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원소들
화학칼럼 · 화학사 돌아보기 · Part. 32

최정모 | 부산대학교 화학과 부교수, jmchoi@pusan.ac.kr
화학의 역사를 훑는 한 가지 방법은 원소 발견의 역사를 훑는 것입니다.1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이 원소인가는 매우 명백한 문제로 보입니다. 현대 화학의 원자 및 분자 개념을 활용하면 홑원소물질과 화합물을 쉽게 정의할 수 있죠. 하지만 미지의 물질이 주어졌을 때 실험을 통해 그 물질이 원소인지 아닌지 밝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원소 X는 과학자 아무개에 의해 몇 년에 발견되었다”라는 표현을 자주 마주치지만, 사실 19세기 말까지도 무엇이 새로운 원소인지 증명하는 것은 그리 명백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원소 발견의 역사를 간단히 논의하고, 19세기 말에 일어난 사건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원소의 발견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살펴보겠습니다.2
라부아지에는 원소의 본질에 관한 철학적 논의를 피하기 위해 원소를 “실험적으로 더 이상 분해할 수 없는 가장 단순한 물질”이라고 간단하게 정의했습니다. 하지만 이걸로 충분할까요? 어떤 물질이 더 이상 분해되지 않았다는 것은 분해가 정말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그저 현재의 기술로 분해가 불가능하다는 의미일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소듐의 산화물인 소다는 라부아지에 당시의 기술로 더 이상 분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소다를 원소로 보아야겠지만 라부아지에는 자신의 정의와는 모순되게, 소다가 원소가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소다의 성질이 다른 금속 산화물의 성질과 유사하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더욱 흥미로운 예가 염소(chlorine)입니다. 라부아지에는 본인의 산 이론에 기반하여 염소가 원소가 아니라 무리움(murium)이라는 원소의 산화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3 당시 실험으로 소다나 염소는 더 이상 분해할 수 없었지만 라부아지에는 그저 아직 분해되지 않는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죠. 이와 같이, 화학자들은 무엇이 원소인가를 결정할 때 순수하게 실험에만 의존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이론 체계에 들어맞는 물질을 원소로 인정했습니다.
라부아지에가 원소 목록을 제시한 이래, 화학자들은 그 원소 목록을 확장하고 수정하면서 원소를 찾아나갔습니다. 실험으로 원소를 찾기 위해서는 우선 새로운 물질을 최대한 순수한 상태로 얻어야 했습니다. 광석이나 혼합물을 여러 화학적 방법으로 분별하여 반복 정제해도 일정한 성질을 유지하도록 만드는 것이죠. 이후 그것이 기존 물질과는 다른 성질을 가지고 있고, 가능한 모든 실험적 방법으로 더 이상 분해되지 않으며, 화합물의 분석과 재합성에서 동일한 성질을 띠고 있음이 증명될 때 새로운 원소로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논란의 여지 없이 원소로 인정받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전기 분해가 등장하면서 새로운 원소들이 원소 목록에 추가되었습니다. 데이비(Humphry Davy, 1778-1829) 는 1807년 소다와 칼리(포타슘 산화물)에 전기를 흘려주고 각각 소듐과 포타슘 금속을 얻어냈습니다. 화학자들은 이 결과에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원소로 바로 인정받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데이비가 자신의 발견을 발표하고 몇 달이 지나지 않아, 게이뤼삭(Joseph Louis Gay-Lussac, 1778-1850)과 테나르(Louis Jacques Thénard, 1777-1857)는 별개의 실험을 수행하여 데이비가 얻은 소듐과 포타슘은 사실 소다와 칼리의 수소화물이고 소다와 칼리가 원소라는 주장을 내놓았습니다. 이 주장 역시 많은 화학자들의 지지를 받았죠. 데이비가 새로 발견된 물질들이 알려진 금속 원소들과 공유하는 여러 성질들에 기반해 이들이 새로운 금속 원소라고 주장한 것과 마찬가지로, 반대 진영에서는 이 물질들이 일반적인 금속 원소들과 공유하지 않는 성질에 주목하여 반대 논증을 펼쳤습니다. 몇 년간의 논쟁을 거친 끝에야 마침내 소듐과 포타슘은 원소로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4
데이비는 소듐과 포타슘을 따로 분리해낼 수 있었지만, 모든 경우에 분리가 가능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특히 금속의 경우, 꼭 순수한 홑원소물질의 형태로 얻어내지 않더라도 특정 기준을 통과하면 새로운 원소로 인정받기도 했습니다. 화학자들은 과학사학자 헤이만스(Sarah Hijmans) 가 “특성 반응”이라 부르는 일련의 반응을 수행하여 주어진 금속 산화물이 어떤 식으로 거동하는지 살펴보았고, 알려진 금속 산화물과 다른 거동을 보이면 이를 새로운 금속 산화물로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금속 “원소”의 발견으로 간주했죠. 베르셀리우스가 1804년 세륨(cerium)의 발견을 보고한 것이 이런 방식이었습니다. 세륨 금속은 1875년까지 순수한 형태로 얻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5
1860년 혜성처럼 등장한 분광법은 원소를 검출하는 새로운 길을 열었습니다.6 원소가 내는 고유한 스펙트럼을 보면 샘플에 새로운 원소가 들어 있는지 아닌지 금방 알 수 있었죠. 분광법을 발표한 분젠과 키르히호프는 “스펙트럼 반응(spectral reaction)”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이것이 특성 반응처럼 원소를 찾는 데 쓰일 수 있음을 강조하였습니다.7 이 방법을 이용하여 세슘(1860년), 루비듐(1861 년), 탈륨(1861년), 인듐(1863년)이 차례로 발견되었습니다. 탈륨의 발견에 관하여는 한 가지 주목할 점이 있습니다. 바로 분광법으로 탈륨을 처음 “본” 사람과 화학적으로 탈륨을 순수하게 처음 분리해낸 사람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누가 탈륨을 발견한 것인가를 두고 치열하게 싸웠습니다.8
분광기는 실험실 내의 원소뿐 아니라 하늘에 있는 원소를 찾는 데도 활용될 수 있었습니다. 1868년 천문학자들은 태양의 빛을 분광기로 이해해 보고자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천문학자 장센(Pierre Janssen, 1824-1907)과 로키어(Norman Lockyer, 1836-1920)는 각각 독립적으로 태양의 홍염을 분광기로 분석하여 그때까지 알려져 있지 않던 노란색 선을 발견하였습니다. 그 근처에 있는 소듐의 강한 신호를 D1과 D2 선으로 부르고 있었기에 이 선은 D3 라는 이름을 받았습니다[그림 1]. 그 존재는 다른 천문학자들도 쉽게 확인할 수 있었고, 이내 태양 스펙트럼의 주요 특징으로 여겨졌습니다. 처음에 발견자들은 이 선이 새로운 원소에서 왔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로키어는 수소의 선이 무언가 왜곡되어 이렇게 나타난 것이라고 생각했죠.

그림 1. 1883년 기록된 태양의 방출 스펙트럼의 일부. Kragh (2009)에서 재인용.
로키어는 이 D3 선이 어디서 왔는지 결정하기 위해 화학자 프랭클랜드(Edward Frankland, 1825-1899)와 협업하여 수소의 스펙트럼을 면밀히 분석하였습니다. 그들은 수소에서는 비슷한 선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그제야 로키어는 D3 선이 어쩌면 아직 발견되지 않은 미지의 원소에서 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는 섣불리 그런 생각을 발표하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에 로키어가 쓴 논문이나 강의 자료를 보면 “D3 원소”와 같이 중립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로키어와 프랭클랜드는 이 원소에 태양(그리스어 helios)에서 온 헬륨(helium)이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그마저도 직접 발표하지 않았고, 1871년 동료 과학자가 이들을 인용하며 그 이름을 처음으로 발표하였습니다.
새로운 원소의 발견으로 보이는 이 사건을 두고 앞서 살펴본 탈륨의 사례가 소환됩니다. 비판자들은 분광학적 증거만 가지고 새로운 원소를 주장해서는 안 되며, 화학적으로 실제 그 물질을 분리하여 확인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억지가 아니었습니다. 당시에는 스펙트럼을 잘못 해석하여 새로운 원소를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사례가 심심치 않게 있었습니다. 이렇게 오류로 밝혀진 “새로운” 원소들은 최소한 여섯 종류였고, 발표되지 않은 사례들까지 합치면 더 많은 수였을 것으로 보입니다.9 그러면서 홑원소물질을 순수하게 얻어내는 것이 중요한 기준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습니다. 당연히 헬륨은 이렇게 할 수 없었고, 화학자들은 헬륨을 “의심스러운 원소”로 분류해 두고 판단을 보류했습니다. 멘델레예프는 심지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모든 가능성은 헬륨 선이 그저, 우리의 실험에서는 실현되지 않는 그러한 온도, 압력, 중력 조건에서, 오랫동안 알려져 있던 원소에서 기인했다는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10
그러나 태양 스펙트럼에서는 매우 뚜렷한 신호가 보였기 때문에 천문학자들은 계속해서 “D3 선”을 언급하였고, 그 기원을 설명하기 위해 “헬륨”이라는 이름이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게다가 태양 스펙트럼에서 기존의 원소들로 설명할 수 없는 선들이 계속 발견되자, 이들 역시 “헬륨”에서 기인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가설까지 등장했습니다. 1876 년 미국 화학회의 첫 회장으로 취임한 드레이퍼(John William Draper, 1811-1882)는 취임 연설에서 태양에서만 보이는 “헬륨”이 있다면 다른 별들도 각자의 원소를 가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흥미로운 지적을 하기도 했습니다.11
시간이 흘러 1890년대가 되었습니다. 1892년 레일리 (Lord Rayleigh, 1842-1919)는 대기에서 산소를 제거한 “물리적” 질소와 화학 반응을 통해 생성된 “화학적” 질소의 밀도가 미세하게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습니다. 이 화학 실험을 제안한 램지(William Ramsay, 1852-1916)는 “화학적” 질소에 아민 등의 불순물이 섞여서 그럴 수 있다고 해석했습니다. 레일리와 램지는 다양한 실험을 통해 여러 가능성을 지워 나갔고, 1894년 초가 되어 이것이 “물리적” 질소에 질소 외 새로운 물질이 섞여 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됩니다. 이들은 서로 상황을 보고하면서 각자 대기에서 산소뿐 아니라 질소, 이산화탄소, 물 등 알려져 있던 대기의 구성 성분들을 제거하는 실험을 수행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894년 8월, 이들은 함께 새로운 기체의 분리를 발표하였습니다. 그 이름은 아르곤 (argon)으로 지어졌죠.
처음에는 질소의 삼원자분자 N3를 잘못 해석한 것 아니냐는 의심의 목소리도 있었지만,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나지 않아 분광 분석을 통해 레일리-램지의 기체가 질소와는 다른 스펙트럼을 나타낸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그리고 이 기체가 단원자분자라는 사실도 비열 측정으로부터 증명되었습니다.12 그 결과 그해가 가기 전에 여러 과학자들이 아르곤의 발견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켈빈은 1894년 말 왕립학회의 연설에서 아르곤의 발견이 “지난해 최고의 과학적 사건”이었다고 칭송했습니다.
이듬해, 램지는 땅에서 캐낸 우라늄 광석에 갇혀 있던 기체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혹시 그 안에서 아르곤을 발견할 수 있을까 하여 해당 샘플을 받아 분석하였습니다. 예상대로 아르곤이 존재했지만, 샘플 안에는 질소도 아니고 아르곤도 아닌 새로운 기체가 소량 존재했습니다. 램지는 분광기로 이 기체를 분석했고, 강한 노란색 선을 발견했습니다. 처음에는 소듐이라 생각했지만, 이내 그것이 “헬륨”의 D3 선과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램지는 1895년 3월 25일, 헬륨을 지상에서 발견했음을 왕립학회와 동료 과학자들에게 알렸습니다.
아르곤과 헬륨의 문제는 이들이 화학적으로 활성을 갖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당시까지 화학자들이 알고 있던 원소들은 어떤 형태로든 화합물을 이루었기 때문에 화학 반응을 적절히 활용하여 원소를 분리하고 정제할 수 있었지만, 아르곤과 헬륨은 그럴 수 없었죠. 따라서 최종적으로 얻어낸 샘플이 단일 물질인지 여러 물질의 혼합물인지 판단하기 어려웠습니다. 실제로 헬륨의 스펙트럼이 두 가지 묶음의 선 스펙트럼으로 보인다는 것13이 발견된 후 이 “헬륨”은 사실 두 가지 물질의 혼합물14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고, 이 주장은 1900년경까지도 영향력을 발휘했습니다.
한편, 지난 글에서 살펴본 것처럼 1898년 퀴리는 방사선을 이용하여 폴로늄과 라듐이라는 “새로운 원소”를 찾아냈습니다. 여기서 지금까지의 원소 발견과는 또 다른 패턴이 나타납니다. 퀴리는 폴로늄과 라듐을 순수한 홑원소물질로 얻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방사선 외에 이들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라듐의 경우에는 그나마 분광 분석을 통해 독특한 선 스펙트럼을 하나 찾을 수 있었지만, 폴로늄의 경우에는 샘플의 양이 수 나노그램 수준으로 너무 적어서 의미 있는 스펙트럼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퀴리가 이 발견을 발표하고도 새로운 원소임을 인정받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이후 퀴리는 정제를 통해 순물질을 다량으로 얻고 원자량과 스펙트럼을 결정하는 고통스러운 연구를 진행합니다.15 갖은 노력 끝에 이 모든 조건을 만족시킬 수 있었고, 마침내 폴로늄과 라듐의 존재가 확정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과 같이 1890년대에는 원소를 규정하는 새로운 개념과 기법이 여럿 등장하였습니다. 하지만 화학자들 중에는 이러한 변화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멘델레예프입니다. 멘델레예프는 분광법의 가치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헬륨과 아르곤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방사성에 대해서도 중요한 현상이 아니라 개별 원소가 가지는 특성 중 하나에 불과하다며 그 가치를 낮게 보았습니다. 그는 전통적인 방법으로 원소를 발견해야 한다고 믿었고, 모든 원소는 주기율표 안에 질서정연하게 정리되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멘델레예프의 주기율표는 원자가를 기준으로 정렬되어 있었기에, 반응성이 없어 원자가를 측정할 수 없는 비활성 기체는 들어갈 곳이 없었죠. 따라서 램지나 퀴리는 이러한 반대자들을 설득하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할애해야 했습니다. 우리는 “어떤 원소가 X년에 발견되었다”라는 표현을 자주 접하지만, 실제로 그 존재가 논란의 여지 없이 받아들여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참고문헌
1. 피터 워더스, 『원소의 이름』, 이충호 옮김, 윌북 (2021).
2. 이번 호의 내용은 다음 글들에서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Sarah N. Hijmans, From Lavoisier to Mendeleev: The Identification of Chemical Elements in Practice Between 1770 and 1870, PhD dissertation, Université Paris Cité, 2023; Helge Kragh, “The Solar Element: A Reconsideration of Helium’s Early History,” Annals of Science 66 (2), 157-182 (2009); Theodore Arabatzis and Kostas Gavroglu, “From Discrepancy to Discovery: How Argon Became an Element,” in The Philosophy of Historical Case Studies, eds. T. Sauer and R. Scholl (Springer International Publishing Switzerland, 2016); Annette Lykknes, “A Chemistry of the Imponderable? Radium, Polonium and the Discovery of Elements in the Era of Radioactivity,” Discovering the Elements: No Simple Stories, eds. Brigitte Van Tiggelen and Annette Lykknes (World Scientific Publishing Company, 2026).
3. “화학사 돌아보기 13. 원자설의 여파,” 『화학세계』 2023년 7월호 참조.
4. Robert Siegfried, “The Discovery of Potassium and Sodium, and the Problem of the Chemical Elements,” Isis 54, 247-258 (1963).
5. Hijmans, 앞의 책, chapter 5.
6. “화학사 돌아보기 23. 원자는 실재하는가,” 『화학세계』 2025년 2월호 참조.
7. G. Kirchhoff and R. Bunsen, “Chemische Analyse durch Spectralbeobachtungen,” Annalen der Physik und Chemie 110 (6), 161-189 (1860).
8. Frank A. J. L. James, “Of ‘Medals and Muddles’ the context of the discovery of Thallium: William Crookes's early spectro-chemical work,” Notes Rec. R. Soc. Lond. 39, 65-90 (1984).
9. Frank A. J. L. James, “The Practical Problems of ‘New’ Experimental Science: Spectro-Chemistry and the Search for Hitherto Unknown Chemical Elements in Britain 1860-1869,” The British Journal for the History of Science 21 (2), 181-194 (1988).
10. Kragh (2009), 171쪽에서 재인용.
11. Kragh (2009), 168쪽.
12. 일정 압력 비열과 일정 부피 비열의 비율이 단원자분자 이상 기체에서 기대되는 값인 5/3에 가까웠습니다.
13. 이는 오늘날 단일항(singlet)과 삼중항(triplet)으로 부르는 두 가지 다른 전자 상태에서 기인합니다.
14. 이들에게는 헬륨과 “파헬륨(parhelium)”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15. 다만 흔히 위인전에서 말하듯 퀴리 혼자서, 혹은 퀴리 부부만 이 작업을 한 것은 아니었고 여러 사람이 함께 팀으로 작업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최정모 Jeong-Mo Choi
한국과학기술원 화학과, 학사(2003. 3 - 2011.8)
Harvard University 과학사학과, 석사(2011. 9– 2015. 5, 지도교수: Naomi Oreskes)
Harvard University 화학 및 화학생물학과, 박사 (2011.9 –2016.5, 지도교수: Eugene I. Shakhnovich)
Washington University in St. Louis, 박사후 연구원 (2016.8– 2019. 4, 지도교수: Rohit V. Pappu)
한국과학기술원 자연과학연구소, 연구조교수(2019. 6– 2020. 8)
부산대학교 화학과, 조교수(2020.9- 2024.8), 부교수(2024.9- 현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