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빛낸 화학자45(2025년 11월호)
- 성완 박
- 23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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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홍구(沈洪九) KAIST 교수(1946~)

심홍구 교수님은 1946년 황해도 연백에서 태어나셨다. 1984년 고려대학교 화학과에서 진정일 교수님 지도 아래 박사 학위를 받으셨고 이후 1987년부터 1988년까지 University of Massachusetts, Amherst의 Robert Lenz 교수 연구실에서 폴리(p-페닐렌비닐렌) (poly(1,4-phenylenevinylene), PPV) 합성 연구로 박사후 과정을 수행하셨다. 1984년 KAIST 화학과에 부임하신 이후, 2008년 석좌교수로 임용되셨고 2011년 은퇴하실 때까지 KAIST 자연과학대학장, 학생처장을 역임하셨다. 또한 한국고분자학회 부회장 및 학술편집 위원장을 지내셨고, 2001년 ISI Citation Classic Award와 상암 고분자상을 수상하셨다. 1999년에는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정회원으로 임명되셨다. 심홍구 교수님은 유기 반도체 소재 합성 및 유기 전자 소자 응용 분야의 개척자로서 이 분야 연구에 지대한 업적을 남기셨다.
1970년대 후반, 파이 공액 구조를 가지는 공액 고분자(conjugated polymer)분야는 큰 전환점을 맞이했다. Tsukuba 대학의 Shirakawa 교수 연구실에서 그동안 파우더 형태로 얻어지던 폴리아세틸렌을 Ziegler-Natta 촉매를 사용하여 필름 형태로 합성하는 데 성공하였고 Pennsylvania 대학의 MacDiarmid 교수와 Heeger 교수가 도핑 과정을 통해 폴리아세틸렌 박막으로부터 103 S/cm 이상의 높은 전기 전도도를 얻을 수 있음을 보고했다. 이후 독일 기업 BASF는 도핑된 폴리아세틸렌 필름으로부터 구리에 버금가는 105 S/cm 이상의 높은 전기 전도도를 얻을 수 있음을 보고하였고, 이러한 연구 결과는 전도성 고분자 분야 연구자들에게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심홍구 교수님께서 Robert Lenz 교수 연구실에서 연구하셨던 PPV는 페닐기와 이중결합이 교대로 연결된 흥미로운 구조의 파이 공액 고분자였다. PPV는 물에 녹는 이온성 선중합체를 거쳐 합성되어 용액 공정으로 박막 제조가 용이하고 10배 이상 연신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선중합체 필름은 180℃ 이상의 높은 온도에서 이탈기들이 제거되면서 완전한 파이 공액 구조를 가진 고분자가 된다. 연신된 상태에서 제조된 PPV 유도체 박막은 요오드와 같은 약한 산화제에 의해 도핑되어 103 S/cm 이상의 높은 전기 전도도를 보였다. 심홍구 교수님께서는 PPV의 밴드갭을 낮추어 도핑이 용이하고 높은 전기 전도도를 얻을 수 있는 다양한 PPV 유도체를 합성하셨고, 티오펜과 같은 헤테로 고리를 포함하는 PPV 유도체들을 합성하여 전기 광학적 특성을 평가하는 연구를 진행하셨다. Heeger 교수님과 폴리아세틸렌의 전기 전도도 연구를 하시던 서울대 물리학과 박영우 교수님과 함께 도핑된 PPV 유도체 박막의 전도 메커니즘 연구를 공동으로 수행하셨다. PPV 유도체는 이후 미국의 화학자 W.L. Gilch에 의해 개발된 1,4-비스(할로메틸)벤젠으로부터 직접 합성하는 방법을 통해 널리 합성할 수 있게 되었다. 심홍구 교수님께서는 Gilch 중합법으로 유기 용매에 용해될 수 있는 전기 발광 PPV 유도체 개발에도 많은 기여를 하셨다.


폴리아세틸렌 필름의 제조와 도핑을 통해 높은 전기 전도도를 얻는 데 성공하면서 전기 전도성 고분자 연구는 전 세계적으로 뜨겁게 진행되었지만, 전도성 고분자의 상업적 응용은 기대만큼 성공적이지 못했다. 도핑된 전도성 고분자는 화학적 안정성이 높지 못했고, 공기 중의 산소와 수분에 의해 쉽게 산화되어 전기 전도성을 상실했다. 또한 대부분의 전도성 고분자는 용매에 잘 녹지 않거나 녹는점이 높아 가공성이 부족했고 합성과정이 복잡한 단점이 있었다. 전도성 고분자의 응용에 한계를 느끼고 있을 즈음, 1987년 Eastman Kodak의 C. Tang 박사는 저분자 유기물질로부터 비교적 높은 효율을 갖는 유기 전기 발광 다이오드(organic light-emitting diode)를 제작하여 보고하였다. 이어서 Cavendish 연구소의 R. H. Friend 교수 그룹에서 PPV 고분자 박막을 발광층으로 하는 녹색 전기 발광 소자의 제작에 성공하면서, 전도성 고분자의 관심과 응용은 자연스럽게 전기 발광 다이오드 연구로 이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전도체가 아닌 반도체 재료로서 파이 공액 고분자의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심홍구 교수님께서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의 정태형 박사님과 함께 1993년부터 전기 발광 고분자 연구를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시작하셨으며, 한국정보디스플레이학회에서 공인한 유기 전기 발광 소자 관련 국내 첫 논문을 보고하셨다. 이후 PPV의 틀에서 벗어나 다양한 구조와 중합법을 이용하여 전기 발광 유기 반도체 고분자를 설계하고 합성하는 데 집중하셨다. PPV는 약 2.5 eV의 밴드갭을 가지고 있으며 녹색을 발광하고, 알콕시가 치환된 PPV 유도체는 밴드갭유도체의 밴드갭을 넓히기 위해 파이 공액 PPV 구조에 비공액성 알킬 구조를 도입하여 파이 공액 길이를 조절할 수 있었고, 합성된 고분자를 사용하여 고효율의 청색 발광 소자를 제작할 수 있었다.
완전 공액 구조를 가진 청색 발광 고분자는 폴리페닐렌 계통의 고분자가 알려져 있었으나, 분자량이 낮고 용해도가 좋지 않아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당시 유기 합성 분야에서는 Yamamoto 반응과 Suzuki 반응을 통해 아릴(aryl)기를 커플링(coupling)하는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었으며, 이러한 반응들은 공액 고분자를 합성하는 데에도 적용되기 시작했다. 특히 폴리플루오렌(polyfluorene) 유도체를 합성하는 데 적용되어 청색 발광 폴리플루오렌 유도체를 합성하는 데 성공하였다. 심홍구 교수님께서는 고효율의 청색 폴리플루오렌 유도체는 물론 녹색과 적색을 발광하는 낮은 밴드갭을 가지는 공단량체를 설계하여 분자 내 에너지 전이를 통해 고효율의 녹색과 적색 발광 고분자를 개발하는 데 큰 기여를 하셨다. 또한 낮은 밴드갭을 가지는 공단량체의 비를 조절하여 분자 내에서의 불완전한 에너지 전이를 유도함으로써 전 가시광 영역의 빛을 발광하는 백색 발광 단일 고분자 시스템을 설계하셨고, 합성된 고분자로부터 높은 색 순도의 백색 발광 다이오드를 제작할 수 있었다.
고분자 전기 발광 소자에서는 형광이 주로 사용되고 있었으나, 저분자 OLED 소자에는 삼중항 엑시톤을 발광에 사용할 수 있는 이리듐 기반 인광 분자를 이용한 소자들이 활발히 연구되고 있었다. 심홍구 교수님께서는 형광 발광 고분자 주쇄에 인광 발광할 수 있는 이리듐 단량체를 도입하여 인광 혹은 에너지 전이를 조절함으로써 형광과 인광이 함께 발광할 수 있는 고분자를 합성하는 데 성공하셨다.
고분자 발광 소자에는 발광 층 외에도 ITO 전극으로부터 정공의 주입을 돕는 정공 주입 층이 사용된다. 가장 널리 알려진 전자 주입 층은 지금도 널리 사용되고 있는 PEDOT:PSS였다. 그러나 PEDOT:PSS는 강한 산성을 띠며 수분을 잘 흡수하여 전기 발광 소자의 수명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심홍구 교수님께서는 폴리아미노아릴렌(polyaminoarylene) 구조의 새로운 정공 수송 고분자를 설계하고 합성하셨다. 합성된 고분자는 박막 특성이 매우 우수하였고 균일한 다층 박막을 형성했으며, 제작된 전기 발광 소자도 우수한 특성을 보여 PEDOT:PSS를 대체할 수 있는 수송 재료로 주목을 받았다.
심홍구 교수님은 2000년대 ‘21세기 프론티어 차세대정보디스플레이기술개발사업단’의 일환으로 유기 트랜지스터 소재 연구를 시작하셨다. 당시 이 분야에는 폴리싸이오펜(P3HT), 폴리플루오렌공중합체(F8T2), 그리고 펜타센 등 몇몇 소재만이 알려져 있었다. 교수님은 F8T2의 이동도를 개선하기 위해 싸이에노싸이오펜(thienothiophene)을 도입하여 F8TT라는 새로운 고분자를 합성하였다. 이 F8TT는 싸이에노싸이오펜 단량체의 평평한 구조로 사슬간 배향이 향상되어 기존 F8T2보다 높은 이동도를 보였다. 또한, 싸이에노싸이오펜을 바이페닐(biphenyl)이나 플루오렌과 결합하여 새로운 단분자 유기 트랜지스터 재료를 개발하셨고, 이 재료는 GIST의 김동유 교수팀, 일본 AIST의 Yase 박사팀과의 공동 연구를 통해 높은 이동도, 우수한 안정성, 그리고 높은 점멸비를 갖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러한 특성을 이용하여 당시 기존 유기광트랜지스터보다 100배 향상된 성능을 갖는 유기광트랜지스터를 개발하였다. 당시 용액 공정 유기 트랜지스터는 이동도와 점멸비 사이의 상충 관계(trade-off)가 문제였다. 교수님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p-type 공액 고분자에 F4-TCNQ라는 전자 받게 물질을 혼합하는 전략을 제시하였다. 이 방법을 통해 고분자 사슬의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전극 주입 장벽을 낮춰 이동도를 높일 수 있었다.

그 외에도 교수님은 용액 공정 유기 트랜지스터의 이동도를 높이기 위해 싸이오펜 대신 셀레노펜(selenophene)을 도입한 고분자들을 합성하셨다. 또한, 용액 공정이 가능한 트리아이소프로필실릴(triisopropylsilyl)기를 안트라센 유도체에 도입하여 높은 점멸비와 낮은 암전류를 갖는 유기 트랜지스터를 개발하셨다. 이 소재들은 결정성이 높아 단결정(single crystal) 성장이 가능했으며, 포항공대 박찬언 교수팀과의 공동 연구를 통해 평균 1.8 cm2/Vs, 최대 3.7 cm2/Vs에 이르는 높은 이동도를 보이는 것을 확인했다.
심홍구 교수님께서는 1990년대 초반 새롭게 각광받은 PPV의 전기적 특성뿐만 아니라 비선형 광학 특성에 대해서도 많은 연구를 하셨다. 당시 비선형 광학 재료는 차세대 광통신 기술에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과 먼 미래에 광 정보 저장 혹은 광 컴퓨팅에 쓰일 수 있는 소재로 전망하고 새로운 소재에 대한 비선형 광학 특성을 활발히 연구 중이셨다. PPV는 열적 특성도 우수하고, 전기 전도성도 갖고 있으므로 비선형 광학 소재로서 충분한 잠재력이 있었다. 여러 PPV 유도체의 비선형 광학 특성을 보고하던 중, PPV 주사슬에 강한 전자 주게, 전자 받게를 도입하고 합성하는 데 한계가 있어, side chain에 별도로 강한 전자 주게 및 받게를 갖는 비선형 광학 염료 분자를 연결하는 고분자 구조를 설계, 합성하여 기존 PPV 유도체보다 우수한 비선형 광학 특성을 보고하셨다. 기존 비선형 광학 염료와 고분자 블렌드 시스템보다는 PPV 유도체가 열 안정성, 장시간 특성 안정성 등에서는 우수하나 비선형 광학 특성이 낮았기에, 열적으로 안정하면서 비선형 광학 특성도 우수한 고분자에 대해 지속적으로 연구하셨다. 비선형 광학 염료를 포함한 폴리우레탄, 폴리이미드, 가교 고분자, 에폭시 레진 및 졸-겔(sol-gel) 가교 가능한 고분자 등 고온에서 지속적으로 비선형 광학 특성을 유지할 수 있는 고분자들을 설계, 합성 및 그 비선형 광학 특성에 대해 보고하셨다.
글 부산대학교 화학과 교수 황도훈
서울시립대학교 신소재공학과 교수 정병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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