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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집 또는 긍지? 중국의 원소 이름

10시간 전
7분 분량

들어가며

 

앞선 연재에서 살펴보았듯, 근대 화학의 기본인 원소라 는 개념을 받아들이면서 중국과 일본은 다른 선택을 했다. 한국은 두 나라 사이에서 양쪽 모두의 영향을 받다가, 결 국 일본식 용어를 흡수하게 되었다. 일단 “원어 발음”을 살려 쓰는 데에 익숙해지자, 많은 한국인들은 한자를 새 로 만들어 쓰는 중국식 원소 이름을 낯설고 어색하게 느끼 기도 하였다.

하지만 중국의 원소 이름도 오랜 고민과 여러 차례의 시 행착오 끝에 정착된 것이다. 새로 만든 한자 원소 이름들 이 우리 눈에 낯설게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한자들 도 주먹구구로 지어낸 것은 아니고 합리적인 체계에 바탕 을 두고 있다. 익숙해지기 전에는 난해하고 기괴하게 보 이지만, 일단 그 체계를 이해하고 나면 충분히 수긍할 만 한 내적 정합성을 발견할 수 있다.

지난 연재에서 중국 원소 이름의 기본 원칙과 예 등을 단편적으로 소개한 적은 있지만, 그 전체적인 모습에 대 해 설명할 기회는 없었다. 그래서 이번 회에서는 중국 원 소 이름의 유래와 특징에 대해 진지하게 살펴보려 한다.


양무운동과 서양 과학기술 서적의 번역, 그리고 화학 용어

 

아편전쟁을 효시로 서양의 충격에 노출된 중국은, 양무 운동(洋務運動)을 통해 적극적으로 서양 과학기술을 받아 들이기 시작했다. 물론 잘 알려져 있듯이 양무운동은 기본 적으로 “중체서용(中體西用)”, 즉 서양 문명의 세계관이나 인식론은 배격하면서 그 과학기술의 쓰임새만 취한다는 생 각에 바탕을 두고 있었으므로, 이 시기 서양 과학기술은 어 디까지나 방편으로서 수용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 본적인 개념과 용어들을 공유하지 않는다면 방편으로서의 서양 과학기술도 제대로 익힐 수 없다는 것도 자명했다. 따 라서 양무운동의 전초기지인 상하이의 강남제조국(江南製造局) 산하에 “번역관”이 설치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번역관은 강남제조국 안에서 서양의 과학기술서를 지속 적으로 번역·간행하는 일종의 지식 생산 공장이었다. 용어 의 일관성은 이 과업의 수행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전제 조건이었다. 서수(Xu Shu 徐壽, 1818–1884)와 존 프라 이어(John Fryer: 푸란야 傅蘭雅, 1839–1928) 등 번역관 의 핵심 인력은 각종 과학 용어를 통일하는 작업부터 시작 했다. 서수는 독학으로 화학을 습득한 중국인 학자였고,


프라이어는 선교사 출신의 번역가로서 강남제조국 번역관 에서 장기간 번역과 편찬에 종사했다.

중국이 서양에 문호를 개방한 1850년대부터 선교사들 을 중심으로 적지 않은 수의 과학기술 서적이 번역되었지 만, 여기저기서 산발적으로 번역되다 보니 용어가 통일되 지 않아 독자들에게 혼란만 더해주었다. 예를 들어 영국인 선교사 홉슨(合信 Benjamin Hobson, 1816–1873)은『박물신편(博物新編)』(1854-55)을 비롯하여 여러 편의 과 학 서적을 펴냈는데, “elements”를 “원질(元質)”로, “hy-drogen”을 “경기(輕氣)” 즉 “가벼운 공기”로, “oxygen”은 “양기(養氣)” 즉 “(생명을) 살리는 공기”로 옮겼다. 원소의 특징을 살리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보이는 작명이지만, 당 시 서양에서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원소들이 분리되고 인 정받던 상황임을 감안하면, 이렇게 하나하나 뜻을 살려 가 며 번역하는 방식이 과연 일관성을 유지하며 지속될 수 있 는 것인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심지어 이들 원소를 다루는 학문의 이름인 “chemistry”를 어떻게 번역할지에 대해서도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네덜란드어 쉬미(chemie) 를 음역한 “舎密(중국어 발음은 ‘셔미’)”가 한동안 쓰이다 가, 일본에서 “화학(化學)”, 즉 물질의 변화를 다루는 학문이라는 이름이 차츰 자리를 잡으면서 중국에서도 이것이 힘을 얻었다.

서수와 프라이어는 미국의 화학자 웰스(David Ames Wells, 1828–1898)가 쓴 화학 개론서 Principles and Applications of Chemistry (1858)를 번역하여 1871년

『화학감원(化學鑒原)』이라는 제목으로 강남제조국에서 번 역서를 출판하였다. 이 책은 몇 가지 점에서 중국 화학사 에서 하나의 분수령이 되었다. 우선 이 책의 출간 이후 chemistry의 번역어로 “화학”이 대세가 되었다. 서수와 프라이어, 그리고 서건인(Xu Jianyin 徐建寅) 등은 『化學分原』(1871), 『化學考質』(1883), 『化學須知』(1886), 『化學工藝』(1898) 등을 잇달아 펴내면서 화학이라는 이름을 중 국 전역에 각인하였다. 이는 아래에 살펴볼 원소 명명체계 와 함께 중국 근대 과학의 표준 용어로 자리 잡았다.


옛 이름과 새 이름, 그들을 아우르는 원칙

 

『화학감원』은 원소 이름 하나하나를 어떻게 번역할지 고 민하는 것을 넘어, 원소명 번역에 대한 일관성 있는 체계를 세우고자 했다. 프라이어와 서수는 “하나의 원소를 하나의 글자로 표현한다”는 원칙, 그리고 “부수를 통해 원소의 속성을 알 수 있도록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많은 이들이 고민 했던 문제, 즉 소리를 따서 쓸 것인지 뜻으로 옮길 것인지는 오히려 한 가지를 고집하지 않고 유연하게 대응하기로 했다. 이렇게 의역과 음차를 병행한 이유 중 하나는 한자문화 권에서 이미 원소 상태로 알려져 이름을 얻은 물질들이 여 럿 있었기 때문이다. 짐작할 수 있듯 대부분 금속원소인 데 금(金), 은(銀), 구리(銅), 철(鐵), 납(鉛: 연), 주석(錫), 그 리고 수은(汞: 홍) 등이다. 비금속원소 중에는 인(燐→磷), 탄소(炭→碳: 탄), 황(硫: 류) 등 역시 오래전부터 정제법이 알려져 있거나 요긴하게 쓰였던 원소들이 옛 이름을 유지 했다(인과 탄소의 부수가 조금씩 바뀐 것에 대해서는 아

래에서 설명하겠다).

하지만 대부분의 원소는 새로 이름을 지어주어야 했다. 뚜렷한 특징이 있는 것들은 그 특징이 드러나도록 뜻을 살 려 이름을 붙였지만, 그렇지 않은 원소들은 라틴어 또는 영어 이름에 대응하도록 소리를 따서 이름을 붙였다. 없 는 글자는 새로 만들었다. 다만 처음 보는 글자라도 소리 와 뜻을 짐작할 수 있어야 하기에 글자 안에 단서를 심어 두었다. 이들 새로운 원소 이름은 한자의 제자(制字) 원리 에 따르면 “형성자(形聲字)”, 즉 소리 부분과 뜻 부분을 합 쳐 만든 것에 속한다. 소리 부분은 라틴어 또는 영어로 된 원소 이름에 가까운 소리를 내는 한자를 빌려 사용했다. 뜻 부분은 원소의 성질 또는 상태를 유추할 수 있도록, 금 속원소는 金, 비금속(고체)원소는 石을 붙였다. 상온에서 기체 상태인 원소는 气 안에 소리 부분을 썼으며, 액체 상 태인 원소는 물을 뜻하는 부수(氵 또는 水)가 붙었다.

예를 들면 소듐(나트륨)은 금속원소이므로 金 변에 “나” 소 리에 가까운 內를 붙여서 “鈉(nà)”라고 쓴다. 비금속원소의 예로는 아이오딘을 石 변에 “딘”에 가까운 典을 붙여 “碘 (diǎn)”이라고 쓰는 것을 들 수 있다. 인과 탄소는 앞서 소개했 듯 친숙한 원소로서 옛 이름을 이어받았지만(燐과 炭), 이 원칙 에 따라 石 변을 추가하여 살짝 모양이 바뀌었다(磷과 碳). 기체 원소의 이름들도 이 원칙에 따라 새롭게 붙었다. 앞에서 소개했다시피 산소는 “養氣” 또는 “生氣”, 수소는 “輕氣” 또는 “水母氣”, 질소는 “淡氣” 등의 이름이 이미 꽤 널리 쓰이고 있었으므로, 서수와 프라이어도 그 뜻을 되 도록 살리되 궁극적으로는 한 글자로 다듬기로 했다. 이 들은 산소는 “氧(yǎng)”, 수소는 “氢(qīng)”, 질소는 “氮(dàn)”이라는 새로운 글자로 쓸 것을 제안했다. 염소도 기 체 상태에서 녹황색을 띤다는 특징을 살려 “氯(lǜ)”라고 표현했다. 그밖의 기체 원소는 헬륨을 “氦(hài)”로 쓰듯 대부분 소리를 따서 새로 만들었다.

상온에서 액체 상태인 원소는 두 가지밖에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 독특한 성질 때문에 예로부터 사람들의 관심 을 끌었다. 수은은 앞서 소개했듯 “汞(gǒng)”이라는 오래 된 이름이 있으므로 그것을 그대로 사용했고, 브로민은 자 극적인 냄새가 난다는 특징을 살려 “溴(xiù)”라고 라고 새 글자로 이름 지었다. 앞서 일본에서 브로민을 그 어원(악 취를 뜻하는 그리스어 bromos)을 살려 “슈소(臭素)”라고 의역했으므로 그것을 승계하면서 부수를 정돈한 것이다.

음차로 이름 붙였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차리기 어려운 원소들도 있다. 이는 여러 단계를 거쳐 원소 이름이 정착 되어 우리가 그것이 음차라는 것을 의식하기 어렵게 되었 기 때문이다. 규소(硅, guī)와 붕소(硼, péng)가 대표적인 예다. 규소는 영어 이름 “silicon”과는 별 관계가 없어 보 이므로 의역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은 네덜란드어 “keiaarde (부싯돌을 만드는 흙)”를 일본에서 소리와 뜻 을 살려 “珪土(케이토)”로 옮긴 것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일본의 영향력이 적었던 시기 출판된 『화학감원』의 초기 판본 중에는 영어 또는 라틴어 이름을 음차하여 “矽(xī)” 로 옮긴 것들도 있다. 한편 붕소는 그보다도 훨씬 오래전 에 정착된 이름이어서, 음차라기보다는 인이나 탄소처럼 전통적인 이름을 승계한 것에 가깝다고 보는 편이 타당할 수도 있다. 붕사(borax)를 가리키는 아랍어 “buraq” 또 는 페르시아어 “burah”가 “蓬砂”라는 이름으로 중국 문헌 에 등장한 것이 10세기의 일이고, 일본에서 “蓬砂” 또는 “硼砂”라는 표기가 정착된 것도 14세기 무렵이기 때문이다.


결국 선택의 문제: 중국식 원소 이름의 장점과 단점

 

서수와 프라이어가 『화학감원』에서 제안한 새 명명법은 서서히 지지층을 넓혀 갔다. 이는 강남제조국의 위상 덕 분이기도 했고, 명명법 자체에 내재된 장점 덕분이기도 했 다. 강남제조국 번역관은 지속적으로 서양 과학기술 서적 을 번역했으며, 이 책들은 중국 전역에 보급되었다. 독자 들은 강남제조국이 제안한 용어와 개념을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접하면서 그것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또한 서수와 프라이어의 명명법은 일관성과 확장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었다. “한 글자로 표현하되 부수를 보고 어떤 범주의 원소인지 알아볼 수 있도록 한다”는 일관된 원칙만 지키면, 새롭게 발견되는 원소들도 쉽게 이름을 붙 일 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20세기 들어 양자역학과 상대 성이론 등 새로운 과학의 시대가 열리고 이에 따라 전이금 속 쪽에서 수십 개의 새로운 원소가 발견되면서, 이 체계 의 확장성이 확연한 장점으로 드러났다.

1932년 중화민국 정부는 『화학명명원칙(化學命名原則)』을 공포하였는데, 이것은 서수와 프라이어의 명명법 에 바탕을 두었다. 한 글자 원칙과 “기체=气, 액체=水(氵), 고체 비금속=石, 금속=金”이라는 부수 원칙이 공식화된 것이다. 이후 중화인민공화국과 타이완 등 지역에 따른 작 은 차이들이 생겨나기도 했으나, 이 원칙은 현재까지도 잘 지켜지고 있다.

이렇게 매우 높은 내적 정합성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어 주기율표는 처음 보는 이들에게는 낯설게 다가온다. 듣도 보도 못한 생소한 신자(新字)를 만들어서까지 모든 원 소를 한 글자(한 음절)로 표현하겠다는 생각은 아집처럼 느 껴지기도 한다. 특히 한국인들은 일본식에 가깝게 일부 친 숙한 원소를 제외하고는 원소명을 외래어로 취급하는 데 익 숙해 있으므로 이런 방식을 더욱 생소하게 여기곤 한다.

하지만 이것은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 선택의 문제이고, 우리는 단지 우리가 했던 것과 다른 선택에 익숙하지 않을 뿐일지도 모른다. 중국식은 한자의 체계 안에 어떻게든 모 든 원소를 아우르고자 했다. 그 결과 형성자의 특징을 이용 하여 직관적으로 원소의 범주를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을 얻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백 개가 넘는 새로운 한자를 가 르치고 익혀야 하는 부담을 지게 되었다. 또한 중국어 문장 안에서는 한 글자 원소명의 간결함과 일관성이 장점으로서 도드라지지만, 국제 학계와 교류할 경우 결국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원소명을 다시 익혀야 하는 부담도 피할 수 없다.

이에 비해 일본식(한국식) 명명법은 쉽게 의미를 옮기기 힘든 것들은 외래어로 처리함으로써 신조어를 만드는 부 담을 줄였다. 그러나 외래어도 사실은 직관적으로 의미를 알 수 없다는 점에서는 신조어와 별로 다를 게 없다. “나이 오븀”이나 “铌(ní)”나, 실제로 그것을 다루어 보지 않은 이에게는 아무런 기의(記意)를 소환하지 못하는 생소한 기표 (記標)임은 마찬가지가 아닌가? 더욱이 “원어 발음” 또는 “선진국 발음”에 가깝게 외래어로 받아들이는 것이 그리 간 단한 문제도 아니다. 무엇을 “국제화”의 기준으로 삼을 것 인가? 한국의 사례를 생각해 보자. 세계에서 가장 앞선 독 일식 이름인 “나트륨”과 “칼륨” 등으로 통일한 지 한 세기 만에, 다시 세계에서 가장 앞선 미국식 이름인 “소듐”과 “포타슘”으로 바꾸었다면, 다음 세기에 우리는 이 원소들 을 무엇이라고 부르고 있을지 누가 단언할 수 있는가? (다 음 연재에 계속)


 

1. Chang, Hao. “What’s in a name: a comparison of Chinese and Japanese ap-proaches to the translation of chemical elements.” ChemTexts 4:12. 2018.

2. Gugler, Stefan, Cui, Y. and Dral, P.O. “Architecture of Chinese chemical element names.”ChemTexts 12:11. 2026.

3. Wright, David. “John Fryer and the Shanghai Polytechnic: Making Space for Science in Nineteenth-Century China.” The British Journal for the His-tory of Science 29:1. 1996.

4. Yang, Lifang. and Li, C. “John Fryer’s Contribution to Standardization of Translated Scientific Terminology in Modern China.” Studies in Literature and Language 16:1. 2018.

5. 岳岩,  楊艦.“中日近代化學翻譯之比較:從《舍密開宗》和《化學鑒原》談起.”

澳門理工學報 19:2. 2016.





김태호 Tae-Ho Kim

 

•  서울대학교 화학과 학사(1994.3–1999.2)

•  서울대학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석사 (1999.3–2001.2, 지도교수: 김영식)

•  서울대학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박사 (2001.3–2009.8, 지도교수: 홍성욱)

•  싱가포르국립대학 박사후 연구원(2009.9–2010.8, 지도교수: Gregory Clancey)

•  콜럼비아대학교 박사후 연구원(2010.9–2011.8, 지도교수: Charles Armstrong)

•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역사문화원 연구교수 (2011.9–2014.8)

•  한양대학교 비교역사문화연구소 HK교수 (2014.9–2016.8)

•  전북대학교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 조교수 (2016.9–2024.8)

•  전북대학교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 부교수 (2024.9–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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