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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을 이야기하는 화학자

4시간 전
6분 분량

화학교육

화학을 이야기하는 화학자

장홍제 | 광운대학교 화학과 교수, hjang@kw.ac.kr


나는 화학자다. 대학에서는 학생들에게 화학을 가르치고, 연구실에서는 여전히 계속해서 새로운 모습으로 가득한 물질과 성질을 연구한다. 이것만으로도 교수라는 본업의 상당 부분은 설명된다. 그런데 지난 몇 년 동안 내게는 조금 다른 종류의 일이 크게 늘었다. 책을 쓰고, 칼럼을 쓰고, 대중 강연을 하고, 방송에 출연하고, 유튜브 영상을 만든다. 처음에는 이런 일들을 연구와 교육의 바깥에 있는 대중 활동 정도로 생각했다. 시간이 남으면 하는 일, 혹은 화학자의 사회적 봉사에 가까운 무엇이었다.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강의실에서 화학을 가르치는 일과 강의실 밖에서 화학을 이야기하는 일은 생각보다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오히려 후자를 오래 해보면서 나는 전자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하게 되었다. 우리는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사람들은 왜 화학을 어렵다고 생각하는가. 그리고 화학자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어디까지, 어떤 언어로 사회와 나누어야 하는가.


대중화에 대한 고민


과학 대중화는 흔히 ‘어려운 과학을 쉽고 흥미롭게 설명하는 일’로 정의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나는 이 표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과학은 실제로 어렵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과학이 쉽다고 말하는 사람은 이미지 관리를 위해 거짓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양자역학을 쉬운 비유 몇 개로 완전히 설명할 수 없고, 유기화학의 반응성을 분자 그림 하나로 대신할 수도 없다. 나노물질의 촉매 활성을 설명하려면 표면, 전자구조, 열역학과 반응속도론을 어느 정도는 지나가야 한다. 쉬운 설명을 지나치게 목표로 삼으면 어느 순간부터 정확성을 희생하게 된다. 더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다. 어쩌면 사람들은 과학, 특히 화학이 어려워서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왜 이것을 알아야 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어려운 것부터 배웠기 때문에 화학을 싫어하게 된 것은 아닐까.

우리 대부분이 화학을 처음 만난 장면을 생각해보자. 원소기호를 외우고, 화학식을 맞추고, 몰수를 계산하고, 주기율표의 경향성을 배운다. 모두 중요한 내용이다. 그러나 그 전에 물어야 할 질문 하나가 빠져 있다. 도대체 인간은 왜 이런 것을 알아내려고 했을까. 인간은 시험문제를 만들기 위해 원소를 발견한 것이 아니다. 세상을 구성하는 가장 본질적인 조각들을 밝혀내고 싶었고, 더 단단한 금속을 얻고 싶었다. 나아가 죽지 않는 약을 만들고 싶었고, 황금을 만들고 싶었으며, 더 강한 폭발물을 필요로 했다. 색을 만들고 향을 만들었으며, 질병을 치료하고 식량을 생산하고 우주로 나가기 위해 물질을 이해해야 했다. 때로는 욕망 때문에, 때로는 전쟁 때문에, 때로는 순수한 호기심 때문에 우리는 물질을 만졌다. 그 긴 시행착오의 끝에서 현대 화학이 만들어졌다. 그런 이야기를 모두 걷어낸 뒤 완성된 결과만 교과서에 배열하면 화학은 놀라울 정도로 건조한 학문이 된다.


다가서는 길은 하나가 아니다


그래서 대중에게 화학을 이야기할 때 나는 가능하면 정의에서 출발하지 않으려 한다. 먼저 사건을 보여주고, 물질을 보여주고, 질문을 던진다. 연금술, 독극물, 술, 폭발물, 약물, 게임 속 물질, 역사 속 기술처럼 때로는 정통 화학교육의 첫 페이지에 등장하기 어려운 소재들도 거리낌 없이 가져온다. 소재 자체가 화학인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소재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 물질의 구조와 성질, 반응이라는 화학의 본체에 도달한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나는 ‘쉽게 설명하는 것’과 ‘재미있게 시작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사실을 배웠다. 화학의 난도를 무작정 낮출 필요는 없다. 대신 들어오는 문턱을 낮출 수는 있다. 유튜브를 시작했을 때도 비슷한 생각이었다. 이미 세상에는 훌륭한 과학 콘텐츠가 많았지만 화학만을 중심에 놓고, 그것도 조금 깊숙한 곳까지 내려가는 콘텐츠는 상대적으로 드물었다. 아니 국내에는 전혀 없었다. 그래서 내가 궁금한 화학을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흥미로운 주제를 먼저 고른 뒤 논문과 데이터를 찾아 읽고, 그것을 어떤 순서로 보여주어야 하나의 이야기가 될지 고민했다. 처음에는 이것이 대중을 위한 작업이라고 생각했는데, 오래 하다 보니 가장 많이 공부한 사람은 정작 나 자신이었다.

연구자는 필연적으로 좁아진다. 연구가 깊어진다는 것은 대체로 자신의 전문 영역이 점점 더 세밀해진다는 뜻이다. 그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과학은 그렇게 발전한다. 하지만 가끔 고개를 들지 않으면 내가 연구하는 한 조각이 화학 전체의 어디쯤 놓여 있는지 잊게 된다. 유튜브에서 카드뮴 하나를 다루기 위해 역사와 독성, 광물, 산업, 반도체와 환경 문제를 다시 살피고, 폭발물을 설명하기 위해 현대 재료과학에서 19세기의 합성화학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일은 연구 논문을 쓰는 것과 전혀 다른 공부다. 책 한 권을 쓰는 일은 그보다 더 심하다. 내가 안다고 생각했던 것을 처음부터 다시 확인하게 한다. 대중화는 지식을 내려보내는 일이 아니라 연구자 자신의 지식 지도를 다시 그리는 일이었다. 교육자로서의 우리가 강의를 준비하고 풀어내며 오히려 뒤섞여 있던 스스로의 지식이 정리되던 경험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글에도 말에도 힘이 있다


강연과 방송은 또 다르다. 책에서는 독자가 멈출 수 있다. 어려운 문장을 다시 읽을 수도 있고 앞 페이지로 돌아갈 수도 있다. 유튜브에서는 시청자가 떠날 수 있다. 몇 초 안에 다음 영상으로 넘어간다. 반면 강연에서는 눈앞에 사람이 있다. 표정이 보인다. 내가 재미있다고 생각한 부분에서 아무도 웃지 않을 수도 있고, 별것 아니라고 여기고 지나간 이야기에서 사람들이 갑자기 집중하기도 한다.

그 경험은 대학 강의에도 영향을 주었다. 우리는 학생이 이해하지 못하면 흔히 설명이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설명을 더한다. 그러나 설명이 많아진다고 반드시 이해가 깊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보가 늘어날수록 전체 구조를 놓칠 수도 있다. 대중 강연을 반복하며 알게 된 것은 청중이 따라오지 못하는 순간에는 정보의 양보다 이야기의 좌표를 잃은 경우가 많다. 지금 왜 이 이야기를 하는지, 앞의 내용과 무엇이 연결되는지, 결국 어디로 가려는지를 놓친 것이다. 좋은 교육은 정보를 많이 주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지식 사이에 길을 내야 한다.

여기에서 과학 대중화의 또 다른 의미가 생긴다. 과학자는 사실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사람인 동시에, 사실들이 어떤 관계를 맺는지를 보여주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것은 특히 화학에서 중요하다. 화학은 물리학과 생물학, 의학, 환경, 재료, 에너지, 산업을 연결한다. 플라스틱이라는 단어 하나만 해도 고분자화학에서 시작해 석유산업, 소비문화, 해양오염, 재활용 기술과 탄소 문제까지 이어진다. 약 한 알은 유기합성의 결과이면서 생화학적 신호이고 동시에 제약 산업과 사회제도의 산물이다. 화학을 제대로 이야기한다는 것은 물질만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는 일이 된다.

그렇기에 화학 대중화에는 위험도 따른다. 특히 독성물질, 마약, 폭발물처럼 강한 이야기는 관심을 끌기 쉽다. 자극적인 제목 하나가 조회수를 올려주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흥미는 목적지가 아니라 입구여야 한다. ‘무섭다’, ‘위험하다’, ‘놀랍다’에서 끝나면 화학 콘텐츠가 아니라 구경거리가 된다. 왜 그런 성질을 갖는지, 어떤 구조가 그 성질을 만드는지, 인간은 그것을 어떻게 이용했고 또 통제하려 했는지까지 가야 한다. 위험한 물질을 말하지 않는 것이 과학교육은 아니다. 오히려 정확히 말하는 것이 과학교육에 가깝다.


어려움과 모름을 인정할 용기


과학 커뮤니케이터라는 말도 그래서 조심스럽다. 나는 스스로를 전문적인 방송인이나 커뮤니케이터라고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다. 여전히 본업은 화학자이고 교수다. 다만 연구실과 강의실에서 얻은 것을 조금 다른 장소에서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바로 그 점 때문에 연구자가 대중과 직접 만나는 일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전달하기 위해 여러 단계로 가공된 과학이 아니라, 그 분야에서 실제로 연구하고 논문을 읽는 사람이 자신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경계를 함께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한 가지 중요한 원칙이 있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다.

대중 앞에 선 전문가는 모든 질문에 답해야 할 것 같은 압박을 받는다. 방송은 짧은 답을 요구하고 유튜브는 명쾌한 결론을 좋아한다. 그러나 과학은 원래 그렇게 단정적인 학문이 아니다. 조건에 따라 답이 달라지고, 데이터가 부족하기도 하며, 연구자들 사이에 해석이 갈리기도 한다. 대중화 과정에서 이런 불확실성을 모두 지워버리면 과학은 지식이 아니라 권위가 된다. 과학자가 사회에 줄 수 있는 것은 정답만이 아니라 어떤 근거를 가지고 어디까지 말할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오늘날에는 이것이 더욱 중요하다. 우리는 과거 어느 시대보다 많은 과학 정보를 접한다. 검색하면 논문이 나오고, 생성형 인공지능은 몇 초 만에 그럴듯한 설명을 만들어준다. 이제 지식을 가진 사람과 가지지 못한 사람을 단순히 정보량으로 구분하기 어려워졌다. 그렇다면 미래의 화학교육은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나는 오히려 화학자처럼 생각하는 방법이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질의 이름보다 구조를 보고, 현상보다 원인을 묻고, 하나의 주장보다 데이터를 확인하며, 그럴듯한 설명 앞에서 조건과 한계를 살피는 습관이다. 무엇이든 답해주는 시대에는 좋은 답을 외우는 능력보다 좋은 질문을 만드는 능력이 더 귀해진다.

이런 의미에서 유튜브와 방송, 책과 강연은 대학 교육의 경쟁자가 아니다. 서로 다른 입구다. 누군가는 학교에서 화학을 처음 만나고, 누군가는 책에서, 누군가는 10분짜리 영상에서, 또 누군가는 우연히 본 방송의 한 장면에서 화학을 만난다. 모든 사람이 화학자가 될 필요는 없다. 모든 사람이 분자궤도함수를 계산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자신이 먹는 약과 사용하는 플라스틱, 충전하는 배터리와 마시는 술, 숨 쉬는 공기와 살아갈 환경이 결국 물질의 문제라는 사실 정도는 알 수 있다. 그 순간 화학은 시험과목에서 세계를 읽는 언어로 조금씩 바뀐다.

나는 화학 대중화의 성공을 화학을 얼마나 쉽게 만들었는가로 평가하고 싶지 않다. 화학은 앞으로도 어려울 것이다. 오히려 그래야 한다. 수백 년 동안 수많은 사람이 쌓아 올린 학문이 몇 분 만에 완전히 이해된다면 그것이 더 이상하다. 대신 한 사람이라도 영상을 보고 ‘왜 그렇지?’라는 질문을 하나 더 하게 된다면, 책을 덮은 뒤 주기율표를 한 번 다시 들여다본다면, 강연을 듣고 자신이 매일 사용하는 물질을 이전과 조금 다른 눈으로 바라본다면 충분하다. 그 작은 질문이 대학의 강의실로 이어질 수도 있고 연구실로 이어질 수도 있다. 꼭 그렇지 않더라도 상관없다. 과학은 과학자의 전유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몇 년 동안 강의실 밖에서 화학을 이야기하며 결국 다시 강의실로 돌아와 깨달은 것이 있다. 우리는 학생에게 화학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화학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화학자의 역할 역시 논문을 쓰고 학생을 가르치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발견한 것을 사회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바꾸고, 그 과정에서 과학의 정확성과 불확실성을 함께 전달하는 일도 누군가는 해야 한다. 책일 수도 있고, 방송일 수도 있고, 강연이나 유튜브일 수도 있다. 형식은 중요하지 않다. 결국 중요한 것은 화학이 연구실 안에만 머물지 않게 하는 것이다.

화학은 세상을 구성하는 물질을 다루는 학문이다. 그렇다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화학이 만나는 일은 부수적인 활동이 아니라 어쩌면 화학이라는 학문이 완성되는 마지막 과정일지도 모른다. 나는 앞으로도 연구실에서는 조금 더 작은 물질을 들여다보고, 강의실에서는 조금 더 깊은 화학을 가르치면서, 그 밖에서는 가능한 한 많은 사람에게 계속해서 화학 이야기를 건네고 싶다.

화학을 쉽게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다. 화학으로 들어가는 문을 하나라도 더 만들어두기 위해서다.



장홍제 Hongje Jang


KAIST 화학과, 학사(2004.3-2008.2)

KAIST 화학과, 박사(2008.3-2013.8, 지도교수 : 한상우)

서울대학교 화학과 박사후 연구원(2013.9 - 2015.1, 지도교수 : 민달희)

Georgia Institute of Technology, Department of Chemistry and Biochemistry 박사후 연구원(2015.1-2016.1, 지도교수 : Mostafa A. El-Sayed)

광운대학교 화학과 교수(2016.3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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