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각 없는 환각제는 약이 된다(2025년 9월호)
- 洪均 梁
- 9월 1일
- 2분 분량

우리 몸에는 침묵의 장기라 불리는 것들이 있다. 종양 을 비롯해 손상이 발생하고 있는지 알아채기 어렵고 증상이 확인된 상황에서는 이미 골든타임을 놓쳐버린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침묵만큼이나 두려운, 화학자들에게는 친숙한 단어인 비가역적 장기들도 있다. 흔히 신 장은 회복되지 않아 투석이 필요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대안없이 반복적인 인고의 대처로 상태를 유지하도록 노 력해야 한다. 허혈로 손상되어 섬유화가 진행되어 버린 심장의 근육이나 대부분 지질로 이루어져 재생 능력이 매우 낮은 연성 장기인 뇌 역시 같은 상황이다. 뇌나 심장은 공통적으로 인간의 존재와 자아를 규정하고 생명의 유무를 판별하는 기준인 만큼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장기인 셈 이데, 뇌와 신경의 연결을 복구할 수 있는 약이 있다면 어 떨까.
신경은 의외로 노력한다

인체를 구성함에 있어 뼈가 튼튼한 기초공사와 골조, 그리고 덧대인 근육을 시멘트라 생각한다면 기능적인 측면에서 중요한 두 요소는 혈관과 신경으로 대표되는 순환 계와 신경계다. 필요한 영양과 산소를 실어나르며 노폐물을 버리기 위한 혈관은 인체의 도로이자 유통망으로 비견 될 수 있다. 주위의 정보를 받아들여 뇌로 전달하고 대응 하는 동작 명령을 전파하는 신경은 통신망에 해당한다. 현대 사회에서 정보통신의 중요성이 나날이 커져가는 만 큼 정보 전달 없이 단순히 가동만 가능한 인체는 우리가 기대하는 <사람>으로의 구분이 다소 모호해진다. 신경세포에 문제가 발생하면 감각이 완전히 소실되거나 어떠한 운동도 하지 못하는 난처한 상황에 빠진다. 루페를 들여다보며 끊어진 신경을 연결하는 수술마저 가능 한 기술력이 있으나 아직도 완전히 해석되지 못할 만큼 너무나도 복잡한 신경들의 연결을 하나씩 모두 정상화할 능력이 우리에겐 없다. 그리고 이 어려운 작업은 의외로 당사자인 신경세포들이 보완해 왔다.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은 뇌가 학습이나 기억, 또는 손상에 반응해 신경 연결을 재구성하고 변화시키는 능력을 뜻한다. 신경 세포간 새로운 연결을 만드는 발아 (sprouting)나 기존의 연결을 끊고 경로를 재설정하는 재지정(rerouting)를 통해 우리가 모르는 새 신경계는 80여년 이상의 생애 동안 정보를 안전하게 전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중이다. 물질에 대한 이해를 통해 세상 과 인체를 제어해 온 경험을 바탕으로 할 때, 신경가소성을 제어할 수 있는 화학 분자를 찾아낸다면 신경 손상과 장애 역시 더 이상 비가역적인 재난이 아니다.
모든 약은 독이다

신경가소성을 위해서는 분명 신경세포에 어떠한 신호 나 자극이 가해져야 한다. 우리는 화학 분자의 인식을 통해 세포에 작동 신호를 주는 시작점을 수용체(receptor) 라 부른다. 여기 작용하는 특정한 수용체는 5-HT2A라는 이름을 갖는데, 5번 탄소 자리에 수산화(-OH) 작용기가 추가된 트립타민(tryptamine)이 결합한다는 의미에서 5-HT가 된다. 여전히 다소 낯선 물질이지만 관용적으로 사용되는 이름을 꺼내 본다면 갑작스러운 깨달음이 다가 온다. 행복 호르몬이라는 낭만적인 별명을 갖는 세로토닌 (serotonin)이 5-HT의 또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세로토닌이 다량 분비되어 행복하면 뇌-신경 건강이 좋을까? 행복감이 나쁜 이유는 없겠지만 세로토닌만으로는 우리가 기대하는 신경가소성이 온전히 발현되지 못 한다. 그 이유는 오랜 기간 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었지만, 최근 확인된 결과에 따르면 대부분의 5-HT2A 수용체는 일반적인 수용체들과 달리 신경세포 내부에 다량 분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세로토닌은 친수성이 뛰어난 물질인 만큼 세포를 간단히 투과해 들어가기 어렵다.
세포의 겉면을 이루는 인지질(phospholipid) 이중막이 소수성 장벽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오히려 탄소와 수소 위주로 이루어져 물을 기피하는 분자 일수록 더 간단히 투과하게 되는데 대부분의 향정신성 물 질들이 여기 해당한다. 세로토닌과 유사한 형태를 갖는 다이메틸트립타민(DMT)이나 환각을 유발하는 유명한 물질인 리세르그산 다이에틸아마이드(LSD)가 대표적이다. 환각은 시각을 비롯한 감각 정보의 비정상적인 활성화에 해당하는 만큼, 신경 활성을 강렬하게 자극하며 그 과정에서 신경가소성이 발현된다. 단순히 향정신성 물질을 손상된 신경 재생에 적용하는 치료는 이미 활용되고 있다. 물론 의도치 않은 부작용인 환각과 의존성으로 인해 엄격한 관리와 정밀한 용량의 투여가 필수적인데, 만약 환각과 의존성이 없는 환각제가 탄생한다면 모든 고민이 사라질 수 있다.
환각 없는 환각제와 원자 연금술
만들던 작품이 완성되가던 와중 중대한 실수를 발견한 다면 어떨까. 간단히 수정할 수 있다면 문제없겠지만, 수 정이 어렵다면 완전히 분해하거나 처음부터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는 곤란한 선택지가 강요된다. 납을 금으로 변화시키려는 시도로 상징되는 연금술만큼이나 화학 분자 에서 단 하나의 원자 위치를 변경하는 것은 꿈과 같은 작업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다양한 촉매와 유기화학 반응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자리의 탄소를 질소로 바꿔 넣는 등 원자 연금술이라는 거창한 명칭을 갖는 작업들이 보고되기 시작했다.

특히 인체와 상호작용하는 물질의 경우 입체화학만으로 입덧 완화와 기형 유발이 변모하는 탈리도마이드 (Thalidomide)의 경우처럼 작은 차이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거대한 결과를 만든다. 자연스레 가장 간단한 향 정신 분자인 DMT를 대상으로 질소와 탄소의 위치를 바 꾸는 시도가 이루어졌고, 흥미롭게도 신경가소는 유발하지만 환각이나 의존성은 사라진 isoDMT라는 구조가 발견된다.
가장 강력한 향정신성 물질 중 하나이자 탁월한 신경가 소성을 보이는 LSD에 대해서도 최근 성공적인 환각성 삭제가 이루어졌다. 이번에도 하나의 질소를 탄소로 교체해 JRT라 불리는 물질을 합성한 것이다. 질소는 수소 결합 (hydrogen bonding)을 만들 수 있는 대표적인 원소이며 탄소는 그렇지 못하다. 원소의 조절은 2-HT2A 수용체 에 대한 상호작용을 변화시켜 환각 효과없이 신경가소성만을 이끌어 낸다. 과거와 달리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수용체와 화학 물질의 결합을 미리 예측할 수 있어 기약 없는 도전이 아닌 가장 화학적인 방식으로 생명 반응을 조절함이 가능해졌다.
도전은 계속해서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콜로라도강 두꺼비가 내분비선에서 합성해 배출하는 5-MeO-DMT는 향정신성과 신경가소성을 보이는 물질이며, 이번에도 하나의 플루오린F을 추가하고 일부 구조를 교묘하게 조정해 부작용 없이 의료적 효과만을 남기는 데 성공했다. 낮 은 가치의 물질로 금처럼 귀한 물질을 만들어내려던 연금 술사들의 갈망은 화려하게 꽃피운 화학을 통해 현대에 재 현되었다.
혹시 단적으로 표현한 <환각 없는 환각제>라는 용어가 다소 모순적으로 여겨질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본질이 제외된 채 관념만 남은 물질들 속에 살아가고 있다. 예를 들어 무알코올 맥주라거나 슈가프리 초콜릿과 같은 뜯어 볼수록 오묘한 대상들 마냥, 환각 없는 환각제는 현실이 되고 있으며 그 결과는 의미의 상실이 아닌 기능의 완성 일 것이다.

장홍제 Hongje Jang
• KAIST 화학과, 학사(2004.3-2008.2)
• KAIST 화학과, 박사(2008.3-2013.8, 지도교수 : 한상우)
• 서울대학교 화학과 박사후 연구원(2013.9 -2015.1, 지도교수 : 민달희)
• Ge rgia Institute f Techn l gy, Department f Chemistry and Bi chemistry 박사후 연구원 (2015.1-2016.1, 지도교수 : M stafa A. El-Sayed)
• 광운대학교 화학과 부교수(2016.3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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