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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는 경계의 이동과 확장에 대한 도전이다


<화학세계가 만난 화학자>는 대한민국 화학계에 공헌한 화학자에 대한 인터뷰 기사를 소개해 드리고 있습니다. 지난해 가을 제130회 대한화학회 총회 및 학술발표회에서 이태규 학술상을 수상하신 정종화 교수님을 모셨습니다.

교수님의 연구실에서는 유기 빌딩블록을 설계·합성하여 자기조립에 의해 정렬된 나노 수준의 모양과 크기를 가지며 다양한 기능성이 기대되는 나노초분자 소재를 개발하고 계십니다.

또한 유기 나노초분자를 주형으로 이용하여 다양한 무기 나노소재를 제조하고, 이들을 수소 저장체나 특정 금속의 분리 및 회수에 응용하는 연구를 활발히 수행하고 계십니다.

연구업적에 더하여 교수님의 다양한 면모를 대한화학회 회원분들께 소개드립니다.

[모더레이터: 한순규 교수 (KAIST 화학과)]




1. 화학세계의 독자 중에는 중고등학생도 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중고등학교 학창시절부터 화학에 관심이 많으셨나요? 교수님께서 화학을 전공하시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솔직하게 이야기 드리면 제가 화학에 관심은 고등학교 다닐 때 주기율표에 대해서 공부하면서 였습니다. 그때는 원소 주기율표에 있는 원소들의 특성은 알 수 없었지만, 오비탈에 전자가 채워지는 방법이나, 산화수 및 환원수에 대한 흥미가 화학에 관심을 갖게된 시작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2. 교수님께서는 화학분야에서 박사학위를 두 번 받으셨습니다. 첫 번째 박사학위는 경상대학교에서 분석 및 무기화학분야에서, 그리고 두 번째 박사학위는 일본의 규슈 대학에서 유기화학 박사학위를 받으셨습니다. 이에 대한 스토리가 궁금합니다.


저는 경상대학교에 입학하여 석,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습니다. 제가 공부하던 시절은 많은 종합대학이 새로이 신설되었고, 산업이 급속도로 발전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래서 제 생각에 막연히 공부를 계속하면 좋은 직업을 가질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특히 제가 경상대학교에서 대학원을 진학한 이유는 그 당시 제 지도교수님인 이심성 교수님이 젊은 나이에 대학에 부임하여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연구를 꾸준히 진행하여 논문을 게재하시고 있었습니다. 저는 대학 3학년 1학기에 이심성 교수님 연구실에서 틈틈이 실험을 하면서 연구에 대한 흥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특히 실험 주제가 크라운 에테르와 금속 양이온의 착물에 대한 것으로 전기전도도 및 전위차계를 이용한 실험이었습니다. 이를 통해서 배위화학 및 전기화학에 대한 이론도 약간씩 공부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제가 경상대학교 대학원을 진학하게 된 이유는 어려운 연구환경이었지만 이심성 교수님 연구실에서 꾸준히 연구 성과 논문을 발표하고 있었으며, 그래서 대학원에서 연구 수행에 제 역할이 있을 것으로 판단하였습니다. 그 결과 제가 박사 학위를 취득할 당시 BKCS에 8편, 국내 학술지에 3편의 논문을 게재하였습니다. 논문의 수준은 평가할 수 없지만, 그 당시 시절에서는 많은 연구 실적을 게재한 것으로 인정 받았으며, 그 결과 박사학위 취득 후에 한국연구재단 지원으로 오사카 대학에서 포스닥을 1년 6개월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오사카 대학에서 T.kaneda 교수(왼쪽)와 함께 (cyclodextrin 유도체의 CPK 모형을 들고..)>



오사카 대학에서 포스닥 중에 국내 기업 연구소(수원 소재: SKC 중앙연구소)에 취업이 되어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한국으로 귀국할 당시 기업에서 2년 정도 열심히 일하고, 가능한 국립 연구소와 같이 독립적인 연구를 할 수 있는 곳으로 이직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기업에서 수행했던 일은 고분자 물성 분석에 대한 일이 대부분이었으며, 특히 1년 후쯤에 IMF가 왔고 많은 기업이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일본 규슈대학교의 Seiji Shinkai 교수로부터 메일을 받았습니다. 혹시 일본에 와서 함께 연구할 생각이 있는지와 고액 연봉을 제안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당시 Shinkai 교수는 호스트-게스트 화학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로 잘 알려졌던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일본으로 가서 Shinkai 교수님의 연구팀에서 2년 3개월 연구를 수행하였습니다. 첫날 Shinkai 교수와 논의하여 맡은 제 연구주제는 “유기물 초

분자를 이용한 무기물 나노구조체 제조”에 대한 것 였습니다. 이 일은 핵심은 호스트-게스트 화학에 대한 개념을 잘 이해하여 유기물 빌딩블록을 합성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포스닥으로 오사카 대학에 있을 때 발색단을 갖는 cyclodextrin 합성 관련 연구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합성에 대한 대부분의 노하우는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Shinkai 교수와 2년 3개월 동안 함께 연구를 진행하면서 제 인생에서 가장 많은 공부를 한 것 같고, 논문을 제1저자로 14편(JACS 3편, Angew. Chemie. 1편 포함) 게재하였습니다. Shinkai 교수는 일하던 중에 한 번씩 한국으로 언제 돌아가는지 또는 희망하는 직장이 무엇인지 등에 대해서도 저에게 자주 물어보기도 하였습니다. Shinkai 교수는 한국 사정을 잘 알고 있었으며, 언제든지 협의를 하라고 하였습니다. 2001년 3월에 쯔쿠바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Shinkai 교수는 함께 연구를 했던 많은 제자들을 잘 챙기는 분으로 많은 일본인들도 실험실을 떠난 후에도 꾸준히 교류를 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떠난 후에 기업체에서 왔던 우수한 몇몇 일본 제자들이 규슈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Shinkai 교수가 저에게도 지난 연구실적으로 규슈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을 의향을 문의해 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한국에 귀국하여 2005년도에 규슈대학으로부터 유기화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두 번에 걸쳐 박사학위를 받으면서 분석-무기화학과 유기화학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많은 공부를 하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3. 지금의 교수님을 있게 한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치셨던 분이 누구이셨나요?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제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분은 저와 가장 오랫동안 연구를 했던 제 지도교수님이신 이심성 교수님으로 생각됩니다. 학생 시절은 매우 엄격하게 연구를 하여 사실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던 것 같습니다. 앞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어려운 연구환경에서 꾸준히 연구를 수행하였고, 제가 경상대학교에서 부임한 후에도 퇴임하실 때까지 학생들과 함께 논문을 쓰고 있던 모습과 학생들을 지도하시는 모습을 자주 보았습니다. 제가 교수님 옆에서 학생에게 가르쳐야 할 지도교수의 역할 또는 성실한 연구자의 모습을 보면서 많은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2012년 경상대학교에서 Seiji Shinkai 교수(오른쪽)와 함께>


그리고 다른 한 분은 Shinkai 교수님입니다. Shinkai 교수님은 연구의 주제는 어떻게 선정해야 하는지, 학생이 수행한 결과를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서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 제가 함께 일했던 시절을 생각해 보면 향상 미팅한 결과는 메모하여 다음 미팅에서 다시 질문하거나 항상 동등한 입장에서 공동연구자로서 질문을 하였습니다. 제가 크게 배운 것은 학생이 어렵게 실험하여 얻은 결과를 소중히 생각하여 최선을 다하여 논문으로 만들어 주는 것 입니다. 제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Shinkai 교수님과 미팅을 하였고, 일본인 동료들이 Shinkai 교수와 미팅할 때 모습을 생각해 보면 향상 Shinkai 교수는 연구자들의 연구결과가 논문에 표출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여 연구결과를 정리하여 논문작성에 대해서 토론하였습니다. 이러한 모습이 존경스러웠고 저에게도 학생들이 얻은 실험 결과를 소중히 여기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됩니다.


4. 교수님의 연구는 유기화학, 무기화학, 초분자화학, 고분자화학, 나노화학, 재료화학등 화학의 광범위한 분야에 두루 걸쳐 있어 “한국 화학계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는 생각이 듭니다. 교수님의 연구를 대한화학회 회원들에게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이것은 너무 과찬인 것 같습니다. 저는 일본에서 다른 세 곳에서 연구 경험을 쌓았습니다. 한국에서 대학원 과정에서는 무기-분석화학으로 취득하였지만, 일본에서는 유기화학이나 고분자 화학 전공 연구실에서 연구를 수행하였습니다. 그래서 제 연구분야가 약간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첫 번째 포스닥으로 갔던 오사카대학의 산업과학연구소의 Yoshiteru Sakata 및 Takahiro Kaneda 교수는 유기화학자로 포피린 유도체를 합성하여 인공 광합성과 cyclodextrin 유도체를 이용한 화학센서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발색단을 갖는 cyclodextrin 유도체 합성에 대한 일을 수행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약 10개월을 걸쳐 최종 생성물을 수 mg 얻는 데 성공하여, 이를 이용한 화학센서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유기합성에 대한 공부를 하게 되었으며, Shinkai 교수와는 유기화학보다는 재료화학에 대한 공부를 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당시 실리카로 구성된 메조포러스 라는 물질이 나온지 얼마되지 않아, 많은 연구자들이 재료화학 분야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Shinkai 교수도 초분자 유기물을 이용하여 새로운 무기물 소재합성에 큰 흥미를 가지고 있었던 중에 제가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제가 잘 알고 있던 호스트-게스트 화학 분야를 하지 않고, 새로운 분야인 재료화학을 한 것이 제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 그 당시 Shinkai 교수 그룹에 저와 일본인 1명이 재료분야의 일을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유기물 합성에서부터 무기물 합성 그리고 분석을 위해서 전자현미경(SEM 및 TEM) 사용 등에 많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연구 도중에 생긴 문제점을 해결한 후에 우수한 많은 성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연구는 시작할 때 잘 알고 있는 주제를 하는 것이 중요한가? 아니면 새로운 주제를 시작하는 것이 중요한가? 등에 대해서 많은 고민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쉽게 연구성과를 얻으려면 잘 알고 있는 일을 하게 되겠죠, 그러나 잘 알고 있는 일은 다른 연구자들도 잘 할수 있습니다. 그러면 아마 경쟁력이 없게 되겠죠. 반면에 새로운 일은 향상 혼자 일을 진행하여야 하기 때문에 외롭고, 많은 문제점을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제 생각으로는 잘 알고 있는 일보다는 다른 연구자들이 수행하지 않는 독창적인 새로운 연구 분야를 창출하는 것이 더 중요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래서 이제는 한국의 연구자들의 연구 수준이 매우 높아졌고, 연구 환경도 좋아져서, 한국 연구자들이 연구성과를 성급하게 내기보다는 수준 높은 독창적인 연구를 통하여 성과를 창출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5. 교수님께서는 그 동안 많은 논문을 출판하셨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별히 기억에 남는 논문이 있으신가요? 기억에 남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제가 기억에 남는 논문 중의 하나는 오사카 대학에서 얻은 연구결과입니다. 처음으로 해외에서 혼자 연구를 수행한 결과를 일본 화학회에서 발행하고 있는 『Chemistry Letters』에 게재한 논문입니다. 이 결과는 연구재단지원으로 오사카 대학에 포스닥을 가셔 얻은 것으로 α-cyclodextrin(α-CD)의 18개 -OH기 중에 한 개의 -OH에 발색단을 도입하는 것입니다. 약 10단계에 걸쳐 매우 낮은 수율로 얻었지만 실제 아민에 대한 화학센서로써는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지만, 실험 중에 자기 분자끼리 aggregation되는 결과를 우연히 발견하였습니다. 그래서 물에서 α-CD의 분자 간 자기조립에 대한 초분자에 관한 연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제가 이 연구 결과를 얻기 전까지는 모든 연구자들이 물에서 CD들은 분자 내의 inclusion이 일어나고, 분자 간의 inclusion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설명하였습니다. 그러나 UV-Vis 및 NMR을 이용하여 시간변화 스펙트럼을 측정한 결과 CD의 경우 분자 간 inclusion을 통하여 초분자 구조체를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을 성공적으로 증명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이 연구성과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지 못해 성급하게 연구성과를 게재하였습니다. 그 이후 같은 연구실에서 실제 결정구조를 얻고 분석하여 집중적으로 이 연구분야를 수행하여 많은 연구성과를 얻었습니다. 비록 우수한 학술지에 게재하지 못했지만, 제가 “초분자화학” 분야를 연구하게 된 계기가 되었으며, 박사학위를 받고 혼자 스스로 연구성과를 얻은 점에서 그리고 논문을 게재한 점에서 매우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6. 교수님의 이력을 보면 국내의 기업(SKC), 정부출연연구소(KBSI), 그리고 대학(경상대학)에서 모두 재직하신 경험이 있습니다. 특히 화학관련 진로에 대하여 고민하고 있을지도 모를 화학전공 청년에게 이들 기관을 몸소 체험하신 장본인으로서 각각의 특징 및 차별점을 알려주실수 있을까요?


앞에서 이야기 드린 것처럼 여러가지 계기로 박사학위 취득 후에 여러 기관에서 근무 하게 되었습니다. 제 첫 직장으로 수원에 있는 SKC 중앙연구소에서 주로 고체 및 용액 NMR을 이용하여 고분자 물성분석에 관한 일을 수행하였습니다. 그 당시에 국내 기업체에서 고체 NMR을 이용하여 화합물을 분석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제 연구분야가 고분자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잘 알고 있는 일도 아니고, 그러나 제가 학위 과정 중에 NMR의 원리나 작동법에 대해서 매우 잘 알고 있었습니다. 특히 대학원 과정에 약 5년 동안 용액 NMR을 이용하여 실험을 주로 하여, 응용분야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비록 기업체 연구소에 근무하였지만, 고분자 화학에 대한 많은 공부를 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현재에도 제가 연구하고 있는 초분자성 고분자 연구에 매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전형적인 공유결합성 고분자와 초분자성 고분자 (비공유결합성)와 차이점 또는 특이성을 비교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대학원 과정에서 특정 전공분야 뿐만 아니라, 학부 과정에서 배운 다양한 화학 지식도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SKC에서 기술 노하우 상>



제가 KBSI에서 근무하면서 느낀 점은 한 마디로 이야기 드리면 정부출연연구소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흥미가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연구를 수행해야 할 주제가 무엇인지? 등을 고민하고, 해결하고자 노력해야 한다는 점이 었습니다. 그래서 출연연구소에 제가 근무할 당시에는 프로젝트 위주로 연구자들이 모여 자주 연구주제에 대해서 협의하고 연구과제를 수행하였습니다. 때로는 연구자들의 전공분야가 일치하자 않아 다양한 의견이 제기되기도 하지만, 국가적 차원에서 대형 연구주제를 설정하여 연구를 수행해 국가 차원의 목표를 달성하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반면에 대학은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자기 중심으로 연구주제를 설정하여 연구를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독창성이 높은 반면, 효율이 떨어지거나 응용성이 낮은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도 기초연구를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수행하고 있는 연구성과에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능한 대학의 연구자들도 연구성과가 어떤 응용성이 있는지? 또는 미래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도 고민하면서 연구를 수행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7. 교수님은 일본에서도 상당한 기간 연구를 진행하신 바 있습니다. 일본과 한국의 연구문화 및 분위기등에서 차이가 있었나요? 저희가 배울 점 혹은 타산지석 혹은 반면교사로 삼을 부분이 있나요?


일본에서는 대학원생에게 교육하는 방법이 우리나라와 많은 다른 것 같았습니다. 일본의 대학원생들은 모든 연구결과를 정리하며, 연구실에서 미팅 시에 매우 철저히 보고서를 작성합니다. 예를 들면 주간 보고서를 보면 다른 학생이 실험을 할 수 있도록 꼼꼼하게 작성하여 연구실에 보관합니다. 그리고 연구가 완료되면 일본어로 연구결과를 작성한 후, 교수와 협의 하에 논문을 작성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일본 대학원생들은 글쓰기 및 데이터 정리하는 방법을 철저히 배우는 것 같았습니다. 특히 일본 국내 학회 발표 자료는 모두 일본어로 작성하고, 영어는 절대 사용하지 않으며, 철저히 대학원생 자신이 준비를 합니다. 반면에 우리의 경우는 학회 발표 초록 또는 발표 자료를 국제어라는 영어로 사용하기 때문에 대학원생이 화학을 배우기 보다는 영어 공부하는 시간으로 바뀌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점은 우리도 한 번쯤 대학원생 교육을 위해서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대학원생의 연구 성과의 경우도 많은 결과를 도출하기 보다는 자기 스스로 문제점을 해결하고 새로운 결과를 얻으려고 노력하는 것에 더 중점을 두어야 합니다.



8. 교수님께서는 지금까지 화학자의 길을 걸어오면서 좋은 일도 많았지만 고난도 많았을 것이라 예상합니다. 지금까지의 커리어 중 가장 큰 스트레스 요인 혹은 교수님을 가장 힘들게 했던 요인은 무엇이었나요? 그 문제에 어떻게 대처하셨고 해결하셨나요?


제가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일본에서 공부한 후에 2002년 10월부터 연구자로서 생활하면서 가장 큰 스트레스는 연구비 및 연구결과에 대한 조급증이었습니다. 최근에는 한국의 경우 연구비 수주가 많이 쉬워졌습니다. 제가 2003년에 연구계획서를 제출 할 당시에 모든 연구기간이 1년 또는 2년이었습니다. 그래서 매년 연구계획서 작성하는 일로 시간을 소비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최근 연구기간이 평균 5년으로 늘어났고, 선정율도 미국이나 일본에 비교하면 매우 좋은 것 같습니다. 초기에 연구비를 수주하기 위해서 순수 화학분야에 연구과제를 제출하기 보다는 화학이 필요한 응용분야 (환경, 에너지 등)에 연구계획서를 제출하여 운 좋게 연구비를 수주하게 되어 연구실에 대학원 지원비나 재료비 지원의 문제를 해결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수한 연구성과를 도출하는데 약간의 문제점도 있었습니다.

연구성과의 경우도 초기에 JACS와 같은 우수한 학술지에 게재를 하려고 많은 시도를 하였으나, 실패도 많이 했습니다. 지금에서 생각해 보면, 조급증으로 완벽하게 완성된 연구결과도 아닌데, 빨리 성과를 도출하기 위해서 논문을 투고한 적도 많았습니다. 또한 앞에서 이야기 한 연구비 수주를 위해서 연구주제를 넓이는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한 연구분야를 집중하지 못해 우수한 연구성과 창출에 문제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수한 연구성과를 도출하기 위해서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최근에 희망하는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할 수 있었던 것도 현재 연구하고 있는 주제의 경우도 제 연구실에서만 수행하고 있는 독창적인 연구 주제이기 때문에 우수한 성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신임교수나 신임연구원이 되면 빨리 연구성과를 내기보다는 독창적인 나의 연구분야를 신중하게 설정한 후에, 자신의 연구분야에서 점진적으로 도출하는 연구성과를 냄으로써 미래의 우수한 연구자로 성장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9. 지금 이 시간에도 화학연구를 열심히 해나가는 신진/중견 화학 연구자에게 조언의 말씀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앞에서도 몇 번 이야기 드린 것처럼 우리나라도 연구환경과 연구수준이 매우 좋아졌습니다. 그래서 우수한 연구성과를 도출하기 위해서 너무 성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본인 생각하는 연구분야를 창출하여 새로운 연구분야에 도전하는 것이 좋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특히 해외에서 공부하시는 분들 중에 매우 우수한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연구자들 중에 대학원생 시절과 한국의 분위기나 연구환경이 달라 어려움을 겪는 분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너무 연구성과에 조급하지 말고 인내를 가지고 연구에 도전을 하면 언젠가는 본인이 희망하는 우수한 연구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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