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세계가 만난 화학자>에서는 대한민국 화학계에 공헌한 화학자와의 인터뷰를 소개해 드리고 있습니다.
이번 호에는 나노화학 분야 세계적 석학이신 최진호 교수님(단국대 석좌교수)을 모셨습니다. 교수님은 고체무기화학과 세라믹스를 기반으로 하는 융합과학기술 분야를 선도하고 계시며, 대한민국학술원,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세라믹분야 세계학술원 등에서 세계적 석학으로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계십니다. 최진호 교수님의 인터뷰를 통해 교수님의 연구, 인생관 및 그 외 다양한 면모를 소개합니다.
[모더레이터: 이준석 교수(한양대학교 화학과)]
1. 교수님께서는 일본 동경공업대학교에서 재료공학 박사 학위를 받으시고, 독일의 뮌헨대학교에서는 화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무기화학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계시다가, 1981년부터 서울대 화학과 교수로 부임하시고 이화여대 석좌교수, 그리고 지금은 단국대 석좌 교수로 연구를 계속하고 계십니다. 이렇게 다양한 곳에서 경험하고 왕성하게 연구를 하실 수 있는 교수님만의 철학이나 원동력이 있을까요?
제가 대학과 대학원에서 공부하던 1960년대 말과 1970년 초 당시의 우리나라 경제 상황은 아무 열악했죠. 그래서 대학이나 대학원 실험실에는 연구장비가 잘 갖추어져 있지 않았어요. 당연히 하고 싶은 연구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좋은 기회에 장학금을 받아 일본 동경공업대학으로 유학을 가게 됐는데, 그 당시 실험실에는 모든 장비가 갖춰져서 연구하기 좋은 환경이었습니다. 하지만, 지도교수님이 제가 원하는 연구 주제를 주시지 않고 다른 주제를 권유하셨어요. 사실 저는 전이금속 산화물의 자기적 특성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특히 강자성 물질의 합성과 응용에 관한 연구를 하고 싶었지요. 왜냐하면 향후 우리나라 산업에 크게 도움이 될거라고 생각되었지요. 당시 일본에서는 전철을 탈 때도 자성테이프 티켓을 넣거나 기억 소자에 자성 재료를 활용하는 연구가 활성화 되어 있었기 때문에 자성체 분야의 기초와 응용 연구를 하고 한국에 돌아가 한국 경제에 기여할 수 있겠다 싶었죠. 그래서 지도교수님께 계속 연구주제 변경을 부탁드렸는데 허락해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연 구주제가 결정되지 않아 차일피일 연구 시작을 미루고 있던 어느날 아침 일찍 교수님을 찾아갔더니, 교수님께서는 제게 “학문하는 사람은 학문적 호기심에 경계가 있어선 안 된다네. 그런 학문적 자세로는 외골수(전문바보)가 될 수밖에 없네. 어떠한 분야라도 학문적 호기심 을 가져야 하네”라고 조언해 주시더라고요. 그때 딱 깨달음이 왔죠. 그 때 이후로 교수님의 가르침대로 연구에 몰두했어요. 2~3달을 아무소리 하지 않고 연구에만 집중했어요.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는 연구였는데, 교수님이 그때야 제게 잘했다고 이야기하시더군요. 그때는 정말 밤낮 가리지 않고 학문적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연구했던 것 같아요. 하루에 3~4시 간씩 자고 실험실에 나가는 일을 반복했거든요. 일본에서의 지도교수님 말씀이 제가 지금까지 융합연구를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2. 그럼 일본에서 학위를 하시고 귀국하셨다가 다시 독일의 뮌헨대학교에서 화학 박사를 받으신 거죠?
제가 배우고 싶은 분야가 고체화학 분야이었는데 그 당시에는 미국 보다 유럽 쪽에서 더 활발히 연구를 하고 있었어요. 운이 좋게 DAAD장학생으로 뽑혀서 독일 뮌헨대학교 화학과로 가게 됐죠. 제가 학부에서 공학을 전공으로 했기 때문에 기초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공대에서는‘know how’를 배운다면 자연대학에서 는‘know why’에 대해 배운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독일에서는 화학공학에서 화학으로 전공을 바꿔 공부를 시작했어요. 전공이 바뀌었으니 더 열심히 해야 했고, 다양한 전공 수업을 많이 들을 수 있었어요. 연구소에서 매일 자정까지 일하다가 퇴근하는 일상을 반복했습니다. 굉장히 힘들었지만, 지적 호기심의 해소로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즐거웠어요. 그때 지도교수이신 Armin Weiss 교수님은 거의 매일 아침 새벽에 실험실에 오셨는데, 그때 나와 있는 대학원생이 저밖에 없어서 저는 실험결과에 대하여 매일 토론할 수 있어서 완전 행운이었죠. 그래서 매우 짧은 기간에 박사 학위를 받았어요.
3. 교수님께서는 1996년에 나노 관련 학회로는 처음으로 국제심포지엄을 개최하시는 등 국내에 ‘나노 화학’이라는 개념을 처음 전파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나노에 관심을 가지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서울대 화학과에 교수로 임용된 1981년 이후 유럽에 자주 왕래하면서 유럽 과학자들하고 공동연구를 했어요. 특히 벌크의 전이금속 화합믈을 초고압에서 합성하면 상압에서와는 달리 전이금속 주위의 대칭성이 low symmetry 에서 high symmetry로 전이되며 전혀 다른 결정구조를 갖는 신물질이 합성되며 물리적, 화학적 성질도 달라지게 됩니다. 마치 graphite가 초고압 하에서 diamond 구조로 전이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또한 벌크 물질을 submicro-meter (nano-meter) 크기로 작게 만들어 주면 표면기여도가 커지면서 symmetry가 낮아지는 것도 알게되며 벌크와 분자 사이의 물질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그래서 나노과학 분야가 중요해질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고, 1995년도에 전 과기부 장관께 나노 관련 국제심포지엄 개최를 건의했는데 예산 문제가 어려워 개최를 못했죠. 그래서 1996년에 다시 기획했고 당시 서울대 화학과의 SRC (분자촉매연구센터)의 지원으로 세계최초로 국제 나노심포지엄(International Symposium on Nanoparticle, Nanopore and Nanocomposite Chemistry)을 개최했습니다. 미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 외국 선진국들의 학자들을 초청해서 꽤 정성을 들여서 컨퍼런스를 운영했어요. 그때는 나노분야가 생소했지만, 연구가 본격화된 건 2000년 미국 빌 클린턴 대통령이 나노백서를 발표하면서 전 세계 나노 열풍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나노하이브리드라는 용어를 만들어 1998년에 논문을 발표했는데, 그 용어가 과학자들 사이에서 통용되기 시작했어요.
4. 교수님께서는 여러 난제를 많이 해결하셨을 텐데요. 현재 나노화학이 해결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화학적 문제가 무엇인가요?
글로벌 이슈에 나노화학이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존의 다양한 과학기술 영역과 나노화학의 융합이 이루어지는 인터페이스에 새로운 문제가 제기되며, 예로서 그린에너지/환경, 이와 관련한 탄소 중립 문제도 있고 의약바이오에서는 지난 펜데믹과 관련된 문제가 매우 많거든요. 제가 요즘 바이러스 치료제 분야를 연구하고 있 는데 기존 항바이러스 약의 문제점들이 많습니다. 약의 용해도나 생체 흡수율 관련된 문제점들을 나노화학이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합 니다.
5. 교수님께서는 70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하셨는데요. 그 중에서 1편을 『화학 세계』 독자에게 소개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나노과학 기법을 이용한 초전도 물질을 개발해 1998년『Science』에 논문을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논문 제목은「High-TcSuperconductors in the Two-Dimensional Limit: [(Py-Cn H2n+1)2HgI4]-Bi2Sr2Cam-1CumOy(m=1 and 2) 」이에요. 그 당시 순수 한 국인 연구자들 3명이 팀을 이뤄서 연구했고 해외 연구기 관의 도움 없이 국내의 연구 환경에서 완성한 논문이기 때문입니다. 또 지금 생각나는 다른 연구는 2차원 구조를 갖는 나노물질을 유전자 전달체로 개발하여 『JACS』(1999)와 『Angewandte Chemie』(2000)에 연속으로 발표하고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세계 최대의 재료학회인 ‘Material Research Society-2000’에서 발표를 했는데 그 연구가 ‘세계 8대 innovative research’에 선정되고 C&EN 뉴스에도 하이라이트 되었던 것도 기억에 남습니다.
6. 교수님께서는 긴 시간 동안 화학자의 길을 걸어오면서 보람도 많이 느끼셨겠지만, 그만큼 육체적으 로도 힘들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지 않으셨나요?
연구할 때는 열심히도 했지만, 늘 신나서 했습니다. 특히 서울대 화학과의 학문적으로 뛰어난 동료 교수들과 일할때는 바빠도 피곤한 줄 몰랐어요. 그리고 정말 열심히하는 대학원생들하고 연구했을 때는 그 기쁨이 몇 배가 되었습니다. 물론 실패했을 때는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였지만 지나서 생각해 보면 오히려 저에게 즐거운 스트레스로 느껴졌고 더 좋은 연구를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즉,“쉽지 않았지만 즐거운 스트레스였다.”라고 생각합니다.
7. 교수님께서 양성하신 많은 제자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이 있나요? 그 제자가 특별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서울대에서부터 박사 졸업생이 30명이 넘는 것 같아요. 대학, 대기업, 정부출연연구기관에서 인정받으면서 우리 사회의 꼭 필요한 인재가 되어 다들 잘 하고 있고 모두 기억에 남습니다. 부모의 마음하고 똑같은 것 같아 요. 지금은 성균관대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양성과 Perovskite Solar Cell 연구로 노벨상이 기대되는 박남규 교수는 서울대 화학과 박사학위 과정 중에 너무 열심히 연구해서 다른 학생보다 1년 더 빨리 졸업시킨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연세대 황성주 교수는 꾸준히 2차전지 연구로 국내외 학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서울대 교수로 활약 중인 정인 교수는 석사과정 중에 2차원 구조 물질의 van der Waals gap 내에 radical 분자를 안정화시키는 연구 아이 디어를 내어 저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지요. 모두 열심히 포기하지 않고 연구를 하더니 지금은 확실하게 본인 연구의 정체성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화여대 화학과에서는 최고은 박사가 뚝심을 잃지 않고 끝까지 연구를 하며 지금은 단국대에 교수로 임용되어 있습니다. 제가 목표로 하는 연구를 마지막까지 이어서 하는 연구자이기도 합니다.
8. 화학공부를 열심히 해나가는 학생들에게 조언의 말씀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공자님 말씀과 같이 공부는 아무리 해도 미치지 못하는 듯이 애써야 하고 오히려 이를 잊어버리지 않을까 두려워 해야 한다고 배웠고 이를 몸소 실천하며 보여 주려 노력해 왔습니다. 그리고 최후의 승자는 포기하지 않는 자라고 학생들에게 항상 조언합니다. 학생들이 중간에 실험실 생활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마라톤의 메달리스트와 같이 끝까지 달려야 해요. 중간에 타협하는 학생들이 많아요. 연구를 하다가 힘들면 중간에 그만두고 적당한 곳으로 취직하겠다고 하는 학생들이요. 저는 그럴 때마다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가라고 해요. 목표를 달성하라고요. 꼰대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요즘 학생들은 견뎌내는 힘이 약한 것 같아요. 적당히 하고 적당히 사회에 순응하려고 하는 게 안타까워요. 최후의 승자가 되길 바랍니다. 최후의 승자는 포기하지 않아요.
9. 화학연구를 열심히 해나가는 신진/중견 화학 연구자에게 조언의 말씀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전 세계는 4차 산업혁명과 함께 치열한 첨단기술 경쟁체제에 돌입하였어요. 따라서 탄탄한 기초과학의 뒷받침이 없이는 우리나라의 미래가 어둡다고 판단됩니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역량과 잠재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정부의 기초과학 연구투자가 지속적이고 획기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현 정부의 연구비 삭감 소식을 접하며 우리나라 신진, 중견 과학자들의 연구 열정에 찬물을 끼얹는 근시안적 과학기술 정책을 매우 걱정스럽게 생각합니다. 혹시라도 지금보다 연구환경이 조금 어려워진다 해도 우리 신진/중견 화학 연구자들의 연구 열정이 식지 않기를 바라며 항상 응원합니다. 그리고 조언이라기 보다는 부탁 말씀을 드리면 글로벌 이슈에 관심을 계속 가지면서 학문의 패러다임 변화를 읽기를 바랍니다. 저도 처음에는 화학공학을 공부하다가 화학을 했고 지금은 나노과학을 접하면서 계속 BT, IT와도 융합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학문의 장벽이 없이 쭉 연결해 나가면 아까 말했던 에너지, 환경, 의약바이오 문제와 같은 글로벌 이슈에 접근할 수 있고, 이를 통해서 미래에는 젊은 과학자들 중에 노벨상을 받는 분들이 많이 나올 것으로 생각합니다. 요새 노벨상들이 글로벌 이슈를 해결한 사람들에게 주목하니까요. 물론 기초과학으로부터 문제 제기가 되어야하고 과학적 논리로 문제의 답을 찾아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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