학 그리고 유기합성을 두루 아우르는 선생님의 폭넓은 학문적 기반을 마련해주었습니다.
1977년, 선생님께서는 미국에서 쌓은 연구 경험을 뒤로하고 서울대학교 화학과에 부임하셨습니다. 선생님께서 들려주신 일화에 따르면, 당시 실험실을 꾸리는 데 사용할 수 있었던 장비는 Nakanishi 교수가 사준 자석교반기 두 대가 거의 전부였다고 합니다. 2006년 『화학세계』에 실린 선생님의 회고를 보면 당시의 연구환경이 얼마나 열악했는지를 더욱 생생하게 알 수 있습니다. 회전농축기조차 없어 직접 만들어 사용해야 했고, 천연물연구에 필수적인 핵자기공명분광기(NMR)가 없었으며, 외국에 시약을 주문하면 도착하기까지 길게는 6개월이나 걸렸습니다. 어렵게 들여온 시약이 국제우체국이나 공항에서 폐기될 위기에 처하는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오늘날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조건 속에서 선생님은 연구실을 세우고 학생들을 가르치며 새로운 연구의 길을 찾으셨습니다.
선생님께서 처음 품었던 꿈은 천연물 생합성에 바탕을 둔 생유기화학 분야의 연구였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연구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기기와 시설, 연구비와 전문 인력이 당시 국내에는 거의 갖추어져 있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그 현실 앞에서 좌절하거나 연구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당시의 여건에서 독자적으로 수행하여 국제 학계에 당당히 내놓을 수 있는, 선생님께서 평소 즐겨 말씀하시던 “쓸 만한 일”을 할 수 있는 분야를 찾으셨고, 마침내 연구의 중심을 유기합성화학으로 전환하셨습니다.
훗날 선생님은 이를 두고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분야를 바꾸었다”고 담담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것은 주어진 환경에 수동적으로 적응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가진 경험과 현실의 제약을 냉정하게 바라보고 거기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낸 용기 있는 결단이었습니다. 국내에 학문적 기반이 전무하던 시기에 기초 원료물질에서부터 최종 천연물까지 모든 합성 과정을 우리의 손으로 수행하는 연구를 시작함으로써 대한민국 천연물 전합성연구의 초석을 놓으셨습니다.
연구의 여정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부임한 뒤 약 10년 동안 뚜렷한 연구 성과를 내지 못해 좌절하기도 했다고 회고하셨습니다. 비교적 단순한 구조를 지닌 덴드로라신(dendrolasin)이나 로즈퓨란(rose furan) 같은 천연물은 합성할 수 있었지만, 학계가 주목할 만한 논문으로 발표할 만한 연구 결과를 얻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대한민국 땅에서 순수 국내 인력이 복잡한 천연물의 비대칭 전합성을 완벽히 끝마쳐 1990년 미국화학회 학술지(The Journal of the American Chemical Society)에 발표된 논문은 우리 학술사의 이정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도로 복잡한 분자 골격과 입체화학을 지닌 천연물 합성 연구는 단순히 기존의 방법론을 응용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한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기 어렵습니다. 새로운 반응을 발굴하고, 실패한 접근으로부터 교훈을 얻고, 때로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합성경로를 찾아야 합니다. 선생님께서는 천연물을 합성하듯 자신의 연구 인생 또한 그렇게 개척하셨습니다.
선생님의 연구 업적은 독창적인 유기합성 방법론 개발과, 이를 바탕으로 한 고난도 천연물 전합성이라는 두 가지 큰 축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특히 유기반응에서 빈번히 중요한 이슈로 부각되는 입체선택성(stereoselectivity)의 원천을 규명하고 능동적으로 제어하는 것을 연구의 주요 테마로 삼으셨습니다. 유기반응을 매개하는 탄소음이온, 탄소양이온, 라디칼, 카벤 및 탄소-전이금속 착화합물 등 다양한 반응성 중간체는 물론 고리협동반응의 메커니즘에 대한 깊은 이해를 추구하셨고, 이러한 반응들을 천연물 전합성에 창의적으로 활용하여 세계적 대가의 반열에 오르셨습니다.
방법론 연구에서 선생님은 시대를 앞서가는 선구적인 혜안을 보여주셨습니다. 부임 초기 빈약한 여건에서 스테로이드 화합물의 특정 탄소 위치를 선택적으로 산화시키는 원격활성화(remote functionalization) 연구를 수행하셨는데, 이는 오늘날 유기화학 학계의 핵심 화두인 탄소-수소 결합 활성화(C-H activation)와 개념적 궤를 함께하는 선도적인 연구였습니다. 또한 파보스키(Favorskii) 자리옮김 반응의 새로운 입체선택성을 밝혀내고, 음이온 옥시코우프(anionic oxy-Cope) 자리옮김 반응에서 옥시 음이온의 입체적 선호도에 따른 카이랄성 전이 메커니즘을 규명하여 식물 테르페노이드 다이하이드로마이유론(dihydromayurone) 천연물의 거울상 하나만을 선택적으로 합성하여 미국화학회지에 발표하셨습니다.
무엇보다 선생님의 존재를 국제 학계에 영원히 각인시킨 분야는 탄소 라디칼을 이용한 합성 방법론이었습니다. 이 연구는 1985년 국비 파견교수로 옥스퍼드대학 Jack Baldwin 교수의 연구실에서 한 해를 보내면서 탄소 라디칼에 잠재된 풍부한 유기합성적 활용성에 영감을 받아 시작되었습니다. 귀국 후 계속된 연구를 통하여 베타알콕시아크릴레이트(β-alkoxyacrylate)를 라디칼 수용체로 사용하여 산소 헤테로고리(oxacyclic) 구조를 높은 효율성과 완벽에 가까운 입체선택성으로 합성해내는 독창적인 라디칼 고리화 반응을 개발하셨습니다. 이 방법론은 전 세계 학계에서 Eun Lee Method라는 고유명사로 불리며 고급 유기합성화학 교과서에 수록되었고, 모든 유기화학자들이 고리형 에테르 화합물의 합성에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프로토콜로 자리 잡았습니다. 또한 Prins 반응을 이용한 거대고리화(Prins macrocyclization) 방법론을 개발하여 해양 마크롤라이드 천연물 합성 연구 분야에 혁신적 접근법을 제시하였습니다.
이러한 독창적인 합성 방법론들은 복잡한 분자 골격과 정교한 입체화학을 가진 천연물 전합성 연구에서 예술적이라 불릴 만한 학문의 경지로 승화되었습니다. 분자 구조가 매우 까다롭고 특이해서 합성 학계의 난제로 여겨진 해양 천연물 닥토멜라인(dactomelyne)의 전합성을 세계 최초로 완결하셨으며, 항암 생리활성을 지닌 라소놀라이드(lasonolide A)와 SCH 351448 그리고 항림프구성 백혈병 효과를 지닌 롤리멤브린(rollimembrin) 역시 세계 최초로 전합성을 완결하는 쾌거를 이루셨습니다. 특히 전합성을 통해 학계에 잘못 보고되어 있던 천연물 구조의 정확한 골격과 입체화학을 과학적으로 규명하여 오류를 바로잡고 천연물화학의 발전에도 족적을 남기셨습니다. 이 외에도 가다인(gadain), 에스타피아틴(estafiatin), 쿠모살렌(kumausallene), 파마마이신-607(pamamycin-607), 암브루티신(ambruticin), 암피디놀라이드(amphidinolide), 블레파로칼릭신(blepharocalyxin D), 네오펠톨라이드(neopeltolide), 플라텐시마이신(platensimycin) 등 수많은 합성 난제들이 선생님의 손끝에서 해결되었습니다. 원자들이 복잡하게 연결된 분자 구조 모형을 항상 곁에 두고 골몰하면서 끈질기게 합성법을 개발해내신 선생님의 연구 성과는 우리나라 유기합성의 수준을 현격히 업그레이드하였습니다.
선생님께서 개척하신 연구는 독창성과 탁월함을 널리 인정받으며 굵직한 학문적 영예로 이어졌습니다. 유기합성화학 분야에서 이룩하신 독보적인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1995년 대한화학회 학술상을 수상하셨고, 1998년에는 대한민국 최고 권위의 한국과학상을 받으셨습니다. 나아가 선생님의 학문적 깊이는 국가 석학들의 전당인 대한민국학술원으로 이어져 2010년 자연과학부 회원으로 선임되셨으며, 교육과 학문 발전에 일생을 바치신 공로로 2011년 옥조근정훈장을 수훈하셨습니다. 또한, 서울대학교 퇴임 후에도 한양대학교 석좌교수로서 학자적 열정을 멈추지 않고 후학 양성에 매진하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탁월한 연구자이셨을 뿐 아니라 대한민국 화학계 전체를 이끌어 오신 지도자이셨습니다. 1982년 대한화학회 유기화학분과회 창설을 주도하여 국내 유기화학 연구자들이 지속적으로 교류할 수 있는 학술 공동체의 기틀을 마련하셨으며, 간사장과 유기화학분과회장을 거쳐 2006년에는 대한화학회 회장으로 봉사하시면서 국내 화학 연구의 저변을 확대하고 관련 제도를 정비하는 데 헌신하셨습니다. 특히 1996년에는 『화합물 명명법』의 발간을 주도하셨습니다. 일제강점기의 잔재처럼 남아 있던 낡은 일본식 화학 용어를 우리말 어법과 학문적 정확성에 맞게 전면적으로 개정함으로써, 대한민국 화학 교육과 연구 현장의 용어를 표준화하는 데 크게 기여하셨습니다. 또한 유기화학분과회 회장으로 재임하시던 2000년에는 교수진 중심으로 운영되던 기존 학술대회의 틀을 깨고, 학생을 비롯한 모든 연구자가 함께 참여하는 ‘하계워크숍’을 처음으로 개최하셨습니다. 연구 수행 주체들 사이의 벽을 허문 이 혁신적인 시도는 오늘날 연구책임자와 학생연구원을 구분하지 않고 700여 명의 연구자가 모두 함께 참여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학술행사로 발전하여 전통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시선은 언제나 세계를 향해 있었습니다. 한-일 및 한-미 유기화학 공동심포지엄을 성공적으로 조직하셨고, 2008년에는 국제화학연맹(IUPAC)이 주관하는 유기합성 분야의 세계 최고이자 최대 국제학술대회(ICOS-17)의 조직위원장으로 활약하며 한국 화학의 저력을 국제 무대에 당당히 각인시키셨습니다. 또한 Organic Letters, Tetrahedron 등 세계적인 학술지들의 편집자문위원으로 위촉되어 국제 화학계의 흐름을 주도하셨습니다. 제자들과 동료 연구자들은 2013년 선생님의 연구 정신을 계승하고자 이은 학술강연상(Eun Lee Lectureship Award)을 제정하였으며 매년 8월에 개최되는 학술강연회는 노벨화학상 수상자를 포함한 세계적 유기화학자들이 최신 연구결과를 발표하는 포럼으로 국제 학계에 탄탄히 자리 잡았습니다.
이은 교수님의 삶과 업적은 학술 분야에 그치지 않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자신의 최고 업적이 과학적 성과가 아니라 길러낸 제자들이라고 평소 입버릇처럼 말씀하셨습니다. 석사 140명과 박사 22명을 포함하여 160여 명의 연구자들이 선생님의 연구실에서 성장하였습니다. 제자들은 국내외 대학과 연구소, 산업계로 진출하여 다시 새로운 연구자를 양성하고 새로운 학문과 산업을 일으켰습니다. 선생님의 연구실은 단순히 실험을 수행하는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한국 유기화학의 다음 세대를 길러내는 산실이었으며, 학문에 임하는 태도와 과학자의 책임을 배우는 공동체였습니다.
선생님은 부임 초기에 본인이 본격적인 유기합성 연구를 해본 적이 없고 여건마저 열악한 상태에서 연구성과를 얻지 못했기 때문에 열의에 가득 찼던 초창기 학생들에게 두고두고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그 시절 제자들은 비록 상위 학술지에 논문을 내지 못했지만 문제를 피하지 않고 부딪히는 용기, 성과를 얻기 위한 정직한 노력, 맡은 일에 대한 책임감을 선생님에게서 배웠다고 말합니다. 모든 것이 부족한 상황이었지만 연구실 한구석 칠판에는 항상 최신 논문의 연구 내용을 적어놓고 모두들 공부하면서 연구의 꿈을 키웠다고 합니다. 국제 학계에서 “이은 교수의 제자들은 남다른 근면함과 끈질김을 지니고 있다”는 한결같은 세평은 우연이 아닙니다. 과학자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가가 아니라, 어떤 질문을 품고 얼마나 성실하고 치열하게 답을 찾아갔는지라는 사실을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선생님의 강의는 너무나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칠판에 분자의 구조를 정성스럽게 그리면서 유기화합물의 거동과 반응의 원리를 열정적으로 가르치셨습니다. 공부에 게으름을 피우는 학생들에게 불같이 야단을 치셨지만 차분한 목소리로 정확한 텍스트와 문장을 써서 강의하셨습니다. 이러한 선생님의 강의는 오랫동안 서울대 화학부의 명강의로 알려진 “분자 설계 및 합성” 과목을 마지막으로 담당했던 2015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이은 교수님은 그야말로 가르치는 선생이었고 연구하는 학자였습니다. 스스로를 박정희 대통령의 “과학입국”이라는 모토에 속아 화학을 전공하게 됐다고 농담처럼 말씀하셨지만, 기초과학의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환경에서도 교육과 연구에 힘써야 한다는 것을 소명으로 인식한, 자신의 직분을 결코 가벼이 여기지 않은 지식인이었습니다.
제가 학생이던 1980년대 대학은 어수선했습니다. 1987년 6월 군부독재가 무너질 때까지 학생이 현실을 외면한 채 열심히 공부한다는 것이 불편한 분위기였습니다. 선생님은 학생과 만남의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공부하는 즐거움과 당위성을 설파하셨습니다. 당시의 학생들은 그를 보수적이고, 꼰대 같은 면모도 있지만 대화가 통하고, 잘못을 깔끔하게 인정하는 합리적인 선생님이라고 평가하며 어떤 교수보다도 교수의 본분에 충실했다고 기억합니다. 학생답지 못한 모습을 보면 참지 못하고 호통치는 호랑이 교수님으로 소문이 났지만, 나무란 학생을 나중에 따로 불러서 달래곤 하셨던 누구보다도 학생들을 아끼고 따뜻한 마음을 지닌 스승이셨습니다. 형편이 어려운 학생의 등록금을 남몰래 내주셨던 일화조차 돌이켜보면 그리 놀랍지 않습니다. 늘 그러하셨듯, 그저 제자를 진심으로 아끼셨던 선생님다운 배려였기 때문입니다.
강단을 떠나시던 무렵부터 병을 안고도 일상을 꿋꿋이 이어가시던 선생님은 회복을 바라던 우리의 바람을 뒤로하고 지난해 8월 10일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1주기를 맞아 오는 8월 21일 오후, 서울대학교에서는 선생님을 기억하는 동료와 제자들, 그리고 대한화학회의 많은 후학이 모여 추모 심포지엄을 개최합니다. 이 자리는 선생님의 빛나는 학문적 업적을 되짚는 데 그치지 않고, 선생님과 함께했던 시간과 그분이 우리에게 남긴 학문적·인간적 유산을 되새기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대학 시절 만나 평생을 함께한 반려자 김명선 여사께서는 선생님께서 돌아가신 뒤 빈소를 찾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열심히 살다가 가셨어요.” 이보다 선생님의 생애를 더 온전히 담아내는 표현을 찾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사모님의 말씀처럼 선생님께서는 참으로 열심히 사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많은 일을 하고 큰 업적을 남겼다는 뜻만은 아닙니다. 선생님께서는 자신에게 주어진 재능과 시간, 열정을 학문과 교육 그리고 공동체에 아낌없이 바치셨습니다. 배우고 가르치는 일에 물러섬이 없으셨고, 자신이 얻은 지식과 경험을 다음 세대에 전하셨으며, 한국의 과학이 더 높은 곳에 이를 수 있도록 평생 길을 닦으셨습니다. 열정적으로 사셨지만 그 열정은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고, 큰 성취를 이루셨지만 그 성취를 모두의 자산으로 돌려주셨습니다.
우리는 이은 교수님을 공부하고 가르치고 연구하고 봉사하는 삶으로 충만한 분으로 오래도록 기억할 것입니다.
2026년 7월 20일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화학부 이철범
※ 본 글은 대한민국학술원 『학술원통신』 2026년 8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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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 교수님 추모 심포지엄을 마치며
돌아가신 지 1년이 된 이은 교수님의 삶과 학문을 기리고 추모하는 심포지엄이 2026년 8월 21일 서울대 목암홀에서 개최되었습니다. 동료와 제자들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 화학자가 참석하여 이은 교수님과 각별한 인연이 있는 연사들의 강연을 들으며 교수님의 발자취를 돌아보는 자리였습니다. 심포지엄은 이은 교수님의 제자이자 동료셨던 김병문 서울대 명예교수님의 회고와 추모의 말씀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첫 번째 세션은 서울대 이철범 교수님께서 사회를 보시며 각 연사와 이은 교수님의 인연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첫 번째 연사인 이상엽 서울대 명예교수님께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이은 교수님과의 공동 연구(J. Am. Chem. Soc. 1998, 120, 7469)를 소개하시고, 동료로서 30여 년간 점심을 함께하셨던 일화를 들려주셨습니다. 이어 열역학 제2법칙을 설명해 주시며, 유기화학자들에게 오랜만에 수식이 가득한 슬라이드를 보는 즐거움을 주셨습니다. 두 번째 연사는 이은 교수님과 오랜 벗이셨던 정성기 교수님의 제자, POSTECH 장영태 교수님이셨습니다. 그간의 살아 있는 세포 이미징용 유기형광분자 연구를 돌아보시고, 초광안정성 유기형광분자 Phoenix Fluor 555(PF555)를 개발하여 시간적 제약 때문에 관찰이 어려웠던 생명현상을 관찰한 결과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두 번째 세션은 서울대 이홍근 교수님의 사회로 진행되었습니다. 첫 번째 연사인 IBS 장석복 원장님께서는 이은 교수님께서 2000년 유기화학 분과 회장이셨을 때 개최한 학생 중심 제1회 하계 워크숍의 단체 사진으로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오늘날 C–H 활성화 연구의 관점에서 재조명할 수 있는 이은 교수님의 초기 연구 결과(Tetrahedron Lett. 1988, 29, 339)를 소개하시고, 최근 원장님 그룹에서 개발하신 C–H 활성화를 통한 연속 반응과 락탐 형성 반응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두 번째 연사인 한양대 조천규 교수님께서는 2011년부터 3년간 이은 교수님을 한양대 화학과 석좌교수로 모셨던 당시의 일화를 들려주시고, 은사인 Amos B. Smith III 교수님과 이은 교수님의 특별한 인연을 사진과 함께 소개해 주셨습니다. 이어 비대칭 분자 내 Diels-Alder 반응을 이용한 천연물 Cyanthiwigin B와 Cephanolide A의 전합성 결과에 대해 강연하셨습니다. 세 번째 연사는 이은 교수님의 제자셨던 故 이희윤 교수님 연구실의 마지막 세대였던 서울시립대 이상현 교수님으로, 이은 교수님의 전합성과 반응 개발 업적에 대해 요약하고 그 의미에 대해 강연해 주셨습니다. 네 번째 연사인 경희대 강은주 교수님께서는 이은 교수님 지도하에 2006년 박사 학위를 취득하셨습니다. 박사 과정 때 합성하셨던 (+)-SCH-351448에 대해 이은 교수님의 발표 자료와 학생 시절 직접 작성한 실험노트를 활용해 뒷이야기까지 들려주시고, 현재 진행 중인 산화적 라디칼 생성을 통한 새로운 반응 개발 연구를 소개해 주셨습니다.
서울대 이은성 교수님께서 이끌어 주신 세 번째 세션은 신약 개발의 최전선에 있는 이은 교수님의 제자 세션이었습니다. 첫 번째 연사인 서울대 김찬혁 교수님께서는 큐로셀과 일리미스테라퓨틱스를 공동 창업하신 분으로, 이은 교수님 지도 아래 박사 학위를 받으셨던 시절과 교수님 덕분에 Scripps 연구소 Peter G. Schultz 연구실로 포닥을 가면서 연구의 전환이 일어난 계기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를 통해 현재 진행하고 계시는 합성 면역학과 CAR-T 세포 치료제(Chimeric Antigen Receptor T-cell Therapy) 개발에 관해서도 소개해 주셨습니다. 두 번째 연사인 인투셀 박태교 대표님께서는 항체-약물 접합체(ADC, Antibody-Drug Conjugate)의 기초부터 설명해 주셨습니다. 이어 특정 조건에서 절단이 촉발된 후 자발적으로 분해되어 약물을 방출하는 새로운 자가-희생 기(Self-Immolative Group, SIG)를 이용하는 인투셀만의 ADC 전략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오스코텍의 윤태영 대표님께서는 최근 美 아지오스(Agios Pharmaceuticals)에 1조 원 규모의 기술 이전에 성공한 경구형 자가면역질환 치료 신약 Cevidoplenib의 개발 과정을 전체적으로 설명해 주셨습니다.
심포지엄은 한국화학연구원 신석민 원장님의 말씀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신 원장님께서는 이은 교수님과 사제지간으로 만나 동료가 되고, 공동 연구(Org. Lett. 2007, 9, 3225)를 함께 수행하며 가까운 벗으로 인연을 이어 오신 이야기와 함께, 교수님께서 남기신 학문적 유산과 리더십을 되새겨 주셨습니다. 이번 심포지엄은 이은 교수님의 업적과 따뜻한 인연을 함께 돌아보고, 그 뜻이 제자와 동료, 학문후속세대의 연구를 통해 계속 이어지고 있음을 확인하는 뜻깊은 자리였습니다. 이렇게 적고 보니 다소 담담한 후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대한화학회 금교창 회장님께서 회고하셨듯이, 이은 교수님께서는 논문을 쓸 때 화려한 수식과 과도한 부사의 사용을 경계하며 “나는 그런 거 싫어한다”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셨고, 스스로 간결하고 명료한 글쓰기의 전형을 보여주셨습니다. 이은 교수님의 평소 철학에 따라, 깊은 그리움은 마음에만 간직한 채 이 후기를 마칩니다.
경희대학교 화학과 주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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