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빛낸 화학자3(2025년 8월호)
- 성완 박
- 8월 1일
- 9분 분량
심상철(沈相喆) 경북대학교 교수(1942~)

선생님께서는 1942년 9월 26일 경남 함안군 법수면 강주리에서 9남매 중 다섯째로 세상에 오셨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부친을 여의시고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안 농사일을 돕게 된다.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에 법수면 소재 고등공민학교(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사람에게 중학교 과정 교육을 실시하는 학교)에 1여 년 정도 다녔지만 폐교되어 다시 집안 농사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하였던가 우여곡절 끝에 함안군 소재 군북중학교에 진학하게 되어 정상적인 교육을 받게 되었다. 중학교 과정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였지만 시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중학교 졸업 후 사정이 여의치 않아 다시 1여 년 동안 지긋지긋한(선생님 말씀) 농사일을 계속하게 되었다. 하지만 배움에 대한 열정으로 천신만고 끝에 마산공업고등학교를 거쳐 1970년 2월에 경북대 사범대학 과학교육과 화학전공 이학사를 취득하셨다. 1972년 2월에 경북대 대학원 화학과 이학석사, 일본 문부성 장학생으로 1980년 3월에 일본 Kyoto대학 공학부 석유화학과(Dept. of Hydrocarbon Chem.)에서 공학박사를 각각 취득하셨다. 1976년 10월부터 2008년 2월까지 경북대 공과대학 응용화학과에서 교수로 재직하시는 도중에 1983년 3월부터 1984년 4월까지 한국과학재단 파견 캐나다 Ottawa대학 화학과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연구 활동을 하셨다.

대한화학회 활동

심상철 교수님은 1976년 1월부터 현재까지 대한화학회 종신회원이다. 1987년 1월부터 1988년 12월까지 대한화학회 대구‧경북지부 간사장을 역임하면서 지부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하셨다. 1988년 1월부터 2003년 12월까지 BKCS 편집위원으로 활동하셨고, 1991년 1월부터 현재까지 대한화학회 이사 및 평의원으로 활동을 계속하시고 있다. 1994년 1월부터 1996년 12월까지 대한화학회 공업화학 분과회장, 1998년 1월부터 1998년 12월까지 대한화학회 50년사 공업화학 분과회 편집위원 및 1998년 1월부터 1999년 12월까지 대한화학회 감사로 활동하셨다. 2001년 대한화학회 회장 선거에서 당선되었으며 2003년 1월부터 2003년 12월까지 대한화학회 37대 회장을 역임하면서 학회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하셨다. 대한화학회 이외에도 1996년 1월부터 현재까지 한국공업화학회 평의원으로 활동하고 계시며, 2002년 1월부터 현재까지 한국 공학한림원 정회원 및 명예 회원이다. 2003년 1월부터 2003년 12월까지 한국화학관련학회연합회(대한화학회, 한국화학공학회, 한국고분자학회, 한국공업화학회 및 한국세라믹학회) 부회장 및 2005년 1월부터 2005년 12월까지 동 연합회 회장을 역임하셨다.


2001년에 대한화학회 사상 최초로 시행한 대한화학회 회장 선출을 위한 전 회원 직접선거에서 회장에 당선된 교수님은 최초의 지방대학 교수 출신 회장이기도 하다. 영남대 화학과 차진순 교수(2003년 대한화학회 총무 부회장, 2007년 41대 대한화학회 회장)는 당시를 다음과 같이 회상하고 있다. “심상철 교수님은 학회 운영에 경영마인드를 처음 도입하셨고, 이에 따라 대학에서 열리던 정기총회 및 학술발표회를 전시 컨벤션 센터에서 개최하여 획기적인 변화를 이루었다. 당시 춘계총회를 서울 COEX에서 개최한다고 발표하자, 회원 대다수가 ‘학회 자금이 상당히 손실되지 않을까?’ 반신반의하면서 기대 반 우려 반이었다. 그러나 예상대로 ‘투자를 한 만큼 수입이 늘어난다’는 경영논리로 대성공을 이루자 많은 회원들의 찬사가 자자했던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연이어 부산 BEXCO에서 열렸던 추계총회도 대성황을 이루어 대한화학회 회원 모두에게 자신감을 불어 넣었고 아울러 학회의 위상을 드높이 올렸다. 심상철 회장님의 인간적 후덕함과 신뢰감으로 화학회 역사상 가장 뛰어난 업적을 이룩한 회장으로 평가될 것이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일본은 3년 연속 노벨화학상 수상자를 배출하게 된다. H. Shirakawa 교수(Tsukuba대, 2000년), R. Noyori 교수(Nagoya대, 2001년) 및 K. Tanake 연구원(Shimazu 연구소, 2002년)이 노벨화학상을 수상하면서 일본화학회는 2003년에 일본화학회 창립 125주년을 기념하여 행사(행사 위원장: R. Noyori 교수, 행사 부위원장 S. Uemura 교수)를 성대하게 개최하였다. 행사 주최 측은 각국의 화학회 회장을 비롯하여 일본 천왕까지 초청하여 기념식을 거행하였다. 심상철 교수님은 대한화학회를 대신하여 대한화학회 회장으로서 일본화학회 창립 125주년 축하 메시지를 전달하고 각국의 화학회 회장들과 화학의 역할에 대하여 의견을 나누셨다.
유기금속 동우회

교수님은 유기금속화학 관련 연구회를 조직하고 열정적으로 활동하셨다. 유기금속 동우회는 대구‧경북지역의 유기금속화학을 전공하는 교수들의 연구회이다. 교수님은 1984년 4월 캐나다 Ottawa대학에서 박사후연구원을 마치고 귀국한 후 영남대 차진순 교수에게 대구‧경북지역 대학에 유기금속화학을 연구하는 교수가 많으니 동우회를 조직할 것을 제의하면서 결성되었다. 교수님을 포함하여 차진순 교수, 이동호 교수(경북대), 곽영우 교수(경북대) 및 이형수 교수(대구효성가톨릭대) 등이 발기위원으로 참여하였다. 연이어 김태정 교수(경북대), 엄재국 교수(계명대), 김홍석 교수(경북대, 2015년 49대 대한화학회 회장), 박영배 교수(계명대) 및 최석범 교수(계명대)가 회원으로 가입하면서 회원은 10명으로 늘어났다. 그 후 이동환 교수(동의대), 양성봉 교수(울산대), 허근태 교수(경성대), 박순흠 교수(동국대), 정종화 교수(경북대), 노석균 교수(영남대) 및 박유철 교수(경북대)가 회원으로 가입하면서 유기금속 동우회는 활성화 되었다. 초대 회장은 심상철 교수, 2대 회장은 차진순 교수, 3대 회장은 이형수 교수 4대 회장은 곽영우 교수, 5대 회장은 김태정 교수 및 6대 회장은 엄재국 교수가 역임하였다.
1986년에는 유기금속 동우회 명의로 유기금속 동우회지를 창간호로 발간하였으며 동우회지는 전국 150여 대학 및 연구소로 발송되었다. 유기금속 동우회지는 Y. Watanabe 교수(Kyoto대, 석유화학과), Y. Ito 교수(Kyoto대, 합성화학과) 및 S. Uemura 교수(Kyoto대, 석유화학과)를 비롯하여 국내 각 대학 및 연구소의 많은 연구자들이 총설 및 논문을 투고하여 계속 발간되었다. 이러한 동우회의 활성화를 기반으로 소속 회원들은 1988년 8월부터 1991년 8월까지 3년간 한국과학재단 목적기초 연구사업 연구비를 수혜하고 공동연구를 수행하면서 30여 편의 연구논문을 국내외 학술지에 발표하였다.
유기금속화학 여름 캠프
교수님은 유기금속 동우회 활동사업의 일환으로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대학원생 위주의 유기금속화학 여름캠프를 조직하셨다. 1992년에 제1회 유기금속화학 여름캠프를 경북대 구룡포 수련원(포항)에서 개최하였다. 유기금속 동우회 회원 연구실의 대학원 학생들을 중심으로 연구 결과를 포스터 형식으로 발표하였으며 초청 연사의 강연도 있었다. 여름캠프는 매년 계속되었고 50-60여 명의 인원이 참가하여 유기금속화학의 학문 발전과 유기금속 동우회 회원 연구실 상호간의 친목을 도모하였다. T. Kondo 교수(Kyoto대, 석유화학과), 진종식 교수(서강대, 2001년 35대 대한화학회 회장), 강석구 교수(성균관대), 정일남 박사(KIST), 강신걸 교수(대구대), 고재중 교수(고려대), 김태정 교수(경북대), 송한철 교수(경북대) 및 이효선 교수(경북대)등 많은 교수와 연구자가 유기금속화학 여름캠프의 발전을 위하여 초청 강연을 해 주었다.
Yeungnam-Kinki Joint Symposium on Organometallic Chemistry
교수님은 한국 영남지역과 일본 긴키지역(Kyoto 및 Osaka 주변 지역)의 유기금속화학을 전공하는 교수들 간의 정규적인 심포지엄(Yeungnam-Kinki Joint Symposium on Organometallic Chemistry)을 결성하여 유기금속화학의 연구 발전에 큰 기여를 하셨다. 1989년 4월에 제1회 심포지엄이 경북대에서 개최되어 양국 간의 교류가 시작되었다.
일본 측 연사로는 Y. Watanabe 교수, Y. Ito 교수 및 S. Uemura 교수가 강연을 하였고 한국 측 연사로는 심상철 교수, 차진순 교수 및 이동호 교수가 강연을 하였다. 전국의 유기금속화학을 전공하는 교수 및 연구자들이 참석하여 유기금속화학의 전망과 발전에 대하여 토론하였다. 이후로 제2회-13회 심포지엄은 한국에서는 경북대, 영남대 및 부산대를 중심으로 개최되었으며 일본에서는Kyoto대학에서 2~3년 주기로 개최되었다. COVID-19 유행 직전인 제14회 심포지엄이 2019년 부산대에서 정옥상 교수(부산대 화학과, 2020-2021년 52대 대한화학회 회장)의 주최로 개최되었다. 일본 측 연사로는 K. Ohe 교수(Kyoto대), T. Kondo 교수(Kyoto대), M. Murakami 교수(Kyoto대), Y. Tsuji 교수(Kyoto대)가 강연을 하였고, 한국 측 연사로는 이영호 교수(POSTEC), 장우동 교수(연세대), 주정민 교수(부산대), 이상기 교수(이화여대), 장석복 교수(KAIST), 김홍석 교수(경북대)가 강연을 하였다. 특히 이 심포지엄은 김홍석 교수와 Y. Tsuji 교수의 정년 퇴임을 기념하는 자리도 함께 마련되어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1-14회 심포지엄 가운데 Kyoto에서 개최된 2003년 제7회 심포지엄이 기억에 남는다. 이전까지는 교수들의 구두 강연 위주였으나 박사과정 대학원 학생(김복태 박사, 현 LG화학 연구소 책임연구원)이 ‘Ruthenium-catalyzed alkylation of ketones and secondary alcohols with trialkylamines’ 주제로 구두 발표에 참여하였고 BK21 지원으로 많은 석박사 과정 대학원 학생들이 참가하여 포스터 발표도 하였다. 이후로는 대학원생의 구두 발표는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유기금속 아카데미
교수님은 유기금속 아카데미를 조직하고 해당 분야의 권위자를 초청하여 유기금속화학 동우회 회원 및 대학원 학생을 대상으로 집중 강연을 통하여 학문 발전을 도모하였다. 제1회 유기금속 아카데미가 2003년 2월 10일 대구 팔공산 유스호스텔에서 ‘붕소의 세계’란 주제로 개최되었다. 차진순 교수가 ‘Boranes in organic synthesis’ 주제로, 강상욱 교수(고려대)가 ‘The organometallic and inorganic chemistry of carboranes’ 주제로 각각 강연을 하였다. 대학원 학생들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초청 연사의 강연을 수강하는 기쁨 아닌 괴로움(!)을 느껴야 했다. 제2회 아카데미는 2004년 2월에 경북대 응용화학과에서 ‘루테늄 촉매’ 주제로 개최되었으며 장석복 교수(KAIST)가 ‘Ruthenium-catalyzed oxidation, epoxidation and metathesis reactions’ 의 주제로, S. Uemura 교수(Kyoto대)가 ‘Novel organo-diruthenium catalysts’ 주제로 각각 강연을 하였다. 그 이후로 제3회 아카데미(2005년)는 ‘실리콘 소재’ 주제로, 제4회 아카데미(2007년)는 ‘Transition metal complexes of Si, P, S and Cl’ 주제로 개최되어 관련 분야를 전공하는 교수 및 대학원 학생들에게 많은 호응을 얻었다.

연구 활동
선생님의 연구 분야는 전이금속 촉매를 사용한 새로운 유기화학 반응의 개발이다. 35여 년간 이 분야의 연구에 매진해 오셨다. 전이금속 촉매의 작용에 의한 탄소-탄소(질소)결합 생성반응을 경유하여 다양한 헤테로 고리화합물과 탄소 고리화합물의 새로운 합성법을 개발하였으며, 다양한 C-/N-알킬화 반응 및 환원 반응을 개발하였다. 아래에 대표적인 연구 결과를 소개한다.
교수님은 tetracarbonylhydridoferrate, HFe(CO)4-의 고 선택성 환원제를 사용하여 아민의 알데하이드에 의한 N-알킬화반응을 개발하였으며, 특히, 다이알데하이드, OHC-(CH2)n-CHO와 1차 아민과의 반응으로부터 아민 고리화합물의 합성법을 개발하였다. 다이알데하이드의 메틸렌의 수는 2부터 4까지가 가능하여 pyrrolidine, piperidine 및 azepane 등의 아민 고리화합물을 합성할 수 있었지만, 4각형(azetidine) 이하와 8각형(azocane) 이상의 아민 고리화합물은 합성할 수 없었다. 특히 아릴 및 알킬 일차 아민과 pimelaldehyde의 반응에서는 예상할 수 있는 azocane 대신에 아릴 및 알킬이 치환된 N-(cyclohexylmethyl)amine이 생성되었다(J. Heterocycl. Chem. 1988, 25, 1383; Tetrahedron Lett. 1990, 31, 105).
교수님은 1983년-1984년에 캐나다 Ottawa대학 화학과 H. Alper 교수와 공동으로 석유화학 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프로세스 중 하나인 mercaptan의 탈황에 효과적인 촉매(Co2(CO)8) 를 개발하였다(Desulfurization and carbonylation of mercaptans, J. Org. Chem. 1985, 50, 147; Desulfurization of mercaptans to hydrocarbons by carbon monoxide and water in the presence of cobalt carbonyl, Tetrahedron Lett. 1985, 26, 1935).
교수님은 전이금속착물(Co2(CO)8)로부터 생성된 음이온[Co(CO)4-]이 4차 암모늄염과 함께 수계와 유기계 매질에 공존할 수 있는 상이동(phase transfer) 특성을 이용하여 유기 할로겐 화합물을 유기산으로 전환하는 반응을 연구하였다(J. Organomet. Chem. 1990, 382, 419). 그리고 화학적으로 매우 안정한 이산화탄소(CO2)를 고정하여 유기화합물의 합성에 직접 사용한 연구의 결과로서 란타나이드 촉매를 사용하여 아민과 이산화탄소의 반응으로부터 카바메이트를 합성하는 방법을 연구하였다(Bull. Korean Chem. Soc. 1990, 11, 467).
아민 교환 반응(amine exchange reaction)은 전이금속 촉매에 의하여 탄소-질소결합이 활성화되고 새로운 탄소-질소결합 생성되는 반응이다. 교수님은 루테늄/SnCl2 촉매계를 사용하여 아닐린과 트리알카놀아민/알카놀암모늄 할라이드의 아민 교환 반응에 의한 인돌의 새로운 합성법을 개발하였다(Chem. Commun. 1998, 995; Tetrahedron 2001, 57, 3321). 또한 비슷한 촉매계 및 수소 받개(hydrogen acceptor)를 사용하여 아닐린과 트리알릴아민/트리알릴암모늄 할라이드 사이의 아민 교환 반응에 의한 퀴놀린의 새로운 합성법을 개발하였다(Chem. Commun. 2000, 1885; Tetrahedron 2000, 56, 7747). 그리고 아민 교환 반응에 의한 탄소-질소결합 생성반응과는 별개로 팔라듐 촉매를 사용하여 2-브로모벤즈알데하이드/β-브로모바이닐 알데하이드와 아릴하이드라진의 탄소(sp2)-질소결합 생성반응(Buchwald-Hartwig amination)을 통하여 1-aryl-1H-indazoles 및 1-aryl-1H-pyrazoles의 새로운 합성법을 개발하였다(Chem. Commun. 2004, 104; Tetrahedron 2006, 62, 6388).
한편, 교수님은 루테늄 촉매를 사용하여 아닐린과 트리알릴아민의 아민 교환 반응에 의한 퀴놀린의 합성반응에서 예상하지 못한 결과로부터 새로운 반응을 개발하였다. 4-아미노아세토페논과 트리알릴아민의 반응으로부터 예상되는 퀴놀린(43%)과 더불어 예상하지 못한 퀴놀린(2%)이 생성되는 결과를 얻었다(Tetrahedron Lett. 1999, 40, 1499). 예기치 못한 퀴놀린 생성은 분명히 아세틸기의 알파 위치에 알킬화 반응에 의한 생성물이었다. 이와 같은 결과를 바탕으로 루테늄 촉매를 사용하여 케톤의 트리알킬아민에 의한 위치선택적인 α-알킬화 반응을 개발하였다(Angew. Chem. Int. Ed. 2001, 40, 958). 질소 원자에서 질소 원자로 알킬기가 이동하는 아민 교환 반응과는 대조적으로 이 연구는 질소 원자에서 탄소 원자(케톤의 알파 탄소)로 알킬기가 이동하는 최초의 결과이다. 추후 보다 온화한 조건에서 Pd/C 촉매를 사용한 반응이 개발되었다(Organometallics 2014, 33, 1890).

이동 수소화반응(transfer hydrogenation)은 고압의 수소나 위험한 금속 환원제를 사용하는 환원 반응에 비하여 장점을 가지고 있어 유기합성 반응에 자주 사용하는 유용한 합성도구이다. 전이금속 촉매에 의한 케톤과 알코올 사이의 전형적인 이동 수소화반응은 케톤이 수소 받개로서 환원이 되고 알코올은 수소 주개(hydrogen donor)로서 산화된다. 교수님은 루테늄 촉매 및 염기를 사용하여 일련의 탄소-탄소 결합 생성반응을 동반하는 이동 수소화 반응을 처음으로 개발하였다. 메틸 케톤과 일차 알코올의 반응으로부터 탄소-탄소 결합 생성반응이 동반된 이동 수소화 반응 생성물인 이차 알코올의 생성을 확인하였다(route b, J. Org. Chem. 2001, 66, 9020). 이 반응은 2-아미노벤질 알코올과 메틸 케톤 혹은 이차 알코올의 반응으로부터 변형된 Friedlaender 퀴놀린의 합성에 효과적으로 응용할 수 있었다(Chem. Commun. 2001, 2576; Tetrahedron 2003, 59, 7997). 또한 비슷한 촉매계를 사용하여 케톤의 일차 알코올에 의한 α-알칼화 반응을 처음으로 개발하였으며(route a, Tetrahedron Lett. 2002), 이차 알코올의 일차 알코올에 의한 β-알칼화 반응도 처음으로 개발하였다(route c, Organometallics 2001, 20, 5784). 이와 같은 일련의 연구는 지금까지 많이 피인용 되고 있다.

교수님은 연구 결과를 국내외 학술대회를 통하여 발표하셨으며, 174편의 학술논문을 국내외 저명 학술 잡지에 게재하셨다. 석사 49명, 박사 7명의 후학을 양성하고 9명의 국내외 박사후 연구원과 연구를 함께 하셨다. 이들은 국내외 대학 및 연구소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교수님은 16년 전인 2008년에 정년을 하셨지만 최근까지 대한화학회 정기총회 및 학술발표회에 참석도 하시고 젊은 후학들과 정담을 나누고 계신다. 그리고 카톡방에서 연구실 제자들과도 끊임없는 소통을 하고 계신다. 아래에 연구실 제자들의 추억담을 몇 가지 소개한다.
선생님과의 추억: <추억담1>
선생님을 처음 뵙게 된 것은 군을 제대하고 복학한 1980년이었다. 당시 나는 학부 학생으로서 선생님의 연구실에 내 책상을 가질 수 있는 특권(?)을 누릴 수 있었다. 물론 선생님께 미리 부탁드려 그 자리를 허락받았고, 간단한 청소, 전화수신, 대학원 선배님들의 잔심부름 등등 약간의 잡무도 곁들여졌지만…, 이러한 특권 때문에 다른 친구들처럼 중앙도서관에 자리를 잡기 위해 그 먼 거리를 미리 가서 책가방을 두고 오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었고, 두꺼운 전공 서적이 든 무거운 책가방을 들고 이 강의실 저 강의실로 다니지 않아도 되었으니 말이다. 당시에는 그것만이 특권이라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학부 2년 대학원 6개월 도합 2년 6개월 동안 선생님과 대학원생 선배들의 연구 활동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게 되었고, 선생님을 가까이 모시면서 선생님의 훈훈한 인간미와 일에 대한 열정, 성실함을 느끼고 배울 수 있었다는 점에서 나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었다는 생각을 자주 하곤 한다.
선생님은 참 소탈하시고 푸근한 동네 형님 같은 분이셨고, 늘 편안하고 한결같은 분이셨다. 어떤 이야기라도 기꺼이 다 들어 주시는 친구 같은 친근한 분이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선생님 연구실은 다른 연구실과는 달리, 유독 많은 학생들이 들락거렸고 연구실 분위기도 항상 화기애애했다. 연구실을 떠나 45년이 지난 지금까지 선생님과 만남을 계속 이어진 연유도 아마도 선생님의 소탈하고 따뜻한 인간미 때문 아닌가 싶다. 선생님은 일에 대한 열정이 남다르셨고 참 성실한 분이셨다. 선생님의 유기화학 강의는 지금도 눈에 선하다. 특유의 일본식 영어 발음에 끊임없이 뿜어져 나오는 선생님의 힘찬 목소리 참으로 열강이었고 나에게는 귀에 속속 들어오는 명강의였다.
그 당시로는 척박한 환경이었음에도, 어려움을 무릅쓰고, 일본 Kyoto대학에 혈혈단신으로 건너가 학위를 받고 귀국하신 것 하며, 인맥, 학맥, 지방대학 등, 모든 여건이 일천함에도 대한화학회장으로 선임되어 대한화학회를 이끌어 오신 일들 하며, 그 이후 여러 화학 관련 활동을 통해 선생님이 행해 오신 발자취를 보노라면 이 모든 것이 선생님의 열정과 성실이 보여준 증거가 아닌가 싶다. 선생님의 연구실에서 가까이 모시면서 선생님으로부터 배운 열정과 성실, 연구실에서 얻은 지식과 경험들이 23년의 직장 생활과 지금의 사업에 내내 큰 지침과 도움이 되고 있다. 선생님은 나에게는 참 고맙고 귀한 분이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선생님으로부터 은혜만 받았지 내가 선생님에게 드린 것은 아무것도 없어 그저 죄송할 뿐이다.
<추억담2> “벌씨로”
심상철 교수님께서 자주 사용하시던 말씀으로서 경남 함안 지방의 말이리라 생각한다. 이 “벌씨로”는 “벌써”, “이미”라는 뜻이다. 교수님의 유기화학 강의를 듣던 시기는 1982년이다. 경북 예천(용궁) 태생이 처음으로 이 “벌씨로”의 말을 듣는 어감은 특이하였다. 같은 경상도이니 어림짐작으로 알 수 있었으나, 들을 때마다 묘한 매력을 느끼는 말이었다. “벌씨로”의 용처는 다양하다. 다양하고 복잡한 유기화학 강의를 “벌씨로”의 말씀과 함께 듣다 보면 도입과 중간 과정을 거쳐서 벌씨로 결론에 도달한다. 이 “벌씨로”와 함께 40대 초반의 젊고 역동적이고 패기차며 학구적이신 심상철 교수님을 기억한다.
심상철 교수님은 대학과 대학원(석박사) 과정과 인생 전반에서 지도 교수님이시다. 당시에는 교재에 수록되지 않은 유기금속 촉매화학 반응의 새로운 연구 분야에 대한 연구와 화학 전반에 대하여 탐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심에 감사드린다. 심상철 교수님과의 소중한 인연은 대구 동인동의 찜갈비와 청송 주왕산 포럼과 막걸리의 추억 등등과 함께 45년째에 이르고 있으며, 교수님의 일상생활 속의 말씀 마디마디들은 여전히 삶의 귀감이 되고 있다.
글 집필책임자 경북대학교 응용화학과 교수 조찬식
심상철 교수님 제자 일동


