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물, 탄산수, 중조(2026년 4월호)
- 4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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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물, 탄산수, 중조
김태호 | 전북대학교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 부교수, taehokim@jbnu.ac.kr
들어가며
산과 염기에 대한 이론이 확립되기 한참 전에도 인류는 여러 가지 산과 염기의 존재를 깨닫고 그 활용법을 익혔다. 식품을 보존하고, 신체나 도구를 깨끗이 하며, 의약품을 만들고, 금속이나 유기물을 녹이고, 유리나 도자기와 같은 귀한 기물을 만드는 데 첨가하고, 가죽을 무두질하며 염색과 같은 화학 반응을 촉진하는 등 산과 염기의 쓰임새는 무궁무진했다. 이 요긴한 물질을 만들고 보관하고 사용하는 방법에 대한 지식은 연금술사나 약사들의 살림 밑천이 되었고 귀중한 비밀로 조심스럽게 전승되었다.
염기성 수용액을 만드는 흔한 방법은 고체 상태의 염(salt, 鹽)을 물에 녹이는 것이었다. 사실 이 문장은 동어반복이다. 염기(base, 鹽基)라는 말이 “산과 중화반응을 일으켜 염과 물을 만드는 받침[基]이 되는 물질”이라는 뜻으로 고안된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염이나 염기 같은 개념들이 화학적으로 명확이 정의되지 않았던 시절이기 때문에, 당시에는 “A라는 salt를 물에 녹이면 B 용액을 얻을 수 있다”는 지식이 전승되었으리라는 정도로 양해하고 넘어가도록 하자. 이 가운데 염기성 용액을 만드는 데 주로 사용된 염들을 얻는 데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었는데, 땅에서 광물을 캐는 것과 식물을 태워 재를 얻는 것이었다.
잿물과 “칼리야”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에서는 염수(鹽水), 함수(鹹水), 검수(鹼水), 노수(滷水) 등 여러 가지 이름의 염기성 용액들이 알려져 왔는데, 이와 더불어 회즙(灰汁), 즉 잿물도 여러 용도로 두루 사용되었다. 잿물은 보통 식물을 태워 얻은 재를 물에 담가 두었다가 맑은 물만 걸러내어 사용한다. 주요 유효성분은 포타슘과 소듐의 여러 가지 탄산염이다. 식물의 체내에는 이온 형태의 포타슘이 다량 함유되어 있는데, 옛사람들은 이것을 경험으로 알아내어 이용한 것이다.
아랍어를 공용어로 쓰던 이슬람 문화권에서도 잿물은 쉽게 얻을 수 있는 염기성 물질로 요긴하게 이용되었다. 아랍어 “칼리야(al-qalyah)”는 태워 정제한 재를 가리키는데, 이 이름은 뒷날 유럽으로 다른 연금술 지식들과 함께 전파되어 “알칼리(alkali)”라는 말의 어원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이역에서 들어온 어려운 이름보다는 그냥 “재” 또는 “잿물”에 해당하는 자기네 말로 된 이름을 편하게 사용했다. 예컨대 영어를 쓰는 지역에서는 “냄비(pot)에 넣고 태운 재(ash)”라는 뜻으로 “포타시(potash)”라는 이름이 쓰였다. 먼 옛날 바다였던 지역에는 해저에 침전되었던 포타시 성분이 결정을 이루어 광물로 발견되기도 했고, 이것은 가루 내어 비료로 이용하였다.
재와 돌, 그리고 탄산수
이처럼 광물의 형태로 땅에서 캐어 쓰는 염도 여러 종류가 알려져 있었다. 서양에서 “나트론(natron)”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광물도 그 중 하나다. 나트론은 고대 그리스에서는 “니트론(nitron)”이라고도 불렸고, 이는 초석의 원료인 “니터(nitre)”와도 이름이 비슷하여 종종 혼동을 일으키지만, 둘은 다른 물질이다. 나트론은 중동 지역의 염호(鹽湖) 주변에서 흰 돌멩이와 같은 광물 형태로 발견되었다. 그 주성분은 소듐의 탄산염, 그 중에서도 주로 탄산소듐(Na2CO3)으로 알려져 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나트론을 정제하여 일종의 비누를 만들어 미라 제작 전 시신을 깨끗이 하는 데에 사용했다.
그런데 포타시나 칼리야를 만드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도 나트론과 같은 물질을 얻을 수 있었다. 다만 어떤 식물을 태워 재를 얻느냐에 따라 성분이 조금씩 달라진다. 함초(鹹草, saltwort)란 바닷가나 갯벌에서 자라는 식물의 통칭으로, Salsola 속 또는 Salicornia 속 등을 포괄한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다른 식물에 비해 염분이 높은 환경에서도 생존할 수 있고, 체내에 소듐 이온도 높다. 중동 지방에서는 함초를 “수와드(suwwād)”라고 불렀고, 이 이름은 함초를 태워 탄산소듐을 얻는 기술과 함께 유럽으로 전해졌다. 해안 지방에서는 함초 외에도 미역이나 다시마를 태워 만든 재를 활용하기도 했다.

수와드라는 이름은 차츰 변하여 “소다(soda)” 또는 비슷한 발음으로 유럽 각지에 정착되었다. 근대 초기까지 소다는 함초 뿐 아니라 식물의 재로부터 얻을 수 있는 여러 종류의 “알칼리염”을 두루 아우르는 이름으로 쓰였다. 이러한 용어의 혼란은 알칼리라는 말에서도 드러난다. 알칼리는 원래 포타시와 같은 물질을 다른 언어로 부른 이름이었지만, 유럽에서는 어느새 염기성 수용액을 만드는 염들을 통칭하는 이름이 되었다. 즉 적어도 17세기 후반까지는 소다와 포타시 등의 이름이 엄밀하게 구별되지 않은 채 섞여 쓰였다.
다만 물질에 대한 지식이 축적되면서 18세기 초 무렵 적어도 영국에서는 “소다”라고 하면 오늘날의 탄산소듐을 가리키는 것으로 의미가 좁아졌다. 꽤 많은 예외와 넓은 회색지대가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소다는 나트론과 같은 광물 유래 알칼리염이고 포타시는 잿물과 같은 식물 유래 알칼리염이라는 느슨한 구분도 자리잡았다.
한편 17~18세기 유럽에서 기체화학이 발달하면서, 그 무게 때문에 “고정된 공기(fixed air)” 등의 이름으로 불리던 오늘날의 이산화탄소(CO₂)와 탄산염의 수용액 사이에 깊은 관계가 있다는 것이 차츰 알려졌다. 특히 탄산소듐이나 중탄산소듐(NaHCO3) 고체를 물에 녹이고 적당히 가미하면 이산화탄소 기포를 방출하여 톡 쏘는 맛을 내는 음료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알려졌고, 이렇게 만든 음료들은 곧 “소다수(soda water)”라고 불리게 되었다.
전기화학이 비로소 찾아낸 알칼리의 본질
이렇게 여러 가지 염의 성질에 대해 더 많은 지식이 축적되었지만 소다를 소다로, 나트론을 나트론으로, 포타시를 포타시로, 알칼리를 알칼리로 만드는 근본 물질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일은 19세기 초가 되어서야 가능해졌다. 오늘날의 용어로 표현하자면, 이온화 경향이 매우 높은 금속의 이온을 환원하여 원소 상태로 분리하는 기술이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근대적 원소 이론의 효시로 평가받는 라부아지에의 Traité Élémentaire de Chimie (1789)에서는 33가지 기본 물질(substances simples)을 제시하고 그것들을 기체, 금속, 비금속, 흙 등 네 가지 범주로 나누었다. 그 가운데 흙(earth)의 범주에서는 석회(lime: CaO 또는 Ca(OH)2), 마그네시아(magnesia: MgO), 중정석(重晶石, barytes: BaSO4), 백토(argil: Al2Si2O5(OH)4), 석영(silex: SiO2) 등을 “원소”로 볼 것을 제안하였다. 이렇게 염을 일단 원소의 범주에 남겨둔 것은 그가 원소를 “지금까지 알려진 화학적 방법으로는 더 분해할 수 없는 간단한 기본 물질”이라고 정의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작적(operational) 정의는 라부아지에를 비롯한 근대 과학의 개척자들이 삼라만상 모든 것을 설명해야 한다는 고대-중세 철학자들의 강박에서 벗어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염을 비교적 관대하게 다루었음에도 불구하고, 라부아지에는 소다나 포타시는 원소로 보지 않았다. 그의 화학적 직관으로는 이 물질들은 분명히 금속이 산소나 흑연(탄소) 등과 결합하여 이루어진 화합물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다만 그는 그 염을 이루는 금속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알아내지 못했다. 당시에는 이온이라는 개념도 없었고, 그때까지의 기술로는 환원된 소듐이나 포타슘 금속을 얻을 수 없었으므로 부득이한 일이었다.

라부아지에가 남겨둔 과제는 영국의 데이비(Humphry Davy, 1778~1829)가 1807년에 이르러 해결하였다. 그는 엄청난 수의 볼타전지 셀을 연결하여 전기분해 장치를 만들고 각종 염들의 정체를 파헤치기 위한 분석을 시작했다. 여러 차례의 실패 끝에 데이비는 염의 수용액을 전기분해해서는 금속을 분리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고온에서 용융한 액체 상태의 광물을 바로 전기분해 하였다. 그 결과 소다와 포타시도 금속의 염이며, 그것을 이루는 금속은 비록 매우 빨리 산화하여 성질을 잃어버리기는 하지만 다른 금속처럼 분리해 낼 수 있다는 것이 드디어 밝혀졌다.
새로운 원소를 발견했으니 이름을 붙이는 일이 남았다. 그런데 여기에서 영국과 대륙 유럽의 과학자들은 서로 다른 선택을 하였다. 영국의 과학자들은 소다나 포타시가 오랫동안 일상생활에 쓰여 온 상품의 이름이기도 한 만큼, 관행을 굳이 거스르지 않고 소다와 포타시를 만드는 금속 원소를 각각 “소듐(sodium)”과 “포타슘(potassium)”이라고 부를 것을 제안했다. 반면 대륙 유럽의 과학자들은 어원을 따져 이름 붙이는 쪽을 선호했다. 그래서 나트론에서 얻은 금속 원소는 “나트륨(natrium)”, 알칼리의 원래 뜻인 잿물의 중요 성분이 되는 금속 원소는 “칼륨(kalium)”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그리고 대륙 유럽에서 활동한 베르젤리우스(Jöns Jacob Berzelius, 1779~1848)가 오늘날과 같이 원소 이름의 로마자 머릿글자를 따서 원소기호로 삼자고 제안하면서, 이들 원소는 각각 “Na”와 “K”라는 기호를 갖게 되었다.
“중조(重曹)”와 “가리(加里)”
한국의 근대 화학 용어는 대부분 일본을 거쳐 들어왔고, 일본은 네덜란드와 독일을 통해 유럽의 화학 지식을 습득했다는 것은 지난번에 쓴 바와 같다. 그래서 나트륨(ナトリウム)과 칼륨(カリウム) 등도 독일 쪽 발음에 가깝게 익혀 오다가, 1998년 대한화학회가 “화합물 명명법 기본 원칙”을 수립한 것을 계기로 점진적으로 바꾸어 가고 있다.
요컨대 오늘날 한국의 학생들이 겪는 혼란은 그 역사적 뿌리가 꽤 깊다. 화학 시간에는 Na라고 쓰고 소듐이라고 읽다가, 체육이나 가사 시간에는 나트륨이라고 읽게 되는 일도 다 내력이 있는 셈이다. 이 글에서 드러내 보이고자 한 것이 바로 그 복잡함이다. 복잡한 문제를 간단하게 풀려 하면 빠트리는 것이 많이 생기는 법이니, 우선은 복잡함을 그 자체로 직시하는 데 시간을 좀 들일 필요도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연재는 현재 또는 미래에 대한 제언이라기보다는, 과거를 들여다보는 거울 정도로 읽히기를 바란다.
글 마무리에 또 하나의 토막상식을 추가하자면, 지금은 식품 공업 정도를 벗어나면 자주 듣지 못하게 된 이름이지만, 일본을 통해 들어온 “중조(重曹)”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식품첨가물로 많이 쓰이는 탄산수소소듐(NaHCO3), 일명 “식소다”를 가리킨다. 오래된 일본식 화합물 명명법에 따르면 수소이온(H⁺) 하나가 붙은 산성음이온을 “중(重)-”이라는 접두어를 붙여 표현하는 관행이 있었다. 영어로는 “bi-”에 해당하는데, 대체로 중탄산이온(HCO₃-)이나 중황산이온(HSO4-) 정도 용례를 찾아볼 수 있다. 즉 탄산수소소듐은 예전에는 “중탄산나트륨”으로 불렸는데, 일본과 한국의 민간에서는 “중탄산소다”라는 이름이 오히려 더 널리 쓰였다. 소다가 나트륨염의 대표로 인식되면서 소다와 원소로서의 나트륨 자체가 혼용되기도 했고, 중탄산소듐의 주요 용도 중 하나가 빵반죽을 부풀리는 베이킹파우더의 원료였으므로 소다라는 이름이 일본과 한국의 대중에게 그만큼 친숙해졌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소다는 오늘날은 “ソ〡ダ”라고 가타카나로 표기하지만 근대 초기에는 음차하여 “曹達”라고 표기했으므로, 일본식 표기로 중탄산소다는 “重炭酸曹達”이 되고, 이것을 줄여 쓰다 보니 “重曹”가 된 것이다. 어찌 보면 과학은 독일에서 우선 들여왔지만 산업에서는 영국과 깊은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었던 근대 초기 일본의 복잡한 사정이 이 이름에도 한 조각은 담겨 있는 셈이다. (다음 연재에 계속)

김태호 Tae-Ho Kim
• 서울대학교 화학과 학사(1994.3–1999.2)
• 서울대학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석사(1999.3–2001.2, 지도교수:김영식)
• 서울대학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박사(2001.3–2009.8, 지도교수:홍성욱)
• 싱가포르국립대학 박사후 연구원(2009.9– 2010.8, 지도교수:Gregory Clancey)
• 콜럼비아대학교 박사후 연구원(2010.9– 2011.8, 지도교수:Charles Armstrong)
•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역사문화원 연구교수(2011.9–2014.8)
• 한양대학교 비교역사문화연구소 HK교수(2014.9–2016.8)
• 전북대학교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 조교수(2016.9–2024.8)
• 전북대학교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 부교수(2024.9–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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