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설에부쳐:원자 하나 고쳐 쓰는 화학,분자 골격 편집(2026년 10월호)
이용호 | 고려대학교 화학과, 부교수, yholee@korea.ac.kr
새로운 분자를 만드는 일은 오랫동안 ‘쌓아 올리는’ 작업이었습니다. 유기합성화학자는 값싸고 구하기 쉬운 출발물질에서 시작하여 결합을 하나씩 만들어 가며 목표 분자에 이르는 길을 설계해 왔고, 역합성 분석(retrosynthetic analysis)이라는 강력한 사고의 틀은 20세기 유기합성을 천연물 전합성의 시대로 이끌었습니다. 이 전략은 지금도 유효하며, 오늘날의 정밀화학, 제약, 소재 산업은 모두 그 성과 위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연구 현장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질문은 조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신약 후보 물질의 대사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고리를 이루는 탄소 하나를 질소로 바꾸어 보고 싶을 때, 5원 고리를 6원 고리로 늘려 활성을 비교해 보고 싶을 때, 우리는 그 분자를 처음부터 다시 합성해야 했습니다. 원자 하나를 바꾸는 대가로 합성 경로 전체를 새로 설계해야 하는 이 비효율성은 분자를 다루는 화학자에게 오랫동안 익숙하면서도 불편한 현실이었습니다. 후기 단계 기능화(late-stage functionalization)의 발전이 이 문제의 상당 부분을 덜어주었지만, 표적이 되는 화학 결합의 위치는 대체로 분자의 표면, 즉 C–H 결합과 주변부 작용기였고, 분자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골격 그 자체는 여전히 손대기 어려운 영역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한편, ‘쌓아 올리는’ 방식은 값싸고 균일한 작은 빌딩 블록이 언제나 공급된다는 전제 위에서만 성립합니다. 그리고 그 전제를 지난 한 세기 동안 떠받쳐 온 것은 석유화학 산업이었습니다. 석유 자원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언젠가 우리는 새로 뽑아낸 원료가 아니라 이미 우리가 그동안 만들어 온 화합물과 고분자, 그리고 자연이 이미 만들어 둔 분자들을 출발점으로 삼아야 하는 시기를 맞게 될 것입니다. 그때 필요한 화학은 쌓아 올리는 화학이라기보다, 이미 있는 것을 분해하고 고쳐 쓰는 화학일 것입니다.
분자 골격 편집(molecular skeletal editing)은 바로 이 두 흐름이 만나는 지점에서 출발합니다. 이미 완성된 분자의 골격 결합에 직접 작용하여 원자 하나를 지우거나, 다른 원자를 끼워 넣거나, 혹은 다른 원자로 바꾸어 놓겠다는 개념입니다. 문서를 고칠 때 문장을 처음부터 다시 쓰지 않고 글자 하나를 수정하듯, 분자도 그렇게 다룰 수 있다면 지금까지 어렵거나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분자 변환이 마치 다 된 밥상에 숟가락을 얹는 일처럼 손쉽게 구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질문인 셈입니다. 질소 원자를 선택적으로 제거하여 분자 내의 C–N–C 골격을 C–C 골격으로 바꾸는 반응, 고리 내부에 탄소나 질소 원자를 새로 삽입하여 고리를 확장하는 반응, 방향족 고리의 탄소를 질소로 맞바꾸는 이른바 C-to-N 원자 치환 반응 등이 최근 몇 년 사이 잇따라 보고되면서, 한때 개념적 제안에 머물던 이 발상은 이제 실제로 쓸 수 있는 합성 도구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카벤과 나이트렌 같은 고활성 중간체의 화학, 광화학과 전기화학, 전이금속 촉매를 이용한 결합 활성화 등 서로 다른 갈래에서 오랜 시간 축적되어 온 방법론들이 이 하나의 목표 아래 모여들고 있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이 변화가 갖는 의미는 합성 경로의 단축이라는 편의를 넘어섭니다. 골격 편집은 기존 합성법으로 접근하기 어려웠던 골격을 손쉽게 확보할 수 있게 하고, 하나의 화합물로부터 여러 골격 유사체를 신속하게 얻어내는 스캐폴드 호핑(scaffold hopping)을 실제 연구 현장에서 현실적인 선택지로 만들어 줍니다. 불필요한 재합성을 줄인다는 점에서 원자 경제성과 단계 경제성의 관점에서도 의미가 있으며, 이는 지속가능한 합성이라는 화학계의 오랜 지향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무엇보다 분자를 ‘처음부터 만드는’ 대상이 아니라 ‘고쳐 쓰는’ 대상으로 바라보게 한다는 점에서, 분자 골격 편집은 합성화학의 사고방식 자체를 조금씩 바꾸어 놓고 있습니다.
이번 읽기 쉬운 총설에서는 ‘분자 골격 편집’을 주제로, 그 중에서도 단일원자 수준의 변환에 초점을 맞추어 세 분의 전문가를 모셨습니다. 10월 호에는 연세대학교 김묘정 교수님께서 ‘단일원자 삭제: 골격 편집의 태동(재발견)’에 대해 소개해 주십니다. 11월 호에서는 GIST 정원진 교수님께서 ‘단일원자 삽입: 골격 편집의 도약(역주행)’에 대해 말씀해 주시고, 연재 마지막인 12월 호에서는 KAIST 박윤수 교수님께서 ‘단일원자 치환: 골격 편집의 융성(차트킬)’에 대해 설명해 주실 것입니다. 삭제, 삽입, 치환이라는 세 가지 조작을 차례로 따라가면서, 독자들께서 이 새로운 합성 전략의 논리와 가능성을 한눈에 살펴보실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분자 골격 편집은 아직 시작 단계에 있는 분야이며, 선택성과 기질 범용성, 대량 합성으로의 확장 등 풀어야 할 과제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어떤 변환을 골격 편집이라 부를 것인지, 그리고 이를 편집의 방식과 수단에 따라 어떻게 갈래 지을 것인지에 대한 분류 체계 역시 아직 합의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점이 이 분야를 지금 가장 흥미로운 연구 영역 중 하나로 만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쁘신 일정 가운데에도 읽기 쉬운 총설 집필에 흔쾌히 참여해 주신 교수님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용호 Yong Ho Lee
• 고려대학교 화학과, 학사(1999.3-2003.2)
• 고려대학교 화학과, 석사(2003.3-2005.2, 지도교수: 이상원)
• LG화학 기술연구원, 연구원(2005.1-2015.7)
• Max-Planck-Institut für Kohlenforschung, 박사과정 연구원(2015.8-2018.6, 지도교수: Bill Morandi)
• ETH Zürich LOC, 박사(2018.7-2021.3, 지도교수: Bill Morandi)
• ETH Zürich LOC, 박사후 연구원(2021.4-2021.7, 지도교수: Peter Chen)
• 고려대학교 화학과 조교수/부교수(2021.9-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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