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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빛낸 화학자 26(2025년 1월호)

유 룡(劉龍)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 석좌교수(1955~)

유룡 교수님은 한국을 대표하는 나노다공성 재료화학 분야의 석학입니다. 유 교수님은 새로운 메조다공성 물질(mesoporous materials)의 합성과 촉매 응용성 개척을 통해, 이 분야의 연구를 세계적으로 선도하는 역할을 수행해 왔습니다. 특히, 교수님은 세계 최초로 메조다공 성 탄소를 합성하였고 다공성 물질 연구 분야의 오랜 기 간“Holy Grail”로 간주되던 메조다공성 제올라이트를 합성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연구를 통해 다공성 물질 분야에서 한국의 위상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리시는 데 큰 공헌을 하셨고, 2014년 한국 최초로 Clarivate사에서 선정하는 노벨상 수상 유력 과학자로 뽑혔습니다. 2022년에 기초과학연구원(Institute for Basic Science, IBS) 단장직을 마치시고, 한국에너지공 과대학교(KENTECH)의 석좌교수로 부임하시어 여전히 연구와 후학 양성에 매진하고 계십니다.

유 교수님은 1955년 경기도 화성에서 태어나 1977년 서울대학교 공업화학과에서 학부를 마치고 카이스트 화학과 대학원에 진학하여 故 전무식 교수님 연구실에서 통계 열역학 연구로 1979년 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한국원자력연구원(1979-1982)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신 후, 1982년 Stanford University 화학과 박사 과정에 진학하여 Michel Boudart 교수님 연구실에서 제올라이트 에 담지된 백금 클러스터 촉매의 물리화학적 특성 분석 연구로 1985년 박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후 Univer- sity of California, Berkeley 화학과 Alex Pines 교수님 연구실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고체상 NMR 연구를 수행한 후, 1986년 말 귀국하여 당시 대전에 막 설립된 한국과학기술대학(Korea Institute of Technology, KIT) 화학과 조교수로 부임했습니다.

유 교수님이 부임한 KIT에서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 와 통합되는 1990년 이전에는 대학원생이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당시 교수님은 학부생들과 함께 독립적인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연구 초기에는 제올라이트와 이에 담지된 금속 촉매를 제논(Xe) NMR, X-선 흡수 분광법 (X-ray Absorption Spectroscopy) 및 제논 흡착법을 이용하여 물리화학적 특성을 분석하고 촉매 반응성을 탐 색하는 연구와 고체상 NMR을 이용하여 제올라이트를 분석하는 연구를 수행했습니다. 특히, 이 연구 과정에서 금속 클러스터에는 제논 가스가 강하게 흡착하고 제올라 이트와 같은 담체에는 매우 약한 흡착만 일어나는 점에 착안하여, 1나노미터 또는 그 이하의 매우 작은 금속 클러스터의 크기를 클러스터 당 원자수 수준으로 정밀하게 정량할 수 있는 제논 가스 흡착법을 제안했습니다(J. Am. Chem. Soc. 1992, 114, 72).

1993년 유룡 교수님은 해외 학회 참석 중에 구조규칙 성 메조다공성 실리카(ordered mesoporous silica) 물질을 처음으로 접했습니다. 당시까지 제올라이트가 다공성 물질을 대표하는 물질이었고, 흡착, 분리, 촉매 등 다 양한 분야에 상용화되어 널리 쓰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올라이트는 기공의 크기를 1나노미터 이상으로 합성하기 어려웠고, 이로 인해 제올라이트의 기공 크기보다 큰 거대 분자의 흡착 및 촉매 반응을 수행하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이를 극복하고자 큰 기공을 갖는 제올 라이트를 합성하고자 하는 연구가 지속되어 왔었고, 1992년 미국의 석유화학 회사인 Mobil(현 ExxonMobil) 사 연구진은 계면활성제 마이셀(micelle) 기반 주형을 이용하여 기공의 크기를 2-10나노미터 수준으로 키운 일련 의 구조규칙성 메조다공성 실리카 물질의 합성을 Nature 지에 발표했습니다. 이 결과는 당시까지 수십년간 제올라이트가 독점적으로 지배해 온 다공성 물질 연구 분야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일대 사건이었습니다.

한국에서 독립적인 연구를 시작한 이후 새로운 연구 주제에 목말라 있던 유 교수님은 이 결과를 목도하고, 당시까지 지속해 온 연구 주제에서 벗어나 새로운 연구 분 야를 탐색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여 메조다공성 물질 연구 분야에 뛰어들게 되었습니다. 당시 연구실은 다공성 물질을 합성해 본 경험이 거의 전무했기 때문에 대학원생들과 함께 합성의 기초부터 이해하면서 본 분야의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이후 30여년간 메조다공성 실리카, 메조다공성 탄소, 그리고 메조다공성 제올라이트에 이르 기까지 새로운 다공성 물질 합성 연구를 개척하시고 이들의 특이한 촉매 반응성을 개척하는 연구를 수행해 왔습니다.

유 교수님은 메조다공성 실리카 합성 연구와 관련하여 안정성이 높은 물질 합성에 주안점을 두셨습니다. 1992년 에 보고된 구조규칙성 메조다공성 실리카 물질은 기공의 규칙성으로 인해 메조 영역에서 X-선 회절선을 보이지만, 물질의 골격을 이루는 실리카 또는 알루미노실리케이트 (aluminosilicate)가 원자 수준에서는 규칙적으로 배열되어 있지 않고 무정형(amorphous)의 구조를 지니고 있어 이러한 물질의 촉매 응용에 필수적인 열 안정성 또는 수열 안정성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를 극복하고 자, 골격의 구조적 균일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일련의 합성법을 제안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메조다공성 실리카 합성 과정에 염(salt)을 도입하는 방법을 통해 균일한 기공이 무질서한 3차원 네트웍 구조로 연결된 새로운 메조다공성 실리카 물질인 KIT-1을 합성했습니다(J. Phys. Chem. 1996, 100, 17718). KIT-1은 당시까지 알려진 메 조다공성 실리카에 비해 월등히 향상된 열 안정성 및 수 열 안정성을 보였습니다. 이후 교수님께서는 새로운 메조 상(mesophase)를 갖는 메조다공성 실리카 합성 연구에 매진하여 KIT-n으로 명명된 일련의 물질을 합성하셨고, 특히 2003년에는 10나노미터 전후의 큰 기공을 지니면 서도 3차원 네트웍 구조의 구조규칙성을 보이는 KIT-6 물질 합성에 성공했습니다(Chem. Commun. 2003, 2136; J. Am. Chem. Soc. 2005, 127, 7601). 현재 KIT- 6는 합성의 용이성 및 높은 응용성으로 인해 메조다공성 실리카 중 가장 널리 활용되는 물질 중 하나입니다.

유룡 교수님은 메조다공성 실리카 합성 연구 과정에서, 실리카 물질이 잘 정의된 결정학적면을 노출하는 결정 형태로 성장하는 것을 관측했습니다. 이 결과를 토대로, 비록 메조다공성 실리카 물질이 골격을 이루는 원자 수준에서는 무정형 구조를 지니지만 기공 배열의 규칙성으 로 인해 결정으로 성장될 수 있다고 추론했고, 이후 전자 회절 기법 분석을 통해 이러한 사실을 확인하였습니다(Nature 2000, 408, 449).

유 교수님은 높은 안정성을 지닌 메조다공성 물질에 대한 연구를 지속하는 과정에서 실리카 골격을 지닌 물 질은 골격의 결정성을 높이지 못하면 안정성의 한계가 있음을 절감하고, 탄소 골격을 지닌 새로운 메조다공성 물질 합성을 시도하게 됩니다. 하지만 기존의 계면활성 제 마이셀 기반 연성(soft) 주형을 이용한 합성법을 적용 할 경우 합성의 마지막 단계에서 소성 처리를 통해 계면 활성제를 제거해야 하는데, 이 때 탄소 골격도 사라지게 됩니다. 교수님은 이러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자 합성된 메조다공성 실리카 물질을 경성(hard) 주형으로사용하는 나노템플레이팅(nanotemplating) 또는 나노캐스팅(nanocasting)법을 사용하여 세계 최초로 구조규칙성 메조다공성 탄소 합성에 성공합니다(J. Phys. Chem. B 1999, 103, 7743). 이후, CMK-n (Carbon Mesostructured by KAIST)으로 명명된, 기공연결 구조, 골격의 형태, 골격의 결정성이 조절된 일련의 메조다공성 탄소 물질 합성에 성공했습니다(J. Am. Chem. Soc. 2000, 122, 10712; Nature 2001, 412, 169; Angew. Chem. Int. Ed. 2003, 42, 4375). 이렇게 합성된 메조다공성 탄소 물질들은 기존에 널리 사용되는 카본 블랙과 같은 상용 탄소와 비교하여 우수한 에너지 변환 전극 촉매 성능을 증명하였습니다(Nature 2001, 412, 169). 이후 메조다공성 탄소의 응용성은 새로운 촉매 담체, 고효율 에너지 저장체 등 다양한 분야로 확대되었습니다. 또한, 나노캐스팅 합성 전략은 탄소 이외에도 구조규칙성 메조다공성 구조로 합성할 수 있는 물질의 조성을 크게 확대하였습니다. 나노캐스팅 방법을 통해 다양한 전이금속 산화물을 포함 하여, 금속, 금속 황화물, 금속 질화물, 금속 카바이드 등 기존의 연성 주형법으로 합성하기 힘들었던 조성의 메조 다공성 물질도 구조규칙성을 띄는 안정적인 구조로 합성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후 유 교수님은 제올라이트를 주형으로 이용하여 그래핀 구조가 3차원으로 연결된 탄소 구조를 합성하는데 성공합니다(Nature 2016, 535, 131). 1나노미터 이하의 기공 크기를 갖는 제올라이트를 다공성 탄소 구조 합성 을 위한 주형으로 사용하는 경우에는 메조다공성 탄소 합성과는 달리 크기가 큰 탄화수소 전구체는 사용하기 어렵기 때문에 아세틸렌, 에틸렌과 같은 작은 올레핀 전구체를 사용해야 합니다. 올레핀 분자를 중합하여 탄소 구조로 만들기 위해서는 고온 탄화 과정이 필수적인데, 이 과정에서 제올라이트의 내부 뿐 아니라 외부에도 탄소 구조가 비선택적으로 형성됩니다. 교수님은 란타늄 함유 제 올라이트의 란타늄 이온과 올레핀 분자 간의 d-π 상호 작용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저온에서도 전구체의 탄화가 용이하게 일어나는 현상을 이용하여 3차원 그래핀 골격을 지니는 마이크로다공성 탄소를 합성할 수 있었습니다.

2000년대 중반부터 최근까지 유룡 교수님이 매진하신 연구 주제는 메조다공성 제올라이트 합성입니다. 상기 언급한대로, 메조다공성 실리카 물질은 골격이 무정형으로 이루어져 있어 낮은 구조적 안정성과 약한 산성 활성점이 존재하여 촉매 응용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이를 극복 하기 위해 메조다공성 물질의 골격을 제올라이트와 같은 결정성 물질로 만들고자 하는 연구가 학계에서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으나, 성공적인 메조다공성 제올라이트의 합성은 요원했습니다. 유 교수님은 메조다공성 구조와 제올라이트의 마이크로다공성 골격을 동시에 유도할 수 있는 독창적인 이중기능성 구조유도체를 설계하여, 일련의 위계다공성 제올라이트 합성에 성공했습니다.

2006년 메조다공성 실리카를 합성하는데 사용되는 4차 암모늄계 계면활성제에 유기 실란기를 결합한 구조 유도 체를 이용하여 위계다공성 제올라이트를 성공적으로 합성했습니다(Nature Mater. 2006, 5, 718). 2009년에는 두 개의 암모늄기를 포함한 계면활성제를 설계하여, 두께가 2나노미터, 단위 격자의 크기에 불과한 매우 얇은 나노시트(nanosheet) 형태의 제올라이트를 합성했습니다. 이 연구 결과는 Nature지에 게재되었고(Nature 2009, 461, 246), 그 중요성을 인정받아 저자-에디터 인터뷰 란에 특별히 소개되었습니다. 이후 2011년에는 세 개 또는 네 개의 다중 암모늄기를 함유한 계면활성제를 설계하여, 메조 기공이 벌집 모양과 같은 육방형 구조를 가지는 최초의 구조규칙성 위계다공성 제올라이트를 합 성하는 데 성공했습니다(Science 2011, 333, 328). 특히, 2011년 Science지 논문은 그 해 Science지에서 선정하는 10대 “Breakthrough of the Year”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유 교수님이 새롭게 합성한 메조다공성 제올라이트 또는 위계다공성 제올라이트는 제올라이트의 특성 에 메조기공 구조가 더해져, 화학 반응에서 촉매로 활용 될 때 기존 제올라이트보다 월등히 뛰어난 성능을 보였 습니다. 분자 확산의 “고속도로”로 작용할 수 있는 메조기공 덕분에 반응물과 생성물의 물질전달이 원활해져 촉 매 수명이 비약적으로 향상되었으며, 넓은 메조기공 표면에 존재하는 강한 산점 덕분에 거대 분자의 촉매 반응 에서도 촉매 활성과 안정성이 크게 향상되었습니다.

유 교수님은 65세를 넘긴 2020년에 메조기공 표면에 구조결함(surface framework defects)을 함유한 위계다공성 제올라이트를 담체로 사용하여 세계 최초로 희토 류-백금 금속간 화합물 합금 나노입자(Intermetallic alloy nanoparticle)를 합성하여 고성능 석유화학 촉매 로 적용하는데 성공했습니다(Nature 2020, 585, 221). 희토류 원소는 낮은 화학 포텐셜로 인해 환원된 금속 형 태로 만들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유 교수님은 메조 다공성 제올라이트 표면에 형성시킨 구조결함을 이용하 여 희토류 원소를 단원자 상태로 분산시키는 방법을 고 안하였고, 이를 통해 희토류 원소의 화학 포텐셜을 증가 시켜 백금과의 합금 형성이 용이하게 이루어지도록 했습

니다. 희토류-백금 합금 촉매는 프로판의 탈수소화를 통 해 프로필렌을 합성하는 석유화학 반응에서 기존 촉매물 질에 비해 대단히 우수한 촉매 활성, 선택성 및 안정성을 보였습니다.

1992년 첫 논문이 발표된 이후 메조다공성 물질 분야는 눈부신 발전을 이뤄왔습니다. 2019년 Nature지에서는 창간 150주년을 기념하여 왓슨(James Watson)–크릭(Francis Crick)의 DNA 이중 나선 구조 논문을 포함 하여 Nature지에 최초로 보고된, 과학사에 이정표를 남 긴 논문 10편을 선정하였고, 해당 분야 석학의 특집 해 설 논문을 게재했습니다. 1992년 메조다공성 물질을 최초로 보고한 Mobil사의 논문도 이 중 한 편으로 선정되었으며, 유룡 교수님은 본 분야를 대표하여 메조다공성 물질의 발전사 및 향후 분야의 미래를 전망하는 해설 논 문을 게재했습니다(“Birth of a class of nanomaterial”, Nature 2019, 575, 40).


유룡 교수님은 지난 30여년간 메조다공성 물질 연구 분야의 혁신을 주도해 오셨습니다. 그 결과는 현재까지 330여편의 논문으로 출판되었고, 이 논문들은 52,000회 이상 인용되었습니다. 이러한 성과로 바탕으로 국내에서 최고과학기술인상(2005년)과 호암상(2010)을 수상하셨습니다. 2010년에는 다공성 물질 분야의 노벨상으로 일 컬어지는 Donald W. Breck상을 아시아 최초로 수상하 셨고, 2011년에는 IUPAC과 UNESCO에서 선정한 전세 계 100대 화학자로 선정되셨습니다. 그리고 2014년에는 Clarivate에서 노벨상 수상 예상 분야의 대표 과학자를 시상하는“Citation Laureate”에 선정되셨습니다.

유 교수님은 국내외 학회 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 셨습니다. 2006년 대한화학회 부회장을, 2007-2008년 에는 재료화학분과 회장을 역임하셨습니다. 2002년에는 메조다공성 물질 분야의 최대 학회인“International Symposium on Mesostructured Materials”의 조직 책임자를 맡으셨고, 이후 다양한 학회의 조직 책임자와 조직위원으로 활동하셨습니다.

유 교수님은 무엇보다 제자 교육에 각별한 노력을 기 울이셨습니다. 교수님은 늘 실험실에서 학생들과 호흡하

면서 모든 실험 결과를 학생들과 함께 꼼꼼하게 검토하

시고 적극적인 피드백을 주셨습니다. 이 과정에서 학생

들은 큰 연구 주제를 잡는 방법부터 실험 각 단계의 문

제를 해결해가는 전략 그리고 최종 마무리 단계에서 논

문 쓰는 법까지 연구에 관한 모든 내용을 교수님으로부

터 도제식으로 직접 배울 수 있었습니다. 교수님은 현재

까지 37명의 박사와 19명의 석사를 양성하셨고, 박사 졸업생 중 13명이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을 양성 중입니다. 이들 졸업생 모두 교수님의 가르침을 이어받 아 대학, 연구소와 산업계에서 한국 과학기술 발전을 위 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유룡 교수님은 여전히 연구와 교육에 대한 식지 않는 열정으로, 지금까지도 한국에너지공대 실험실에서 대학원 생들과 더불어 프로판 탈수소화 반응과 CO2 전환 및 금

속 상태의 백금 단원자 촉매 현상을 탐구하고 계십니다.


글 서울대학교 화학부 교수 주상훈

성균관대학교 화학과 교수 김지만

KAIST 생명화학공학과 교수 최민기

한밭대학교 화학생명공학과 교수 김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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