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산을 만드는 원소, 질소(2026년 1월호)
- 洪均 梁

- 2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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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수정일: 3시간 전

들어가며
우리는 매일 수많은 물질과 접촉하고 그것들을 다루며 살아간다. 그래서 화학은 우리 삶의 모든 순간을 설명할 수 있는 학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가 마주치는 여러 가지 물질들 가운데는 근대 화학이 성립하기 한참 전부터 친숙하게 사용해 온 것들도 많이 있다. 근대 화학의 명명법에 따라 모든 물질의 이름을 정리할 수 있다면 이들을 인식하고 사용하는 데 혼동이 없겠지만, 과학자가 아닌 사람들도 먼 옛날부터 익숙하게 써 온 이름들을 과학자들 마음대로 하루아침에 바꾸도록 하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대한화학회에서 소듐과 포타슘 등 미국식으로 원소기호 이름을 바꿀 것을 권고한 지 꽤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나트륨 줄이기 운동본부” 는 여전히 이름을 바꿀 기미가 안 보이고, “가리비료”는 가까스로 “칼륨비료”로 바꾸어 부르는 데까지는 이르렀으나, “포타슘 비료”라는 이름이 언제쯤 농민들의 입에 익을 지는 기약이 없다.
하지만 과학사의 대상으로서 바라보면, 이와 같은 용어의 혼선은 골칫거리라기보다는 그 자체로 흥미로운 연구대상이자 교육 자료가 될 수 있다. 마치 진화학자들이 현생 생물의 몸 속에 남아 있지만 지금은 쓰임새가 없는 기관을 통해 먼 옛날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진화의 흔적을 찾아낼 수 있는 것처럼, 과학사학자들은 오늘날의 눈으로는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과학 용어들을 통해 하나의 사물을 둘러싼 개념과 이론들이 서로 다른 패러다임을 겪으면서 어떻게 변천해 왔는지 되짚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 착안하여, 앞으로 몇 회에 걸쳐 원소와 화합물의 이름에 새겨진 역사의 흔적을 통해, 인류의 화학 지식이 어떻게 성장해 왔는지 되짚어 보고자 한다. 가장 먼저 살펴볼 물질은 우리를 둘러싼 공기 중에 가장 흔한 원소, 질소와 그것으로 이루어진 화합물이다.
초석 또는 “돌 소금”
일제강점기나 광복 직후에 나온 화학 또는 화합물에 관 한 글을 읽다 보면 “초산” 또는 “초산염”이라는 말을 자 주 접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어 발음으로 같은 “초산”으로 읽는 화합물은 사실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일본어로 “쇼산(硝酸)”이라고 읽으며, 우리는 질산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일본어로 “사쿠산(醋酸 또는 酢酸)” 이라고 읽으며, 우리가 일고 있는 아세트산에 해당한다. 아세트산은 식초와 연관성이 뚜렷하고 요즘도 관행적으로 초산(또는 빙초산)이라고 부르는 것을 들을 수 있으므로 따로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질소가 들어간 산은 어쩌다 “초산”이 되었는가? 그리고 초산을 만드는 원소는 어째서 “초소”가 아니고 “질소”가 되었는가?

인류는 매우 오래전부터 자연상태에서 결정으로 발견되는 질산염을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해 왔다. 당연하게 도 “질산염” 또는 “질산칼륨(질산포타슘)”이라는 이름은 라부아지에가 근대적 원소 체계를 제시하고 화합물의 기 본 원리를 확립한 다음에야 붙일 수 있는 것이었다. 그와 같은 개념이 없던 시절에는 질산염은 넓은 의미의 “소금” 또는 “염”의 한 형태로 취급되었다. 염을 본질적으로 구 별하지 않았다는 것은 오늘날의 관점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원소의 개념도 명확치 않고 정제나 분석 의 기술도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물에 잘 녹고, 물을 증말시키면 희거나 투명한 결정으로 남으며, 짜거나 맵거나 자극적인 맛을 내는 물질”을 뭉뚱그려 인식하는 것이 억지스러운 주장이라고 보기도 어려웠다. 게다가 이렇게 얻은 결정들은 식품을 저장하거나 가죽을 무두질하거나 천을 염색할 때 사용하면 화학반응을 잘 매개해주는 효과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었다. 이런 맥락에서, 특히 서양에서는 오늘날의 이름으로 염화소듐, 질산포타슘, 탄산염, 황산염, 명반(alum) 등을 모두 “소금”의 각기 다른 형태로 여기고 다양하게 활용하였다.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소금”들은 주로 땅에서 얻었다. 식염(염화소듐)도 유럽에서는 바닷물을 말려 얻는 것보다 주로 암염을 캐서 썼고, 다른 염들도 지표면에 결정 상태 로 응고된 것을 채취하여 물에 녹인 후 증발시켜 정제하여 얻었다. 그래서 돌에서 얻은 염분이라는 뜻으로 “솔트 페터(saltpeter)”라고 부르기도 했다. 한편 이런 돌 또는 거기서 얻은 염 결정을 “니터(niter)”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이 이름은 고대 이집트에서 시신을 방부처리할 때 사용하던 탄산염 계열의 물질을 그리스에서 “니트론”이라는 이름으로 받아들이면서 자리잡은 것이다. 한편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에서는 이와 같이 “소금기” 있는 물질을 가리키는 데 염(鹽) 뿐 아니라 초(硝), 로(鹵), 감(鹼) 등 여러 가지 한자를 사용했다. 결정이 크게 형성된 것을 가리 킬 때는 돌 석(石) 자를 뒤에 붙이기도 했다. “초석”이라 는 이름은 이런 맥락에서 옛 한문 문헌에 등장하곤 한다.
나라가 관리하는 보물, 초석

이런 혼란스러운 이름들은 뜻밖의 계기로 차츰 정리되기 시작했다. 수많은 “소금”들 가운데 하나가 놀라운 가치를 지니고 있음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여러 염 중에서 “초”는 불을 붙이면 타오르는 성질을 가지고 있어 다른 것들과 구별되어 인식되기에 이르렀는데, 송(宋) 왕조 시대에 초석을 흑연, 황 등과 혼합하면 맹렬하게 타오르는 무언가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알려진 것이다.
화약 무기는 송대 후반부터 아시아 전역으로 퍼져 나가고, 13세기 후반에는 서양에도 알려지면서 전쟁의 양상을 비가역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화약이 없이는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해지자 화약의 원료를 안정적으로 조달하는 것이 나라마다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이에 따라 동서양을 막론하고 초석 또는 솔트페터에 대한 지식이 쌓이고 다듬어졌다. 초석을 다른 염들과 구별 하는 방법, 효과적으로 채취하는 방법, 순도 높게 정제하는 방법, 안전하게 보관하는 방법 등이 체계적으로 정리 되고 책으로 남겨졌다. 질산칼륨이 자연적으로 생성되기 쉬운 화장실 주변의 흙은 함부로 손대지 못하도록 국가가 지식이 체계화되면서 차츰 초석 또는 솔트페터(또는 니터)는 여러 가지 염을 두루 가리키는 이름에서 벗어나, 오늘날의 질산포타슘에 거의 정확하게 대응하는 좁은 뜻으로 자리잡았다. 17세기에는 글라우버(Johann Rudolf Glauber)가 초석을 비트리올유(oil of vitriol, 오늘날의 황산)와 반응시키면 강한 물(aqua fortis) 또는 니터의 정수(spiritus nitre)라고 불리는 물질(오늘날의 질산)를 효과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아내기도 했다.
“질식시키는 기체”와 “초석을 만드는 물질”
이렇게 초석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과정을 돌아보면, 니터 또는 솔트페터로부터 얻은 산을 “nitric acid”(영 어) 또는 “Salpetersäure”(독일어)라고 부르는 것도 자연스럽게 정착되었으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이름들은 근대과학에서 이야기하는 “질산”과 비슷해 보이지만, 똑같은 것으로 여기지는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아직 “산”이 무엇인지 확실한 정의가 자리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근대적인 산의 개념은 라부아지에가 18세기 말 새로운 원소 분류를 제시 하면서 산소(oxygen)를 “산(oxys)을 만드는(gene) 원소” 라고 주장하면서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그 전까지는 “acid”, “Säure”, “산” 등의 단어는 “신(날카로운) 성질을 지닌 액체” 정도로 느슨하게 이해되었다. 즉 산과 염기에 대한 정의, 그에 앞서 원소에 대한 정의가 확립되기 전에는 산의 이름도 느슨한 상태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초석으로부터 얻는 산”에 정확한 이름을 지어주기 위해서는 그 특징이 되는 원소의 정체를 밝힐 필요가 있었다. 다만 아직 원소로서의 질소(N)와 기체로서의 질 소 분자(N2)의 구별이 확립되지 않은 시기였으므로 또 다 른 층위의 혼란이 더해졌다.
18세기 말, 러더포드(Daniel Rutherford, 1772)를 비롯하여 여러 과학자들이 새로운 기체를 발견했다고 보고 했다. 밀폐된 공간에서 연소 반응이 충분히 일어난 뒤 남은 기체를 모으면, 이 기체 안에서는 불도 금세 꺼지고 실험 동물들도 오래 지나지 않아 숨을 쉬지 못하여 죽는다는 것이 알려졌다. 오늘날의 용어로 설명하면 질소 기체가 반응성이 낮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지만, 당시 실험했던 이들이 이 기체가 “질식시키는” 성질이 있다고 생각한 것도 실험 결과만 놓고 보면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이 때문에 라부아지에(Antoine-Laurent de Lavoisier) 는 화학원론(Traité élémentaire de chimie , 1789)에서 새로운 원소 분류와 화합물의 명명법을 제시할 때, 이 물질에 “아조뜨(azote)”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리스어에 바탕을 두어 생명(zote)이 없는(a-) 기체라는 이름을 만 든 것이다. 이 취지는 독일 화학계에도 받아들여져 “질식 시키는 물질”이라는 뜻의 “슈틱슈토프(Stickstoff)”라는 이름으로 번안되었다.
하지만 모든 과학자들이 이 이름에 동의한 것은 아니었다. 동시대의 프랑스 화학자 샤프탈(Jean-Antoine-Claude Chaptal)은 이 기체가 초석과 그로부터 얻는 산과 연관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내고, “니터를 만드는 물질”이라는 뜻으로 “nitrogène”이라는 이름으로 부르자고 제안했다. 두 가지 이름은 한동안 공존했으나, 영국과 미국에서 “ni-trogen”이 우세하게 쓰이면서 차츰 아조뜨 계열의 이름이 밀려나게 되었다. 다만 오늘날에도 “diazotization” 이나 “hydrazine” 같은 말에서 “azo-” 계열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초산, 질소, 담기: 번역이라는 또 하나의 차원
그렇다면 “초석을 만드는 물질”인 “니트로젠”이 “초소”가 아니고 “질소”로 번역된 곡절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우타가와 유안(宇田川榕菴, 1798-1846)은 『세이미카 이소(舍密開宗)』(1837-1847)등의 책으로 근대 화학을 일본에 소개한 것으로 유명한 난학자(蘭學者)다. 화학을 소개하면서 “원소(元素)”라는 말을 고안하고 각종 원소와 화합물의 이름을 일본어로 번역한 것도 그였다. 우타 가와는 적절한 일본어 번역을 궁리하기 위해 영국, 독일, 네덜란드 등 여러 나라의 화학 도서를 참고했는데, 당시 일본과 가장 교류가 활발했던 네덜란드의 영향을 많이 받 았다. 네덜란드어로는 독일어와 비슷하게 질소를 “슈틱 스토프(Stikstof)”라고 불렀는데, 우타가와는 그 뜻을 살리고자 “가로막는다”는 뜻의 “질(窒)” 자를 써서 “질소(窒素)”라는 이름을 만들어 낸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중국에서도 서양식 원소와 화합물의 개념이 소개되기 시작했다. 중국에서 활동하던 영국인 의사이자 선교사 홉슨(Benjamin Hobson, 1816–1873)은 선교활동의 일환으로 과학 지식을 중국 대중에게 소개하고자 했다. 그는 1849년에 중국어로 펴낸 『천문약론(天文略論)』에서 지구의 대기를 설명하면서 그 주성분이 “양기(養氣)”와 “담기(淡氣)”라고 하였다. 양기란 생명을 기르는(養) 기체, 즉 오늘날의 산소이고, 담기란 양기를 묽게(淡) 만들어 생명을 기르는 작용을 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기체, 즉 오늘날의 질소를 가리킨다.
이 이름들은 19세기말 중국어 원소 이름이 일관된 규칙에 따라 정리되었을 때에도 살아남아 오늘날까지 쓰이고 있다. 다만 원소 이름을 위해 만든 새로운 한자들이 쓰이고 있다. 현대 중국에서는 모든 원소 이름은 한 글자의 한자로 표시하고, 금속성 원소는 쇠 금(金) 변을, 비금속 고체 원소는 돌 석(石) 변을 붙이며, 상온에서 기체와 액체인 원소는 기(气) 부수와 물 수( 氵) 변 등을 붙여 표시해준다. 이에 따라 담기(淡氣)는 딴(氮, dàn)으로 바꾸어 표 기하게 되었으나, 홉슨이 처음 제안했던 뜻은 그대로 살 아남아 있다.
다만 일본에서도 중국에서도, 원소의 이름은 질소와 담 (기)이라고 쓰지만 그 원소로부터 얻는 산의 이름은 여전히 초산(중국식 발음은 “샤오쑤안”, 아세트산은 “추쑤안”) 을 사용한다. 초석이라는 물질을 친숙하게 오래 써왔기 때문일 것이다. 이에 비해 동아시아 3국 가운데 한국은 유일하게 원소 이름을 살려 “질산”이라고 쓰고 있다. 일본어나 중국어와는 달리 한국어 발음으로는 질산과 아세 트산이 모두 “초산”이 되어 버리기 때문에, 혼동을 막기 위해서 일상에서 더 많이 사용하는 아세트산에게 초산이 라는 이름을 남겨 준 것으로 보인다.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자주 혼동을 유발하는 또 다른 이름으로, 도기나 유리 재료를 가리키는 “초자(硝子)”가 있다. 사실 초자는 초석이나 질소와는 아무 상관이 없고, 일본에서는 “가라스(ガラス)”라고 읽는다. 일본에서 근대적 유리 생산을 시작했을 때 네덜란드어 “glas”를 음 차했는데, 그렇게 읽히는 한자를 찾아 조합한 것이다. 요 업 제품의 희고 반짝이는 질감이 초석의 결정을 연상시켜 “초” 자를 쓰게 되었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으나 확실치는 않다. (다음 연재에 계속)
1. Principe, Lawrence M. The Secrets of Alchemy.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12.
2. Newman, William R. Atoms and Alchemy: Chymistry and the Experimen-tal Origins of the Scientific Revolution.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06.
3. Chang, Hao. “What's in a name: a comparison of Chinese and Japanese approaches to the translation of chemical elements.” ChemTexts 4:12. 2018.
4. 菅原国香, 板倉聖宜. “幕末・明治初期における日本語の元素名” (Ⅰ), (Ⅱ).『科学史研究Ⅱ』 28. 193-202. 1989; 29. 13-20. 1990.

김태호 Tae-Ho Kim
• 서울대학교 화학과 학사(1994. 3 – 1999. 2)
• 서울대학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석사 (1999. 3 – 2001. 2, 지도교수: 김영식)
• 서울대학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박사 (2001. 3 – 2009. 8, 지도교수: 홍성욱)
• 싱가포르국립대학 박사후 연구원(2009. 9 – 2010. 8, 지도교수: Gregory Clancey)
• 콜럼비아대학교 박사후 연구원(2010. 9 – 2011. 8, 지도교수: Charles Armstrong)
•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역사문화원 연구교수 (2011. 9 – 2014. 8)
• 한양대학교 비교역사문화연구소 HK교수 (2014. 9 – 2016. 8)
• 전북대학교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 조교수 (2016. 9 – 2024. 8)
• 전북대학교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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